*내용 인용시 tbs[김어준의 뉴스공장]과의 인터뷰 내용임을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 2부
[인터뷰 제1공장]
돌아온 협상가, FTA 협상을 말하다!
-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 (산업통상자원부)
김어준 : 올 초부터 9개월간 진행된 한미 FTA, 재협상이 종결됐습니다. 총괄이죠.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 스튜디오에 직접 모셨습니다. 안녕하십니까.
김현종 : 네, 안녕하십니까.
김어준 : 이런 라디오 출연 잘 안 해 보셨죠?
김현종 : 사실 처음입니다. 그래서 조금 긴장됩니다.
김어준 : 그건 제가 알 바 아니고... 그런데 제가 이번에 모신 것은 물론 재협상 결과도 듣겠습니다만 굉장히 중요한 협상을 2번이나 총괄하신 분인데 제가 찾아보니까 어떤 사람인지를 드러내는 개인적인 인터뷰는 전무하더라고요. 그래서 오늘 인터뷰의 주요 주제는 ‘김현종은 과연 누구인갗로 잡았습니다. 주제가 그러하다는 것을 일단 말씀드리고 FTA 얘기도 물론 조금 봅니다만. 처음으로 거슬러 올라가서 故노무현 대통령 정부시절, 그러니까 참여정부. 여기에 어떻게, 왜 합류하신 겁니까? 제가 이제 프로필을 보니까 콜롬비아대 로스쿨 졸업하고 미국 대형로펌에 근무하고 쫙 있던데 어떻게 故노무현 대통령의 통상교섭본부장이 되신 거예요?
김현종 : 당선자 시절 때 故 노무현 대통령이 스위스에서 귀국해서 그때 제가 WTO에서 근무하고 있었는데. 세계무역기구에서 스위스에서, 근무하고 있었는데 통상에 대해서 좀 브리핑을 해 달라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때 보통...
김어준 : 당선자 시절에.
김현종 : 보통 한 1년에 2-3달은 판결문을 작성해야 하니까 그때는 한 새벽 4시쯤에 출근했던 것으로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전화가 한 5시쯤 와서 그래서 당선자 시절 때 만나서 뵀는데 딱 뵈니까 故 노무현 대통령님 스타일이 멋있고 참 마음에 들더라고요. 그래서 매우 좋아했습니다. 매우 좋아하게 됐습니다.
김어준 : 故노무현 대통령이 좋아서 같이 일하게 됐다, 말하자면. 뭐가 그렇게 좋으셨습니까?
김현종 : 딱 이렇게 한 몇 분 동안 말씀을 하시는 걸 들어보니까 故노무현 대통령께서는 애국적인 분노를 갖고 계시더라고요.
김어준 : 애국적인 분노?
김현종 : 예, 그리고 매우 직관적이고 본능적이고 그리고 역사에 대한 안목과 통찰력이 있어서 판단도 정확하신 것 같아서 대통령하고 그날 첫날부터 이렇게 딱.
김어준 : 통했어요?
김현종 : 예, 통했습니다.
김어준 : 이런 얘기는 처음 하시는 것 같은데. 못 들어본 얘기인데. 개인적인 얘기 자체를 거의 안 하셨어요. 거의 FTA 질문만 계속하니까 그렇기도 하겠지만. 그렇군요. 처음 듣는 얘기입니다. 故노무현 대통령은 지지층 이탈 감수하면서 FTA 추진했습니다. 지금도 그때 결정이 옳았다고 생각하십니까?
김현종 : 그때 이제 한미 FTA라는 것은 만병통치약은 절대로 아니고요. 다만 이 절차가 우리 민족이 겪어야 할 통과의 의례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그렇게 얘기했냐니까 예를 들자면 구한말 때에 관련된 책을 보면 이거 참 답답하지 않습니까? 아니면 미스터선샤인 드라마 보면 거기에 나오는 관료들이나 아니면 고위 관료들이 결정하는 게 참 많이 답답한데,
김어준 : 시대를 못 읽고.
