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小笠原事件, 父島人肉食事事件
1945년에 2월 경 오가사와라 제도의 치치지마에서 벌어진 사건. 일본 측에서는 사건 축소 및 왜곡을 위해 오가사와라 사건이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정확한 이름은 치치지마섬 식인 사건이다.
이 사건은 단순한 살인 사건이 아니다. 술자리에서 술안주가 떨어지자 산 사람을 일부러 살해하고 그 시신을 '술안주로' 먹은 식인이었다. 특히 문제는 이 사건을 저지른 다치바나 요시오의 휘하 부대는 식량부족으로 고생하던 형편도 아니었다는 것이다. 오히려 임팔 작전 때 무타구치 렌야 휘하의 일본군 식량사정이 훨씬 더 열악했다.[1] 그럼에도 임팔 작전 당시의 지휘부는 최소한 식인을 명령하진 않았으며, 어쩔 수 없이 식인을 했던 부대들이 있었지만 이는 극도로 처참한 신세에 처한 일부 부대들에 한정되었다. 게다가 그 부대들도 이미 전사한 사체들만 먹었다.[2][3]
도쿄 전범 재판에서 일본인 전범들에게 무죄를 선고했던 라다비노드 팔 판사도 이 정신 나간 작자들의 행각에 혀를 내두르며 사형 선고를 주저없이 내렸을 정도였다.
2. 무슨 일이 있었는가?
섬의 수비를 맡은 일본 육군 중장 다치바나 요시오 (立花芳夫)와 그 부하들이 재미로 인육을 먹기위해 미군 포로를 살해해 인육을 먹고, 대대원들에게도 인육을 강제로 먹인 사건.[4]
2.1. 원인
사실 전쟁 중에 고립된 부대가 식량이 부족해서 식인을 하는 것은 종종 있는 일이다.[5] 소련군도 레닌그라드 공방전에서는 식량이 심각하게 부족해서 죽은 사람의 시체를 먹는 일이 너무 빈번하게 일어나서 따로 식인을 막기 위한 임시 자경대를 만들어야 했고, 독일군 6군도 스탈린그라드에 갇혀서 보급이 안되자 시신을 먹는 일이 종종 있었다. 문제는 소련군이나 독일군 같은 경우는 이미 죽은 사람의 시체였고 식량부족이란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저지른 거지만, 일본군은 치치지마에 있을 당시 식량이 심각하게 부족한 상태도 아니었던데다가 살아 있는 사람도 죽여서 먹었다는 점이다.
특히 일본군은 열대 섬이라는 특수환경[6]과 연합군이 보급선을 열심히 박살내버리는 작전의 이중 크리가 터지면서 결국 기아에 허덕이다 인육을 먹는 사례가 자주 있었다. 이 나무위키에 등재된 밀리환초 학살사건도 같은 맥락. 실제 뉴기니 전선에서 육군 제18군사령부는 1944년 12월에 "연합군의 인육을 먹는 것은 허락하지만 아군의 인육을 먹으면 엄중하게 처벌한다"는 지침을 내렸으며, 실제로 명령을 위반한 병사 4명을 처벌했던 것이 전후 도쿄전범재판 때 밝혀졌다.[7]
미군도 처음에는 식량 부족으로 이런 짓을 저질렀나보다 생각했지만, 상술했듯 치치지마는 결코 식량 부족 때문에 식인을 한 것이 아니였다. 당시 치치지마의 식량상황은 쌀 배급량이 5홉에서 3홉으로 줄었지만[8][9]본토보다는 훨씬 사정이 나았다. 추가 조사 결과 식인의 동기는 어처구니 없게도 식인을 통해 수비대 장병들의 사기를 돋우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처벌이 엄청나게 셌던 것도 실은 이 때문이다. 그 악명 높은 일빠라다비노드 팔 판사도 도저히 정상 참작을 해줄 수가 없어서 사형을 선고했을 지경이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사기진작을 한답시고 한 행동이 고위장교 몇명이서 인육에 술파티를 벌인것이 고작(?)이다. 병사들의 사기진작을 위해서라고 보기에는 어려운 측면이 있다. 결국 식인 사건의 동기는 사기진작을 위한 소영웅주의나 엽기적인 호기심, 그리고 포로를 학대하는 일본의 군사문화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데에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이 식인종들을 재판한 괌에서의 재판 경과와 증언들을 보면 특별한 술안주가 먹고 싶어서그냥 술에 찌들어 있었나 보다일 가능성이 높다. 자세한 증언들은 괌에서 열린 이 식인종들에 대한 군사 재판을 참고하자.
