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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 외국인 비싸게 팔고 나갈 기회만 줬다

무명의 더쿠 | 15:56 | 조회 수 4271

"10년 공든 탑이 무너졌다. 10여년 동안 국내 주식 비중을 매년 0.5~0.8%포인트씩 줄여 20%대에서 14%대까지 왔는데, 갑자기 원칙을 내팽개치고 20.8%로 다시 높여버렸다."

 

지난해 코스피지수가 급등하자 국민연금은 올해 1월 국내 주식 목표비중을 14.4%에서 14.9%로 상향 조정하고 리밸런싱을 올해 6월 말까지 유예하기로 했다. 5월에는 국내 주식 목표비중을 20.8%로 대폭 상향 조정했다. 주가 급등으로 국내 주식 목표비중을 초과하게 됐는데, 시장에 악영향을 줄까 봐 국민연금이 주식을 팔지 못하게 한 것이다. 6월 말까지 주식을 팔지 못하도록 리밸런싱을 유예한 게 6·3 지방선거 때문이라는 얘기도 있다.


정치적인 고려 등으로 국민연금이 리밸런싱을 유예하는 상황에서 코스피의 또 다른 큰손인 외국인 투자가는 꾸준하게 리밸런싱을 실행했다. 올해 상반기에 코스피시장에서 외국인은 149조원어치 주식을 순매도했고 개인은 99조원어치, 기관은 35조원어치를 순매수했다. 리밸런싱을 하는 이유는 지역별, 섹터별 투자 비중을 지킨다는 원칙 때문이다. 당연히 수익률과 리스크 분산을 위해서다.

 

올해 1월 리밸런싱 유예 이전, 국민연금의 자산배분 목표비중은 국내 주식 14.4%, 해외주식 38.9%다. 전체(국내+해외) 주식에서 국내 주식 비중은 27%인 셈이다. 한국 주식시장은 전 세계 주식시장의 2% 수준이라고 한다. 이 점을 고려하면 그때도 이미 국내 주식 비중은 높아서, 계속 낮아져야 했다. 그런데 올해 5월 국내 주식을 20.8%로 높이고, 해외 주식은 오히려 34.7%로 낮췄다. 전체 주식에서 국내 주식 비중은 37.4%가 됐다.


국민연금이 리밸런싱을 유예한 동안, 즉 올해 1월부터 6월 말까지 코스피지수는 4300 수준에서 8400 수준으로 폭등했다. 국민연금이 리밸런싱을 유예하지 않았다면 코스피지수가 그렇게 높게 오르지는 못했을 것이다. 외국인은 리밸런싱을 통해 149조원어치 주식을 순매도했다. 주가가 그렇게 높게 오르지 않았다면 외국인의 차익과 한국 주식 비중은 더 작았을 것이고, 리밸런싱을 위한 주식 순매도 규모도 더 적었을 것이다. 원·달러 환율 상승 압력도 그만큼 높지 않았을 것이다.


마침 7월 들어서 주가가 하락하기 시작했다. 국민연금이 '리밸런싱 유예'라는 헛발질을 해서 외국인이 국내 주식을 비싸게 팔고 나갈 기회를 줬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국민연금이 원칙대로 리밸런싱을 했더라면 과열된 시장을 다소 안정시키는 데도 도움이 됐을 것이다. 기관투자가의 '시장 안전판' 역할을 강조하는데, 그건 시장이 공포에 질려 주가가 급락할 때뿐 아니라 지나친 한 방향 기대로 과열됐을 때도 마찬가지다.


2015년 삼성물산 합병 때 국민연금의 찬성 투표에 외압을 행사한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과 홍완선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은 각각 징역 2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10년 정도 지났는데 벌써 그때의 교훈을 잊은 것 같다.


지금 국민연금 이사장은 여당 정치인 출신인 김성주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다. 독립성을 의심받기 딱 좋다.


P.S. 일본공적연금(GPIF)도 국내 주식 비중이 높다고 얘기하는데 GPIF의 자산배분 변경은 시장 상황에 따른 임기응변이 아니라 장기적인 거시경제 패러다임 변화, 기금 고갈 시점 등을 고려한 구조적 판단하에 이뤄졌다. 그저 매도를 피하기 위한 게 아니었다.


GPIF는 2014년 디플레이션 탈출을 골자로 하는 '아베노믹스' 정책 기조에 발맞춰 기존 초안전 자산(일본 국채) 중심의 포트폴리오를 위험 자산(주식) 중심으로 전면 개편해 국내 채권 비중을 대폭 줄이고 국내 주식과 해외 주식·채권의 비중을 늘렸다. 일본 국내 채권 60%→35%, 일본 국내 주식 12%→25%, 해외 주식 12%→25%, 해외 채권 11%→15%, 단기자산 5%→0%였다.


2020년에는 일본 내 마이너스 금리 심화에 대응하기 위해 해외 자산 비중을 대폭 늘리는 2차 개편을 단행했다. 일본 국내 채권 35%→25%, 일본 국내 주식 25% 유지, 해외 주식 25% 유지, 해외 채권 15%→25%였다.

 

GPIF는 자산배분 목표비중을 바꿀 때는 거시경제적 판단에 따라 과감하게 변경하지만, 한번 확정된 목표 비중은 기계적이고 엄격하게 고수한다. 최근 일본 증시 급등 당시 GPIF는 25% 상한선을 지키기 위해 매우 큰 규모의 일본 주식을 매도해 시장의 과열을 식히는 완충 장치 역할을 수행했다.

| 출처 : 아시아경제 | https://www.asiae.co.kr/article/2026071307214114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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