김현종 : 그래서 이 역사의 안목과 통찰력을 갖고 지금 시대가 변하고 있으니까 거기에 맞춰야 하는데 이때는 우리가 다자보다도 양자적인 FTA를 할 시대였거든요, 흐름이. 주류가. 그런데 이것을 안 할 수가 없었고. 그래서 故 노무현 대통령께서 뚝심을 갖고 이건 지지자들이 이탈할 수는 있지만 이걸 안 하면 안 되겠다. 그리고 또 같이 이해찬 총리께서 당시 똑같은 의견을 제시하셔서 한미FTA를 할 수 있게 되었던 겁니다.
김어준 : 지금도 그러니까 그때 결정은 필요했던 결정이다, 시대적으로. 그렇게 생각하시는군요.
김현종 : 그때는 제 생각에는 협상을 좀 괜찮게 했다. 뭐 51:49? 6:4? 대통령께 끝낸 다음에 6:4 시합을 했는데 상대방이 있으니까 51:49로 홍보하겠다고 말씀을 드렸죠. 그런데 다만 그때 제가 수치로 이것을 제가 잘했다는, 우리가 협상을 괜찮게 했다는 증거가 없어서 이제 홍보를 강하게는 못 했었습니다.
김어준 : 홍보를 못한 정도가 아니라 제가 기억하기로는 거의 매국노 수준으로 공격을 받으셨고, 진보진영으로부터. 그리고 ‘검은 머리 외국인이다’부터 시작해서 온갖 비판을 많이 받으셨는데. 그런 비판이 있을 수 있습니다, 각 진영으로부터. 그런데 제가 기억하기로는 본인의 홍보가 부족했던 게 아니라. 그것도 없었지만. 그런 비판들에 대해서 ‘그거는 그렇지 않습니다’, ‘이거는 이러합니다’라고 검은 머리 외국인 이라는 비판에 대해서는 굉장히 인신공격인데 항변하신 적이 없어요. 왜 그렇게 항변을 한 번도 안 하셨습니까?
김현종 : 공장장께서 보셔서 아시겠지만 제 머리가 이제 많이 하얘졌고요. 그 당시에.
김어준 : 그때 하얘지신 겁니까?
김현종 : 그때 많이 하얘졌습니다. 고민을 좀 많이 했거든요. 그래서 지금 그 당시에는 협상에 집중하느라고 그런 얘기가 잘 들리지 않았고요. 그래서 나중에 끝나고 나서 이렇게 기사들을 몇 개 보니까 조금, 아주 조금, 약간 억울한 면이 있어서 ‘김현종, 한미FTA를 말하다’라는 책을 썼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책이 안 팔렸죠.
김어준 : 그러니까 그게 일일이 항변할 수 없었고 너무 바빴고 끝나고 봤더니 그런 비판이 있어서 그건 그렇지 않다 라고 조목조목 본부장님 성격에 맞게 쭉 책으로 다 썼는데 아무도 안 읽더라 그거죠?
김현종 : 생각해 보니까 500페이지 책을 썼는데 누가 읽겠습니까? 그래서, 그런데 이제 나중에 결과적으로 보니까 그때 한미FTA에 관련된 괴담이 많았지 않았습니까? 예를 들자면 감기약 1봉지가 10만 원이 되고 맹장수술이 900만 원이 된다. 아니면 수돗물 가격이 올라서 빗물을 받아써야 될 것이다 이런 괴담이 많았었는데. 제가 나중에 체크를 해 봤는데.
김어준 : 팩트 체크요? 영어가 더 편하신 분이라.
김현종 : 6인실 기준으로 해서 2012년도에 맹장수술이 41만 원인데 FTA가 발효하고 난 이후에 2016년에 45만 원으로, 4만 원이 올랐더라고요. 그래서 900만 원이 안 됐고 또 이제 결과적으로 보면.
