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로 518때 군인들에게 잡혀 총칼로 위협받았다가 아버지가 무릎꿇고 빌어서 간신히 살았던 선동열(당시 광주일고 3학년)
실제로는 어떨까. 사실 1980년 5월 18일 당시 선동열이 속한 광주일고 야구부 선수단은 부산에 있었다. 당시 부산에서는 광주-부산 친선야구대회가 열렸는데 이 대회에서 광주일고는 강호 경남고와 경남상고를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그러나 광주 지역에 계엄령이 선포되자 광주로 바로 들어오지 못하고, 여수를 통해 우회해서 들어와야 했다. 당시 광주일고 소속이던 한 야구인은 “원래는 교복으로 갈아입고 이동하는 게 보통이었지만, 당시에는 교복 차림이면 수상하게 보일까 싶어 일부러 유니폼을 입고 학교로 돌아왔다”고 회고했다.
광주 전역이 삼엄한 분위기였지만, 청룡기 전국대회를 앞둔 시점이라 훈련을 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광주 출신 한 야구인은 “당시 시내에서는 연습이 불가능했다. 광주일고도 연습할 수 없는 상황이라 다른 곳을 찾아야 했다”고 했다. 이에 광주일고 야구부원들은 당시에는 광주와 별도의 행정구역이던 외곽의 송정리 동 초등학교에 모여 훈련을 했다. 집이 여수, 목포 등 다른 도시에 있는 선수들 10여명은 선동열의 부친 선판규씨가 운영하는 여관에서 숙박했다. 여기에는 당시 영남대 야구부 소속이던 방수원 전 KIA 타이거즈 코치도 포함되어 있었다.
사건은 5.18 발생 며칠 뒤에 터졌다. 선수들 몇 명이 골목을 지나는데 계엄군을 태운 트럭이 모퉁이를 돌아갔다. 이걸 본 근처에 있던 젊은 남자가 주먹을 날리며 욕설을 퍼부었다. 그런데 그냥 지나갈 줄 알았던 군인들이 차를 세우더니 달려오기 시작했다. 방수원 전 코치는 “선수들은 아무 짓도 안 했는데 야구 유니폼을 입고 있어서 눈에 띈 모양이다. ‘저놈들 잡아라’며 선수들을 향해 달려들었다”고 이야기했다. 욕을 한 사람은 벌써 도망간 상황. 놀라고 겁을 먹은 선수들도 숙소인 여관으로 전력을 다해 도망쳤다.
잠시 후, 대검이 꽂힌 M16을 든 군인들이 여관으로 들이닥쳤다. 여관에는 도망쳐 온 선수들을 포함해 선동열과 선동열의 부친, 조창수 당시 광주일고 감독, 방수원 등 7~8명이 있었다. 당시 함께 있던 야구인은 “무슨 일인지 영문도 모르는데 갑자기 군인들이 나타났으니 아무런 생각도 나질 않았다”고 털어놨다. 군인들은 총검을 방수원의 배에 들이대고는 “죽어볼래?”하고 윽박질렀다. 선동열과 다른 선수들에게도 총검을 들이밀며 “도망간 놈들 어디 있느냐?”고 소리쳤다. 일촉즉발의 상황. 방수원 전 코치는 “배 앞에 대검이 있으니까 ‘이렇게 죽는 건가’ 싶더라. 혼이 나간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그때 알았다”고 이야기했다.
그때 선동열의 아버지 선판규씨가 군인들 앞에 나섰다. “선동열 아버지가 아들뻘인 군인들에게 무릎을 꿇고 통사정을 했다. 얘들은 야구하는 애들이라 아무것도 모른다, 절대 그랬을 리가 없다며 호소하셨다.” 방 전 코치의 기억이다. 다행히 그 자리에는 광주일고 에이스 선동열의 이름을 아는 장교가 있었다. 당시 고 3인 선동열은 이미 전국구 에이스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었다. 장교는 “됐다, 그냥 넘어가자”는 말로 군인들을 진정시킨 뒤 철수했다.
계엄군이 물러간 뒤, 선수들은 한참을 어안이 벙벙한 상태로 있었다. 선동열의 모친이 딸기를 씻어 내왔지만 도저히 목으로 넘어가질 않았다. 방수원 전 코치는 “딸기가 입에 들어가는지 마는지도 몰랐다. 사람이 죽는 걸 직접 못 봤으면 모르겠는데, 실제로 시내에서 군인에게 사람이 죽는 걸 봤기 때문에 더 겁에 질렸던 것 같다. 그때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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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오늘 스타벅스 응원가로 조롱당한 것도 광주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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