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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 사랑한다! '남의' 아기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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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19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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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한다! '남의' 아기들아!

한겨레 원문 기사전송 2018-08-19 09:45 최종수정 2018-08-19 11:45


[한겨레] [토요판] 이런, 홀로!? - 나의 ‘랜선 조카’들

한국, 일본, 미국, 프랑스…

내겐 스무명의 ‘랜선 조카’가 있다

출산·육아의 현실을 알아갈수록

‘남의’ 아기들이 더 예뻐 보였고

부모의 ‘프로페셔널함’에 감동했다

나의 아기이기에 가능한 일들이

‘랜선 이모’인 내게도 생길까



‘랜선 조카의 귀여움’이 성립되기 위해 반드시 전제되어야 하는 조건이 있다. 바로 ‘남의’ 아기일 것. 육아의 책임에서 자유로운 ‘남의’ 아기라면 말도 안 되는 고집을 피워도, 똥을 싸도, 마트 바닥에 털썩 앉아 세상이 떠나가라 울어도 내 눈엔 그저 귀여울 뿐이다. 사진 픽사베이


그는 오늘도 즐겁다. 오전에 엄마랑 함께 만두를 빚었는데, 할머니가 잘 만든다고 칭찬해줘서 신이 났다. 오후엔 밖에 나가 동네 언니들이랑 산책을 하며 놀았고, 더위를 식히기 위해 오렌지맛 쭈쭈바를 열심히 빨아 먹었다. 동네 언니들을 집에 초대해 한 소꿉놀이에선 아기 역할을 도맡았다. 집에서는 태어난 지 7개월밖에 안 된 남동생이 있어 항상 누나지만, 언니들과 함께 놀 땐 언제나 아기 역할을 하며 어리광을 부릴 수 있어 행복하다. 저녁으로는 밥과 토마토달걀볶음을 비벼 먹었고, 자기 전엔 기분이 좋은지 소파에 누워 발바닥을 긁으며 열심히 유치원에서 배운 동요를 불러댔다. 8월의 하루, 일본 삿포로에 거주하는 3살짜리 코하쿠짱(가명)의 이야기다.

그렇다. 코하쿠짱은 내 조카가 아니라 인스타그램으로 팔로하는 계정의 주인공이다. 계정을 관리하는 코하쿠짱의 엄마는 하루에 어림잡아 5~6개의 코하쿠짱 사진을 업로드하는데, 계정 팔로어수가 4만5000여명에 이르는 그야말로 ‘우주 대스타’이시다. 인스타그램 계정에는 코하쿠짱이 먹은 하루 식단부터 노래 부르고 춤추는 모습, 요리하는 모습 등 다양한 사진이 올라온다. 혼난 뒤 눈물 콧물 짜내며 서럽게 우는 코하쿠짱의 영상을 보면 엄마의 성실함을 느낄 수 있는데, 아이가 우는 와중에도 ‘(너무 귀여운 나머지) 이 모습을 꼭 남겨야겠다’고 추측되는 프로정신 때문이다.

코하쿠짱처럼 인스타그램에서 팔로하는 ‘랜선 조카’ 계정은 어림잡아 20여개가량 된다. 한국 아이들도 있지만 일본, 미국, 프랑스에 있는 랜선 조카도 있다. 이런 계정을 왜 팔로하냐고? ‘그저 귀여우니까.’ 물론 ‘그저 귀여움’이 성립되기 위해 반드시 전제되어야 하는 조건이 있다. 바로 ‘남의’ 아기일 것. 육아의 책임에서 자유로운 ‘남의’ 아기라면 말도 안 되는 고집을 피워도, 똥을 싸도, 마트 바닥에 털썩 앉아 세상이 떠나가라 울어도 내 눈엔 그저 귀여울 뿐이다.

남의 아기가 예쁜 이유

올해 초 설 명절 때 함께 전을 부치다가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나 요즘 남의 아기들 보면 너무 예뻐.” 엄마는 내 얼굴을 빤히 바라봤다. “니 애 낳아봐라, 더 예쁠걸.” 엄마의 이 한마디를 시작으로 동그랑땡을 앞뒤로 뒤집으며 설전이 오갔다.

“엄마 나 키울 때 엄청 힘들었다고 하지 않았어? 내 성격 엄청 더러웠다며.”

“그건 맞지. 매일 울고 품에서 떨어질 줄을 몰라서 애먹었으니까.”

“나는 남의 아기들이 예쁘다는 거야. 내가 안 키우니까 당연히 예쁘지.”

“그래도 힘든 거 괴로운 거 다 겪어야 진짜 내 자식 같은 거지.”

‘내 아기가 더 예쁘냐, 남의 아기가 더 예쁘냐.’ 가족 논쟁으로 번진 이 논란은 ‘명절 때 전을 계속 부쳐야 하냐, 마트에서 사먹어도 되냐’처럼 여전히 결론을 내지 못한 채 끝났다.

하지만 ‘남의’ 아기가 더 예쁘다는 나의 주장에도 그들 못지않은 경험적인 이유가 있다. 지난달, 경기도에 사는 친척 언니 집에 놀러 간 적이 있다. 언니는 2년 전 아들을 낳았는데, 독박육아를 하는 탓에 거의 하루 종일 집에 붙어 있다고 했다. 오랜만에 조카를 봐서 신이 난 나에게 언니가 말했다. “조카 두 시간만 봐줄 수 있어? 나 영화관에서 팝콘 먹으면서 영화 보는 게 소원이야.” 마치 구세주를 만난 듯한 그의 표정을 차마 거절할 수 없었다. “언니, 제발, 다녀와.”

