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영 증조부 안상호 둘러싼 친일 의혹…‘고종 독살설’ 연류 과거 기록 살펴보니
무명의 더쿠
|
16:57 |
조회 수 2729
안상호의 친일설에 가장 힘을 실어주고 있는 부분은 1918년 12월 10일 조선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와의 인터뷰다. 그는 ‘일선동화의 가정’(一鮮同化의 가정), 즉 ‘일본인처럼 생활하고 동화되는 것이 모범적이다’라는 사례로 기사에 실린 바 있다. 해당 기사는 국립중앙도서관에서 확인 가능하다. 일본인 아내와 결혼해 가정을 꾸린 안상호는 “나도 지금 조선 옷은 한 번도 입지 아니하고 음식도 매운 것은 조금도 못 먹는다”며 “자녀들이 집에서 일본어만 사용한다. 조선말은 전혀 하지 못한다. 완전한 일본인 가정으로 키우고 있다. 집안에선 전적으로 일본어만 사용하며 조선 사람과는 교류하지 않는다”고 ‘일본인화’ 된 점을 자랑스럽게 늘어놨다. 내선일체는 일제강점기 친일파들이 매국 행위를 정당화환 핵심 친일 논리이다.
특히 1919년에는 고종이 덕수궁 함녕전에서 뇌출혈로 쓰러지자, 급히 진료했으나 끝내 구하지 못했으며, 이로 인해 그는 일본인의 사주로 고종에게 독약을 올렸다는 의혹에 휘말렸다. 해당 의혹은 뚜렷한 증거가 없어 학계에선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 밖에도 안상호가 1916년 11월29일 대정친목회가 결성될 당시 안상호가 윤치호, 유병필 등과 함께 평의원으로 참여했다는 기록이 있는 만큼 또한 친일 행적을 한 것으로 해석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등 역사자료에서는 대정친목회를 일제강점기 친일단체로 다룬다. 이후 이 단체는 다른 친일단체들과 함께 ‘내선융화’ 등을 내건 친일단체 연합에도 참여했다.
https://naver.me/xrzWE9V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