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0년대 들어 고래 연구를 획기적으로 발전시킨 건 잠수함이나 다이빙 기술이 아니다. 오히려 바다와 직접적 관련이 없는, 하늘을 날아다니는 ‘드론’과 살아있는 동물 몸에 부착하는 카메라인 ‘크리터캠'이 고래에 대한 앎의 폭을 넓혀주고 있다.
애피 동영상 해설사가 처음 소개하는 동영상은 지구에서 가장 큰 생명체 대왕고래다. 대왕고래는 개체 수가 매우 적은 데다(1만 마리 이하), 관찰 기회도 수면 위로 올라오는 몇 초의 찰나이기 때문에(다른 고래도 그렇지만),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동물 중 하나다.
그러나 지난 5월 미국 오리건주립대학교 해양동물연구소가 포착한 드론 영상은 이 거대한 생명체의 신비로움에 더해 새로운 지식을 던져줬다.
뉴질랜드 남쪽 바다. 한 대왕고래가 헤엄을 치고 있다. 주 먹이인 크릴 떼를 발견한다. 크릴은 새우 같은 갑각류다. 대왕고래는 크릴 떼가 가까워지자 천천히 입을 벌린다. 꼬리를 치고 그 반동을 이용하여 크릴 떼에 돌진한다.
재밌는 것은 사냥하기 전과 사냥을 한 후의 대왕고래의 속도다. 원래 대왕고래의 속도는 시속 11㎞였으나, 큰 입을 벌려 크릴을 삼킨 직후의 속도는 시속 1.8㎞로 급격하게 떨어진다. 쉽게 말해 전속력으로 달리다가 ‘브레이크'를 밟은 것이다.
대왕고래는 시속 10~20㎞에서 빠르면 시속 50㎞로 수영한다. 그런데 크릴을 사냥하려면 정확하게 조준하기 위해 브레이크를 밟아야 한다. 동영상을 보라. 꼬리를 치고 돌진하다가 입속에 크릴이 들어가기 시작하면 브레이크를 밟아 (크릴을 흘리지 않도록) 크릴을 정교하게 입에 넣는다. 브레이크를 밟아야 한다. 만약 같은 속도로 계속 간다면, 먹이를 많이 흘릴 것이다.
물속에서 거의 멈춘 대왕고래가 다시 속도를 회복하려면 정말로 힘이 든다. 상상해보라. 주행중 정지한 경차보다 콘테이너 화물트럭이 다시 출발하려면 더 많은 힘과 오랜 시간이 소요된다. 하물며 대왕고래는 어떠랴. 100t이 넘는 거구로, 한때 지구를 호령하다 멸종한 공룡보다도 큰 ‘초거구’다. 초고도비만인 사람이 한번 앉았다 일어나면 숨을 헐떡이듯이, 한번 멈춘 대왕고래가 다시 시동을 걸고 나아가려면 많은 에너지가 소비된다.
즉, 대왕고래가 입만 벌리고 편하게 먹는 것처럼 보이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는 얘기다. 리 토레스 박사(오리건주립대 해양동물연구소)는 이런 설명을 덧붙인다. “많은 에너지를 소비해야 하므로 대왕고래는 꽤 까다롭게 사냥감을 선정할 것이다.”
당신이 몸무게가 173톤인 대왕고래가 되어보라. 앉았다 일어서는 것조차 힘들 것이다. 그래서 대왕고래는 먹이를 봐도 아무때나 멈추지 않는다. 애초에 규모가 크고 적당히 군집되어 한입에 ‘쏙’ 들어가는 크릴 떼를 고를 것이다.
영상 박선하 프리랜서 피디, 글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