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외로 조선보다 전기가 늦게 들어오고 사용도 늦었다는 유명 네임드 제국

그것은 바로 오스만 제국

"....? 오스만은 유럽 바로 옆이잖아... 이스탄불은 그 시대에도 국제적인 대도시였잖아...?"
오스만 제국에서 전기는 1902년 타르수스에서 수력을 이용하여 최초로 제한적인 양이 생산되었다. 이 시기 이전인 1898년에 이즈미르와 셀라니크의 전등 조명을 목적으로 사업권이 부여된 바 있으나, 실제 전력 생산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오스만 최초 전력 생산 : 1902년

우리나라 최초의 전력 생산 : 1899년
1889년 이스탄불의 조명과 관련하여 도시의 배치와 거리 구조를 고려했을 때 전기 조명이 적합하지 않다는 결정이 내려졌으며, 오직 궁궐들에만 전기 조명을 도입하기로 결정되었다.

경복궁 전등 도입이 1887년

오스만 최초의 전차 도입 1914년

조선 최초의 전기 트램 1899년
이런 차이는 당시 조선과 오스만의 군주 성향 차이가 컸는데

고종은 그 시대 노인치고는 엄청난 서양 덕후라서
뭐 신기한 게 있으면 싹싹김치루다가 발빠르게 도입

반면 오스만의 술탄 압뒬하미드 2세는 서구화에 조심스럽고 의심이 많았던 편
술탄은 유럽과 미국의 신문에 가끔 실리는 전기의 위험성에 관한 기사들을 접하며 불안해했다. 1892년 한 미국 신문에 전기의 위험성과 사고에 관한 기사가 게재되었다. 이 기사는 압뒬하미트 2세의 관심을 끌었고, 그는 이 사안에 대해 조사할 것을 명령했다. 일디즈 궁전의 전기 관리자는 해당 신문들을 연구하는 한편, 과학 고문인 에밀 에펜디와 제국의 물리 교사들로부터 정보를 수집했다. 그는 또한 이러한 유형의 사고에 관해 에디슨이 쓴 기사도 읽었다.
술탄 : 전기가 좋긴 한데... 아직 발전이 덜 돼서 위험한 거 아닌가...
신하 : ㄴㄴ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됨
술탄 : 아니 그래도 좀 불안한데...
를 꽤 오래 반복
오스만 제국의 수도와 주요 도시들에 전기가 도입된 시기는 매우 늦은 편이었다. 이러한 상황은 압뒬하미트 2세가 기술적 혁신에 반대했기 때문으로 설명되기도 하며, 그 예로 타라비아 호텔에 전등을 설치하려던 시도를 그가 저지한 사례가 거론된다. 압뒬하미트 2세가 전기에 반대한 이유로, '디나모(dinamo, 발전기)'라는 단어가 '다이너마이트(dinamit)'를 연상시켰기 때문이라고 언급했다.
디나모...디나모...다이너마이트?!
술탄은 전기의 유용성 자체를 부정한 건 아니었음. 오히려 1889년부터 전기 보트, 전기 카메라 구입하고 전기 자동차 사고 이점은 충분히 잘 알고 었었던 편. 다만 기술적인 문제들이 해결될 때까지는 기다리는 게 더 낫다고 봤던 거임.
그래서 전기가 더 안전해지고 사람들이 신뢰할 수 있게 되기 전까지는 함부로 쓰는 건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너무 신중했던 끝에 결국 대부분의 나라가 다 전기를 쓰게 된 20세기 초반까지도 오스만은 주요 산업과 일상생활에서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음. 서구 문물에 대해 지나치게 신중했던 술탄의 결정이 오히려 나라의 산업 발전을 지체시키고 도태되는 결과를 나은 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