더 많은 내용은 https://namu.wiki/w/치치지마섬 식인 사건
부시 아빠가 여기서 유일하게 생존함
小笠原事件, 父島人肉食事事件
1945년에 2월 경 오가사와라 제도의 치치지마에서 벌어진 사건. 일본 측에서는 사건 축소 및 왜곡을 위해 오가사와라 사건이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정확한 이름은 치치지마섬 식인 사건이다.
이 사건은 단순한 살인 사건이 아니다. 술자리에서 술안주가 떨어지자 산 사람을 일부러 살해하고 그 시신을 '술안주로' 먹은 식인이었다. 특히 문제는 이 사건을 저지른 다치바나 요시오의 휘하 부대는 식량부족으로 고생하던 형편도 아니었다는 것이다. 오히려 임팔 작전 때 무타구치 렌야 휘하의 일본군 식량사정이 훨씬 더 열악했다.[1] 그럼에도 임팔 작전 당시의 지휘부는 최소한 식인을 명령하진 않았으며, 어쩔 수 없이 식인을 했던 부대들이 있었지만 이는 극도로 처참한 신세에 처한 일부 부대들에 한정되었다. 게다가 그 부대들도 이미 전사한 사체들만 먹었다.[2][3]
도쿄 전범 재판에서 일본인 전범들에게 무죄를 선고했던 라다비노드 팔 판사도 이 정신 나간 작자들의 행각에 혀를 내두르며 사형 선고를 주저없이 내렸을 정도였다.
2. 무슨 일이 있었는가?
섬의 수비를 맡은 일본 육군 중장 다치바나 요시오 (立花芳夫)와 그 부하들이 재미로 인육을 먹기위해 미군 포로를 살해해 인육을 먹고, 대대원들에게도 인육을 강제로 먹인 사건.[4]
2.1. 원인
사실 전쟁 중에 고립된 부대가 식량이 부족해서 식인을 하는 것은 종종 있는 일이다.[5] 소련군도 레닌그라드 공방전에서는 식량이 심각하게 부족해서 죽은 사람의 시체를 먹는 일이 너무 빈번하게 일어나서 따로 식인을 막기 위한 임시 자경대를 만들어야 했고, 독일군 6군도 스탈린그라드에 갇혀서 보급이 안되자 시신을 먹는 일이 종종 있었다. 문제는 소련군이나 독일군 같은 경우는 이미 죽은 사람의 시체였고 식량부족이란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저지른 거지만, 일본군은 치치지마에 있을 당시 식량이 심각하게 부족한 상태도 아니었던데다가 살아 있는 사람도 죽여서 먹었다는 점이다.
특히 일본군은 열대 섬이라는 특수환경[6]과 연합군이 보급선을 열심히 박살내버리는 작전의 이중 크리가 터지면서 결국 기아에 허덕이다 인육을 먹는 사례가 자주 있었다. 이 나무위키에 등재된 밀리환초 학살사건도 같은 맥락. 실제 뉴기니 전선에서 육군 제18군사령부는 1944년 12월에 "연합군의 인육을 먹는 것은 허락하지만 아군의 인육을 먹으면 엄중하게 처벌한다"는 지침을 내렸으며, 실제로 명령을 위반한 병사 4명을 처벌했던 것이 전후 도쿄전범재판 때 밝혀졌다.[7]
미군도 처음에는 식량 부족으로 이런 짓을 저질렀나보다 생각했지만, 상술했듯 치치지마는 결코 식량 부족 때문에 식인을 한 것이 아니였다. 당시 치치지마의 식량상황은 쌀 배급량이 5홉에서 3홉으로 줄었지만[8][9]본토보다는 훨씬 사정이 나았다. 추가 조사 결과 식인의 동기는 어처구니 없게도 식인을 통해 수비대 장병들의 사기를 돋우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처벌이 엄청나게 셌던 것도 실은 이 때문이다. 그 악명 높은 일빠라다비노드 팔 판사도 도저히 정상 참작을 해줄 수가 없어서 사형을 선고했을 지경이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사기진작을 한답시고 한 행동이 고위장교 몇명이서 인육에 술파티를 벌인것이 고작(?)이다. 병사들의 사기진작을 위해서라고 보기에는 어려운 측면이 있다. 결국 식인 사건의 동기는 사기진작을 위한 소영웅주의나 엽기적인 호기심, 그리고 포로를 학대하는 일본의 군사문화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데에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이 식인종들을 재판한 괌에서의 재판 경과와 증언들을 보면 특별한 술안주가 먹고 싶어서그냥 술에 찌들어 있었나 보다일 가능성이 높다. 자세한 증언들은 괌에서 열린 이 식인종들에 대한 군사 재판을 참고하자.
더 많은 내용은 https://namu.wiki/w/치치지마섬 식인 사건
부시 아빠가 여기서 유일하게 생존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