김어준 : 뒤끝이 오랫동안 있으신 분이군요. 꼼꼼하게.
김현종 : 뒤끝은 없습니다.
김어준 : 뒤끝을 소개한 책으로 말할 뿐.
김현종 : 그리고 아까 말씀하신 대로 검은 머리 외국인은 이거는 심한 표현이기는 했는데 저는 그때 이렇게 생각했었습니다. 단군 이래 우리가 5천 년 동안 단일 민족으로 같이 살았는데. 그러면 나라가 잘 되기 위해서 비판을 한 거기 때문에 나하고도 의견이 다를 수가 있겠구나. 그래서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그 결과가 다 말해 줄 것인데. 그 당시에는 결과가 없었기 때문에 제가 그것에 대해서 홍보할 수도 없었고. 그런데 나중에 결과가 나오는 걸 보니까. 예를 들어서 FTA 하기 1년 전에 2011년에는 대미 무역흑자가 116억 불이었는데 2016년에는 그게 233억불이 됩니다. 작년에는 180억불이 됐는데 180억불로 조금 줄어든 이유가 우리가 에너지를 좀 미국에서 38.7억불을 또 수입해 왔습니다. 그렇지만 교역량은 계속 늘고 있고. 그래서 전반적으로 봤을 때 한미FTA는 우리한테 도움이 됐다.
김어준 : 6:4정도로.
김현종 : 51:49라고 말씀을 드리는 게 더 좋을 것 같고요.
김어준 : 그런 점도 있기는 합니다. 지금은 몰라도 틀림없이 미국이 숨겨놓은 카드 때문에 우리가 불이익을 당할까 두려움이 컸었죠. 두려움이 진영과 합쳐져서 그런 반응이 나왔을 것 같은데. 그 얘기는 다음에 모셔서 다시 한 번 하기로 하고요. 그런데 머리가 샐 정도로 고생하셨는데 문 대통령은 왜 본부장님을 또다시 통상교섭본부장으로 다시 똑같은 자리에 부르셨을까요?
김현종 : 제 생각에는 통상교섭본부장을 2번을 하게 됐는데 그래서 한번은 미국에서 기자회견할 때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길래 이거를 2번이나 해야 하고, 미국 애들하고 2번씩이나 협상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이런 하소연을 제가 털어놓기는 했던 게 사실입니다. 그런데 문 대통령께서 저를 아마 통상교섭본부장을 다시 시킨 이유는 지금 전 세계에서 트럼프 대통령 이후 전 세계에서 지금 일어나고 있는 통상 분야를 보니까 이게 평시에서 전시로 바뀌었다는 것을 아마 느낄 수 있었던.
김어준 : 통상 분야에서도 전쟁이 일어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김현종 : 예, 평시의 상황에서 전시 상황으로 변했다. 그리고 이게 통상 용어를 사용하자면 자유무역이 관리무역으로 가고 있다. 그걸 아마 캐치하신 것 같고. 그리고...
김어준 : 그런데 그걸 굳이 본부장님한테 다시 맡기신 이유는 뭡니까?
김현종 : 아마 제 생각으로는 참여정부 때 한미 FTA를 협상했고 성사시켰기 때문에 이게 국익에 합치하지 않으면 성격상 김현종 본부장은 이게 국익에 맞지 않으면 손해가 본다 생각이 들면 깨겠다, 깰 수도 있는 사람이다 이런 판단을 하셨을 것 같아요. 제 생각에는.
김어준 : 그때도 그런 태도였고 그러니까 우리한테 도움이 안 되면 나는 깨버릴 것이다.
김현종 : 문 대통령께서 알고 계신 게 뭐냐니까 제가 협상에 임할 때 두 가지 원칙을 지킵니다. 첫 번째는 故노무현 대통령께서 지시한 대로 장사치 논리로 협상에 임해라. 그리고 만약에 불리하면 깨라. 그리고 두 번째는 단재 신채호가 언급했던 얘기인데 협상까지 3개를 상대해서 결과를 잘 내야지만 민족의 운명을 개척해 나갈 수 있다 해서 우리는 두 가지 원칙을 갖고 협상에 임하기 때문에 그렇게 크게 손해 보는 장사는 안 합니다.
