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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책속의 이 한줄] 소통 막힌 인간은 '괴물'로 변할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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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28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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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 “유니스 파치먼은 읽을 줄도 쓸 줄도 몰랐기 때문에 커버데일 일가를 죽였다.”―‘활자잔혹극’(루스 렌들·북스피어·2011년) 》
 
 추리소설의 첫 문장치고는 꽤 자신만만하다. 범인은 물론이고 범행 동기까지 단숨에 밝혀 버린다. 이 문장을 통해 작가는 소설이 단순히 단서를 찾아 범인을 추리하는 유희 이상의 무언가가 되도록 하겠다는 야심을 공표한 셈이다.


 소설은 이 문장 다음부터 ‘읽을 줄도 쓸 줄도 몰랐기 때문에 죽였다’는 그 인과 관계를 설명하는 데 집중한다. 유니스 파치먼은 영국 런던 빈민가에서 나고 자랐다. 어릴 때부터 공부에 재능이 없었던 그는 결국 돌봐줄 사람 없는 가난한 환경 속에서 자기 이름만 겨우 쓸 수 있는 정도의 문맹으로 학교를 졸업하고 만다.


 문맹이라는 것은 그저 불편하고 아니고의 문제가 아니다. 대부분 사람이 읽고 쓸 줄 아는 세상에서 문맹은 약점이다. 소통하고 교류하며 자신의 세계를 넓힐 기회를 잃어버린다는 뜻이기도 하다. 파치먼은 완고하고 도덕관념이 희박한 중년 여성이 된다. 또 문맹이라는 사실이 밝혀질까 늘 전전긍긍하며, 세상을 배척하게 됐다.


 런던에서 약 100km 떨어진 시골 마을에 사는 커버데일 가족은 파치먼과는 정반대인 사람들이었다. 모두 고등교육을 받았고, 독서광에 오페라를 즐기는, 이른바 교양 있는 상류층에 속하는 이들이었다.


 비극은 파치먼이 우연히 커버데일 가족의 하녀로 일하기 시작하면서 싹튼다. 처음 몇 달간은 남에게 무관심하지만 집안일만큼은 억척스레 해내는 파치먼에게 만족했던 가족들은 점점 뭔가 잘못됐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한다. 그가 간직하던 단 하나의 비밀, 문맹이라는 사실을 가족들에게 들키면서 상황은 순식간에 파국으로 치닫고 만다.


 단숨에 읽히지만, 모두 읽고 난 이후에는 긴 질문이 남는다. 계층적 차이, 혹은 지적 능력의 차이가 정말로 인간의 본성에 영향을 미치는가? 과연 파치먼은 악인이라고 할 수 있는가? 악인이라면, 이 괴물을 낳은 것은 누구인가? “(추리소설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고찰하는 소설이어야 한다”는 작가의 말은 이렇게 실현된다. 긴 겨울밤이 지루할 때 펴들기 좋은 책이다.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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