2시간 육아? 쉬울 줄 알았다고 생각한 건 오산이었다. 지구별에 안착한 지 2년밖에 안 된 생명체는 궁금한 게 너무 많았다. “이거 뭐야?” “응 이건 사과.” “저거 뭐야?” “응 저건 텔레비전.”…. 성심성의껏 답하는 것도 한두번이지, 이미 지구별에서 30년 가까이 거주하며 찌들 대로 찌든 내가 그의 왕성한 호기심을 감당할 리 만무했다. 질문에 답하는 나의 성실함도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했다. “이거 뭐야?” “이게 뭘까?”(되묻기) “저거 뭐야?” “… 응?”(모른 척하기)

1시간째 이어진 그의 질문 공세에 지쳐버린 나는 결국 비밀 병기인 스마트폰을 꺼내들었다. 동물 그림이 나오는 앱으로 같이 사진을 찍으며 놀다가, 유튜브로 집 나간 아이도 돌아오게 만든다는 동요 ‘상어가족’을 틀었다. 그렇게 5번 정도 반복했을까. “와~ 신난다~ 이제 졸리니까 자자.” 사실 졸린 건 조카가 아니라 나였다. 거실 바닥에 함께 누워 ‘수면’을 강요하는 나의 의도를 눈치챘다는 듯 조카는 집 안이 떠나가라 소리를 지르며 울기 시작했다. 요지는 ‘빨리 상어가족을 틀어 내 눈앞에 대령하라’는 것이었다. ‘아니었는데… 분명히 인스타로 조카 사진을 볼 땐 이쁘기만 했는데….’

언니가 영화를 보러 간 2시간이 2년처럼 흘렀다. 조카의 울음소리에 혼이 쏙 빠진 나는 거실 바닥에 드러누워 생각했다. ‘혹시 아이들은 주변 사람들의 에너지를 빨아먹으며 사는 존재들은 아닐까. 아니, 에너지를 빨아먹어야 사는 존재들인 건 아닐까. 그럼 대체 부모들은 지쳐서 어떻게 육아를 하는 걸까…. 조카가 이쁘긴 하지만 좀 더 커서 의사소통이 가능해지면 와야겠다.’ 사촌 언니에겐 미안했지만, 어쩔 수 없이 이런 생각이 들었다.

부모들의 프로페셔널함에 ‘하트’를

사실 결혼을 하지 않아도, 사촌 언니가 조카를 낳지 않아도 출산과 육아를 간접적으로 알 수 있는 통로는 많다. 포털사이트에는 출산과 육아 과정을 섬세하게 묘사한 웹툰이 많은데, 그중에서도 네이버 <아기 낳는 만화>에는 여성인 나조차도 몰랐던 사실이 많이 나온다. 임산부가 임신 중 조심해야 하는 질병들부터, 출산 직전 관장을 하고, 원활한 출산을 위해 회음부를 절개한다는 내용까지. 웹툰에 줄줄이 달리는 “성교육 시간에 이런 걸 배웠으면 좋겠다”는 댓글처럼, <아기 낳는 만화>는 인간의 일생에서 임신과 출산이 숭고하고 감동적인 만큼 임산부에게 위험하고 힘겨운 과정이라는 사실을 되새기게 한다. 육아와 관련한 웹툰도 마찬가지다.

이런 웹툰을 보고 한 가지 깨달은 게 있다면, 앞으로 출산을 한 임산부를 축하하거나 아이가 있는 집에 방문할 경우 꼭 ‘아이 선물’이 아니라 ‘엄마 선물’을 사야겠다는 다짐이었다.

물론 웹툰 하나 본다고 해서 비혼을 결심하거나 임신과 출산을 포기하진 않을 터다. 누구나 자신이 처한 조건에 따라 가족계획을 세우겠지만 아직은 그런 ‘가족계획’이 무(無)에 수렴하는 나에게 ‘내’ 아이를 키우는 부모님들은 정말 대단할 뿐이다. 말이 통하지 않아 답답해도, 아이가 이해하지 못할 고집을 피워도, 아무리 미운 짓을 해도 그것조차도 사랑으로 감싸는 부모들의 능력은 그야말로 ‘프로페셔널함’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런 일들은 ‘남의’ 아기가 아니라 ‘내’ 아기여서 가능한 걸지도 모르겠다.

나이 서른이 되도록 내 앞가림도 잘 못하는데 한 생명을 책임져 기를 수 있을까. 엄마는 내가 이런 질문을 하면 ‘낳으면 다 키우게 되어 있다’고 말하지만, 그건 스무살 초반에 아이 둘을 낳아 기른 육아 고단수의 조언이기 때문에 별로 참고가 되지 않는다.(참고하면 위험하다) 아직 맞이하지 않은 출산과 육아를 걱정하기보단, 인스타그램에 뜨는 ‘남의’ 아이들 사진을 보며 ‘아유 오늘도 귀엽네~’라고 중얼거리며 힐링하는 게 더 행복하고 즐거운 이유다.

물론 ‘랜선’ 조카들에게 실제 조카처럼 뭘 사주고, 먹여주고, 입혀주고, 돌봐줄 순 없다. 그래도 ‘하트’는 열심히 누르고, ‘예쁘다’는 댓글은 열심히 달 수 있다. 겉핥기로라도 아직 경험하지 못한 ‘육아’의 아름다움을 맛보여주는 그들과 부모님들에게 보내는.

랜선 이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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