김어준 : 문 대통령이 10년 전에 그걸 보고 불리하면 깰 사람이고 이번에는 단호하게 나가야 하고 적합한 인물이고 그때도 성과를 냈으니. 문 대통령의 판단을 알겠습니다. 그런데 본인은 10년 전에 머리가 샐 정도로 고생했는데 이걸 또 왜 받으셨어요?
김현종 : 국가에서 부르면 언제든지 나가야 하지 않습니까? 이스라엘 같은 경우에는 전쟁이 터지면 유태인들이 하던 일을 다 버리고 전쟁터 전선에 나가는데 똑같은 개념이죠.
김어준 : 통상에서 전쟁이 벌어졌다.
김현종 : 네, 영어로 표현을 하자면, DUTY CALLS. 그때는 이제... 오전부터 영어 써서 죄송합니다.
김어준 : DUTY CALLS.
김현종 : 그래서 이 분야에 나와서 한번 협상을 또.
김어준 : 평시라면 내가 필요 없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하면서 전쟁이 벌어졌구나, 통상에서. 할 수 없다 내가 나가야지 이런 생각을 그냥 받아들이신 거군요.
김현종 : 네, 그렇습니다.
김어준 : 즐겁지 않지만.
김현종 : 예, 즐겁... 즐겁지 않다는 건 그건 이제 아침 너무 일찍이 인터뷰 하느라고 제가 질문을 잘 못 들었는데 즐겁지 않은 건 아니고요.
김어준 : 전쟁도 성격상 즐겁게 하십니까?
김현종 : 그건 아니고 많이 고민을 많이 합니다.
김어준 : 이런 인터뷰를 하셨더라고요. 트럼프 정부가 한미 FTA를 폐기라는 단어를 쓰면서 치고 나올 것이다. 그걸 예상했다. 그걸 어떻게 예상하셨어요?
김현종 : 저는 미국 대선 전에 미국에 가서 한 몇 개월 동안 힐러리하고 트럼프 대통령 캠프를 연구를 했었습니다. 제가 보니까...
김어준 : 아무도 안 시켰는데요?
김현종 : 제가 그때 실업자였거든요. 그때 그래서 좀 자유로운 몸이라서 그때 미국 가서 연구를 하고 있었는데 제가 딱 보니까 백인 중산층의 몰락을 봤을 때 일자리가 없어졌을 때 이 백인들의 절실함?
김어준 : 좌절감.
김현종 : 네, 좌절감과 절실함. 그리고 일자리가 없어짐으로 인해서. 그래서 이건 트럼프 대통령이 진짜 승리할 수 있겠구나, 이길 수 있겠구나 했는데.
김어준 : 결국 이겼고.
김현종 : 네, 이겼고 그리고 트럼프를 지지하는 지지자들은 미국우선주의. 그래서 미국의 이익을 먼저 우선하는 이런 정책을 밀고 나가야, 이행해야 한다.
김어준 : 피해의식, 박탈감 있는 백인들이죠.
김현종 : 그래서 사실은 이런 경제가 나빠질 때는 그게 자동화 때문에 일자리들이 많이 없어지는데. 자동화를 해서 그런 물건들을 제작하기 때문에 없어지는데 사실은 많은 사람들이 자유무역협정 때문에 통상이나 분야 때문에 일자리가 없어진다.
김어준 : 외국인들이 그렇게 알고 있었다는 거죠?
김현종 : 아니,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알고 그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거는 폐기 가능성이 있겠구나. 그래서 이제 우즈워드가 쓴 'Fear'라는 책에 보면 폐기하겠다는 편지까지 작성해서 보내기 직전까지 갔었습니다.
