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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원 칼럼] 그래서 얼마를 주실 건가요?

무명의 더쿠 | 15:54 | 조회 수 5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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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돈 얘기와는 전혀 상관없는 우리 동네 풍경 / 그림: 정혜원

[문화매거진=정혜원 작가] 얼마 전 근처 도서관에서 도서관 운영 개선을 위한 주민 회의를 연다기에 다녀왔다. 집에서 느린 걸음으로 5분밖에 걸리지 않아 일명 ‘도세권(도서관 인근 지역)’의 편리함을 피부로 느끼던 참이었다. 자연스럽게 도서관 운영에도 관심이 갔고, 작년에 이사 와 홀로 자리 잡은 동네에 작은 접점을 마련하고 싶기도 했다.

도서관에 반영하면 좋을 안건을 돌아가며 이야기하던 중 한 주민이 재능 기부를 활성화하면 좋겠다는 의견을 냈다. 자신은 일본어를 가르치는 사람인데 도서관에서 일본어 재능 기부를 하고 싶다고 했다. 도서관 측에서는 반색하며, 요즘 지역에 외국인 주민이 늘었으니 관내 서비스나 행사 안내를 외국어로도 제공하면 좋을 것 같다고 답했다. 

일본어 번역으로 생계를 꾸리는 내 마음은 복잡해졌다. 공짜로 번역을? 진심인가? 생각만으로도 피곤해졌다. 회의 시작 전 자기소개를 할 때 나를 그저 근처에 사는 프리랜서라고만 소개해 둬서 다행이었다. 일본어와는 아무 관련도 없는 사람처럼 입을 꾹 다물고 웃으며 그 안건을 넘겼다.

나는 이제 뭐가 되었든 돈을 안 준다고 하면 별로 하고 싶지가 않다. 일본어 번역만 그런 것이 아니다. 가끔 책 편집 디자인 일이 들어오기도 하는데, 얼마를 줄 것인지 처음부터 분명하게 말하지 않는 사람이나 업체와는 아예 말을 섞고 싶지 않다. 특히 오며 가며 알게 된 사람들이 은근슬쩍 운을 떼면서 그냥 도와줄 수 없겠냐고 떠볼 때가 종종 있다. 좋은 말로 에둘러 거절하는 것이 은근히 스트레스다. 

일을 맡기는 사람은 아무리 예산이 적더라도 보수가 얼마인지 처음부터 분명히 말해 줬으면 좋겠다. 그러면 나도 조건을 받아들일지 말지 결정할 수 있다. 아주 심플한 문제다.

좀 더 젊었을 때는 돈 문제에 느슨했다. 받을 대가를 제대로 확인하지도 않은 채 아는 사람 부탁이니까, 좋은 경험이 될 테니까 하며 무작정 덤벼들었다. 그런데 좋은 마음으로 시작한 일인데도 내심 찜찜하고 조마조마했다. 그래서 대체 얼마를 받을 수 있는 거지? 돈을 받을 수 있긴 한 건가?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대놓고 물어보지는 못했다.

그래도 이제는 처음부터 ‘그래서 얼마를 주실 건가요?’라고 묻는다는 점에서 과거보다는 발전했다. 

물론 지금도 업계 관행이라거나 여러 번 거래한 곳이라는 이유로 조건이 불분명한 채 일을 받을 때가 있다. 최근에는 정확한 분량을 미리 파악하기 어려우니 일이 끝난 뒤 금액을 산정해 보수를 지급하겠다는 말을 들은 적도 있다. 어떨 때는 보수가 턱없이 낮아 왜 이 금액이 책정되었는지 정중하게 문의했는데, 짧은 질문에 장문의 해명 답변이 돌아온 적도 있다. 

그래도 결국 의뢰를 수락했다. 그냥 노느니 뭐라도 하는 편이 낫다는 게 첫 번째 이유, 거절하면 거래처를 잃을 수도 있다는 것이 두 번째 이유였다. 일을 받아야 먹고사는 입장에서는 결국 한없이 약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수시로 내 보수를 최저 시급과 견주어 본다. 이만큼의 시간 동안 이만큼의 양을 작업하는데 최저 시급에 미치지 못하는 의뢰들이 많이 있다. 그런 일을 할 때면 재능 기부와 다를 바 없다는 생각마저 든다. 예전에는 달랐다. 최저 시급이 몇천 원에 불과하거나 아예 그런 기준 자체가 없었던 시절에는 얼마를 받든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젠 아니다. 이 정도 돈을 받고 계속 프리랜서로 일할 바에는 차라리 별다른 자격도 기술도 요하지 않는 곳에서 최저 시급을 받고 일하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이 든다. 과연 이런 나를 속물이라고 욕할 사람이 있을까.

 

(생략) 
https://www.munwhamagazine.co.kr/news/articleView.html?idxno=5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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