김어준 : 실제 한미정상회담 첫 번째 하고 나서 한미 FTA 얘기 나왔죠, 그때. 그리고 실제 협상하는 과정에서 미국 쪽에서 폐기 언급 같은 거 했었나요? 실제 협상테이블에서는.
김현종 : 예, 만약에 미국 측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폐기하겠다. 요구사항을 보면 사실상 폐기에 준하는 수준까지 요구를 했었습니다.
김어준 : 이거를 받아들이느니 차라리 폐기하는 게 나을 정도로?
김현종 : 그래서 저는 어떤 생각을 했었냐 하니까 이런 무리한 요구사항을 들어주느니 차라리 이거는 우리가 폐기하는 게 국익 차원에서 우리한테 더 유리하겠다.
김어준 : 초반에도 그렇게 생각하시고 임하셨어요?
김현종 : 예, 그렇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협상하고 할 때는 제가 폐기하겠다고 그러면 상대방은 제 얘기에 대해서 이게 진짜인지, 사실인지 모르지 않습니까. 블러핑을 할 수 있는 거거든요. 그래서 이걸 왜 폐기할 것인가를 제가 설명해야 됐습니다. 그래서 그걸 설명할 때 이거는 지금 우리가 모든 상품에 대해서 지금 즉시 관세를 철폐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는 것보다도 차라리 이것을 폐기하고. 우리는 미국하고 교역량이 12%밖에 안 되거든요.
김어준 : 지금 말씀하시는 건 본부장님이 미국 쪽에서 그렇게 나올 때 그러면 우리도 폐기할 수 있다, 우리도 폐기하는 게 낫다 이런 논리를 말씀하셨다는 거죠?
김현종 : 그렇습니다. 우리 민족 차원에서 이거는 폐기하고 가는 게 낫겠다.
김어준 : 그러면 미국도 폐기라는 단어를 거론하면서 시작했고 본부장님도 그렇다면 우리도 폐기하는 게 나아 이렇게 부딪혔잖아요. 그러면 강대강으로 부딪혔는데 어떻게 협상이 이렇게 빨리 끝났죠?
김현종 : 제 생각에는 미국 측에서 김현종 본부장이 우리보다 먼저 폐기할 수 있겠구나 이런 계산을 한 것 같습니다.
김어준 : 진짜로, 진짜로 본부장님이 폐기할까봐.
김현종 : 네, 그래서 제가 왜 이것을 제가 폐기할 것인가를 논리적으로 설명했거든요.
김어준 : 한국의 입장에서 폐기가 낫다. 이거를 받아들이는 거보다. 자, 봐봐라. 이러이러하지. 미국하고 교역량 우리 얼마 안 되지. 그거 폐기하면 우리가 더 이득이야 이렇게 세게 치고 나갔다는 거죠?
김현종 : 그렇습니다.
김어준 : 그랬더니 미국에서 저 사람 진짜로 폐기할지도 모르겠는데. 원래는 저쪽에서는 일종의 블러핑인데 이쪽에서는 진짜 진지하게 폐기까지 생각하니까.
김현종 : 그래서 10년 전에도 그때 故노무현 대통령 당시에도 한미 FTA를 처음에 협상했을 이게 타결 가능했던 이유 중 하나가 제가 미국 측 상대방한테 그런 요구할 바에는 협상을 깨자. 우리 시간 낭비할 필요 없다 이런 표현을 수십 번, 백 번 넘게 해서 아마 제 생각에는 한미FTA가 타결되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이 듭니다.
김어준 : 빡빡한 분이시군요.
김현종 : 그렇지는 않습니다.
김어준 : 미국의 라이트하이저인가요? 원래 같은 로펌에서 일하셨다면서요.
김현종 : 네, 같은 로펌에서 일했었고 저는 뉴욕사무실에서 있었고, 라이트하이저 대표는 이제 워싱턴 사무실에 있었습니다.
김어준 : 그 사람 실력 좀 있는 사람입니까?
김현종 : 아주 능력 있고 실력 있고. 그리고 미국에 대한 비전이 있고 조상이 옛날에 조지워싱턴 대통령하고 같이 독립운동하고 전쟁을 같이 했던 사람이고. 그래서 그 미국 중산층의 몰락에 대해서 걱정을 많이 한 사람입니다.
김어준 : 그러면... 그런데 그 양반이 인터뷰 했던 거 보니까 본부장님 때문에 밥맛 떨어져서 안 되겠다고 했다는데 어떻게 하신... 그렇게 세게 나가니까 그쪽에서 밥맛이 떨어진다고 했던가요? 왜 그런 말을 했죠?
김현종 : 좀 밥맛 떨어지는 사람이라고 표현한 건 사실입니다.
김어준 : 본부장님에 대해서.
김현종 : 그러면서 미국 기자들한테 밥맛 떨어지는 김현종 때문에 술 한 잔 해야겠다. 그것도 술이 좀 알콜 도수가 좀 센 것으로 해야겠다 이렇게 언급을 했는데 그게 사실 첫 회의할 때 제가 8월 4일 부임했지 않습니까? 그런데 임명이 8월 4일 날짜인데 7월에 재협상하자는. 그러니까 상대방의 장수가 없을 때 7월에 재협상하자는 통보를 했어요. 그래서 제가 좀 이거는 좀 공정한 것 같지 않다.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는가.
김어준 : 저쪽 수장도 안 정해졌는데.
김현종 : 저는 좀 기분이 매우 나빴죠. 그래서 워싱턴에 와서 협상하자 그러기에 한미 FTA 본문에 보면 이것을 협상은 요구하는 쪽이 와야 된다. 그러니까 당신네들이 서울에 와라, 나는 아직 정비가 안 됐기 때문에 와주는 게 좋겠다 해서 그것 때문에 결국 워싱턴에 안 가고 서울에 회의를 하게 되고.
김어준 : 왔습니까?
김현종 : 안 왔어요.
김어준 : 결국 안 왔어요?
김현종 : 영상으로 해서.
김어준 : 영상으로 하자.
김현종 : 영상회담을 했는데...
김어준 : 처음부터 기싸움하셨구나.
김현종 : 그러면서 무역흑자가 더 많기 때문에 한미 FTA를 재협상해야 한다 해서 한미 FTA는 무역흑자, 적자를 갖고 이것을 평가할 일이 아니다. 이것은 교역량이 얼마만큼 늘었고 그리고 일자리가 얼마나 더 생겼고 이런 것을 다 한꺼번에 모든 것을 보고 결정해야지 무역 흑자가 조금 늘었다고 해서. 물론 116억불에서 233억불로 늘어난 것에 대해서 거의 더블이 됐으니까 조금 걱정했겠지만 그렇지만 서비스 분야에서는 미국이 더 무역 흑자가 늘었으니까 괜찮다고 제가 얘기했더니 서로간의 의견이 안 맞았습니다.
김어준 : 그러면 9개월 정도 하고 나서는 좀 친해지셨어요?
김현종 : 아니요. 처음 가서 워싱턴에서 만났는데 보통 이런 두 적장들이 만나게 되면 보통 1시간 넘게 회의를 하거든요. 첫 회의는. 그런데 제가 시계를 보고 있었는데 우선 정확히 21분 안에 끝났습니다. 그리고 시베리아 찬바람이 쌩쌩 불었고 얘기를 21분 딱 회의하고 난 다음에 서로 간에 악수도 하지 않고 뒤로 돌아선 다음에 그냥 퇴장했죠. 둘 다, 다.
김어준 : 끝까지 사이는 좋아지지 않았고?
김현종 : 나중에는 사이가 좀 좋아졌습니다. 그렇게 저도 세게 나가니까 나중에 미국 측에서 캐나다하고 멕시코 NAFTA 협상과는 달리 소규모로 타결 가능한 거로 몇 가지만 하자, 그러고 먼저 제안이 옵니다. 그런데 제가 그 제안을 딱 들어보니까 제가 할 수가 있겠더라고요. 그리고 항상 협상할 때는 어떤 게 명분이고 어떤 게 실리인가를 잘 구분해야 하는데 제가 딱 보니까 그렇게 많이 양보 안 해도 될 것 같아서.
김어준 : 본부장님, 본부장님이 이런 분인 줄 아무도 몰랐을 거예요. 저도 몰랐고요. 한 번 더 오셔야겠는데. 질문 절반도 안 했는데 시간이. 자, 이력을 보니까 특이한 점이 있어요. 2011년까지 또 삼성... 이분 이력이 화려합니다. WTO에도 있었지만 UN대사도 하셨고. 그런데 오히려 통상교섭본부장은 오히려 가장 직급으로 보면 낮다? 바로 비교할 순 없지만 그럴 정도로. 제가 이력을 보다가 특이한 점을 발견한 게 뭐냐면 2011년까지는 삼성전자의 사장이셨어요, 또. 삼성전자의 사장 아무나 되는 거 아닌데. 그런데 갑자기 사표를 냅니다. 왜 사표를 내셨습니까, 그때?
김현종 : 그때 2009년에 입사해서 2011년 12월까지. 그러니까 3년 동안 삼성전자에서 근무했습니다.
김어준 : 근무하신 게 아니고 사장이에요. 사장.
김현종 : 사장도 근무하는 거로 알고 있는데. 그래서 공장장께서도 왜 포스코에 입사하고 난 다음에 1년 되기 전에 퇴사했지 않습니까? 아마 그래서 제가 그런 이유로 그런 유사한 이유로.
김어준 : 그런 유사한 이유라니요?
김현종 : 공동체라는 것은 비전하고 전략과 전술단위에서 움직이는데 저하고 그게 맞지가 않았던 거죠. 그래서 저는 이제 회사가 이런 방향으로 가야 하는데 이게...
김어준 : 공동체 정신과 좀 안 맞다고 생각했다, 어느 지점에서?
김현종 : 꼭 좀 우아하게 표현하자면 그런 거겠죠. 그래서 이거는 누가 옳고 그른 문제가 아니지만 서로 생각이 달랐고요. 그리고 그때 대선, 문재인 대통령 대선캠프가 차려졌기 때문에 대선캠프 가서 좀 도와드렸습니다. 그런데 그 이유를 좀 설명을 드리자면...
김어준 : 그러니까 삼성 사장 관두고 문 캠프에 가신 거 아닙니까?
김현종 : 그 이유를 드리자면 사람이란 게 다 에센스라는 게 있지 않습니까? 에센스라는 게 있는데 즉 제일 보람을 찾을 수 있는 분야가 어딘가 이거를 생각해 봤는데 저는 그때만 해도 그때 직장을 7, 8번 옮겼거든요. 제가 계산을 해 보니까 평균 4번에 1번씩 해고가 되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이제 어떤 분들은 돈이 목표가 될 수 있고 어떤 분은 신앙이 중요하고 그런데 저 같은 경우에는 제일 보람을 느꼈을 때가 공직에서 국익, 국력, 국격 증대하는 데 기여할 수 있는 일을 했을 때가 제일 보람을 느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그때 저는 미국에 1968년에 건너갔는데 그때 아마 제 시계가 제 마음 속에는 시계가 멈췄었던 거죠. 그런 다음에 다시 88년도에 귀국했을 때는 68년에 멈췄던 시계가 다시 시작한 거겠죠. 그런데 그때 그 68년도에 처음에 부친께서 부친이 외교부에 계셔서 워싱턴에서 근무를 했을 때 그때는 우리가 국민교육헌장을 외우고 나갔던 그런 시대거든요. 그래서 그때만 하더라도 저는 아직도 그때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한국에서 2년 동안 교육을 받고 나갔는데 그래서 아직도 오늘날 제가 고맙게 느끼는 몇몇 분들이 계시는데 예를 들자면 파독 광부, 간호사. 그리고 월남, 베트남 참전 용사들도 민주. 제가 편하게 유학 공부하고 있을 때 민주화를 위해서 최루탄 맞으면서 민주화를 위한 운동권. 그리고 이제 6,70년도 때 여공들. 수출 드라이브를 한 여공 분들 이런 분들이 계신데 그래서 저도 다시 한 번 이런 차원에서 국가 발전에 기여하고 싶어서 2012년도에 캠프가 차려졌을 때 그쪽에 조인했습니다.
김어준 : 길게 말씀하셨는데 어쨌든 삼성 사장 관두고 문재인 캠프 가서 2012년 끝나고 나서 대선을 이기지 못했기 때문에 그 이후에 커리어가 찾아보니까 없더라고요.
김현종 : 예, 제가 한 3년 동안 실업자가 됐었죠. 일을 뭐 특별히 찾아본 건 아니고. 그래서 그때 제가 통상을 전문적으로 공부했었는데 다른 분야를 좀 하고 싶어서 통자 돌림에 뭐가 있나 찾아보니까 통일이라는 게 있더라고요. 그래서 북한에 대해서 공부를 많이 했었습니다. 사실 UN대사 시절 때부터 북한에 대해서 공부를 좀 했었고요.
김어준 : 그런데 이런 점은 어떠셨어요? 그러니까 10년인데 똑같은 자리에 갔어요. 진급도 아니고. 좀 섭섭한 마음이 생길 수 있지 않습니까? 장관이 된 것도 아니고 굳이 다시 불러서 통상 맡길 거면 장관을 시킬 수도 있는데. 그런 억울한 점은 없으셨어요?
김현종 : 억울하다고 생각한 적은 없고요. 저는 그때 이런 생각을 했었죠. 직위야 어떻게 됐든 간에 내가 들어가서 장관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면 되겠다. 그런 생각을 갖고 들어갔습니다.
김어준 : 혹시 스펙으로 볼 때는 보수진영에서 보수진영 정치권에서 콜 하기 딱 좋은 스펙인데. 그런 제안은 왔을 것이라고 보는데 언제 누구한테 왔는지는 제가 묻지 않겠습니다. 곤란하실 테니까. 왜 거절하셨어요? 안 가신거 보니, 거절하신 것 같은데.
김현종 : 그때 제안이 왔는데 제안이 왔었는데 그런데 장수가 주군을 한 분을 모시지 두 분을 모시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그 이유 하나 때문에 안 갔습니다.
김어준 : 故노무현 대통령을 너무 좋아했었고.
김현종 : 저는 故노무현 대통령을 억수로 좋아했습니다.
김어준 : 그런데 다른 정당은 갈 수 없다?
김현종 : 제 생각에는 그게 맞는 것 같아서 제안을 안 받아들였고,
김어준 : 이미지하고 완전히 다르신 분이네요. 이미지는 뭐랄까. 약간 검은 머리 외국인에 미국적 사고를 가지고 한국말도 잘 못하고. 한국말을 잘하지만 영어를 더 편하게 여기고. 그런 이미지가 있는데 그런데 이력을 보니까 저것도 있더라고요. 미국 로펌에서 일할 때 굳이 귀국해서 학사장교를 마치셨더라고요.
김현종 : 석사장교입니다. 6개월 석사장교를 해서 육개장으로 부릅니다.
김어준 : 아니, 제가... 한 번 더 나와주십시오. 시간이 다 되버렸어요, 시간이. 제가 FTA 물어봐야 하거든요, 잘했는지. FTA 물어봐야 하는데. FTA는 잘됐죠, 결과적으로?
김현종 : 오늘 제가 이런 거 FTA 내용에 대해서 인터뷰하러 나왔는데 FTA내용에 대해서...
김어준 : 한 번 더 모시겠습니다. 김현종 본부장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