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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이 실리콘밸리 성공 스토리와 다른 근본 이유

무명의 더쿠 | 16:46 | 조회 수 1291
*다음은 아시아 경제에 식견이 깊은 피에트로 마시나 교수의 '삼성 집중 분석'입니다. 
 
전반적으로 객관적인 시각을 유지하면서 삼성의 과거와 현재를 담담하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글이 너무 길이 일부 단락은 제외했습니다. 그래도 분량이 상당하니 관심 있는 분만 일독을 권합니다.
논란을 피하기 위해 과거 대통령 이름은 해당 직책으로만 사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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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이 실리콘밸리 성공 스토리와 다른 근본 이유
 
-피에트로 마시나 나폴리동양학대 교수
 
 
image.png [삼성 연구] "아시아 자본주의 시스템의 상징"

한국인은 인생의 세 단계를 거친다는 유명한 농담이 있다. 삼성 병원에서 태어나, 삼성의 기술로 교육받고, 삼성 보험과 함께 묻힌다는 것이다. 다소 과장되긴 했지만,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얘기다.
 
현대사에서 삼성전자, 그리고 더 광범위한 삼성그룹만큼 국가의 삶에 깊숙이 침투한 기업은 찾아보기 힘들다. 이 대기업은 스마트폰, 반도체, 텔레비전, 선박, 보험 상품, 건설 프로젝트, 의료 기기, 금융 서비스를 모두 아우른다. 삼성의 자회사들은 중동에 마천루를 세웠고, 텍사스에 반도체 공장을 지었으며, 아시아 전역에 산업 단지를 건설했다. 전성기 시절, 삼성 관련 기업들은 한국의 수출과 국가 주식 시장 시가총액에서 엄청난 비중을 차지했다.
 
하지만 삼성은 단순히 성공한 기업에 그치지 않는다. 현대 한국을 세운 핵심 제도 중 하나다. 따라서 삼성을 이해하는 것은 단순히 한 기업을 연구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이는 현대 아시아 자본주의의 출현 자체를 살펴보는 일이다. 즉, 국가와 기업의 관계, 산업 정책의 정치적 활용, 노동의 조직화, 냉전의 지정학, 그리고 아시아가 글로벌 경제의 핵심 제조 허브로 변모해 온 과정을 탐구하는 과정이다.
 
삼성의 부상은 결코 피할 수 없는 필연이 아니었다. 또한 기업가적 천재성이나 기술 혁신의 결과만도 아니었다. 삼성은 권위주의 정치, 국가 주도의 금융, 고도로 통제된 산업 노동, 그리고 미국 주도 냉전 질서 아래서의 지정학적 보호가 결합된 특정한 역사적 시스템 속에서 등장했다.
 
서구 자본주의를 지배하는 신화는 영웅적인 기업가에 대한 찬양이다. 혁신과 위험 감수를 통해 시장을 뒤흔드는 선구적인 창립자 말이다. 실리콘밸리는 이 신화를 세계적인 이데올로기로 만들었다. 그러나 삼성은 매우 다른 길을 걸었다. 삼성의 역사는 독립된 기업가 정신에 관한 것이라기보다는, 정부가 경제적 변혁을 추구하기 위해 대기업을 선택하고, 보호하고, 규율하고, 육성했던 국가 산업 시스템 구축에 관한 이야기다.
 
삼성이 강력해질 수 있었던 것은 한국 자체가 새롭게 재편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국은 흔치 않은 역사적 조건 속에서 바뀌고 있었다.
 
◇식민지 주변부에서 산업 국가로
 
1938년 이병철이 삼성을 설립했을 때, 한국은 여전히 일본의 식민 통치 아래 있었다. 당시 대구에 기반을 두고 건어물, 채소, 국수 등을 중국과 만주로 수출하는 작은 무역상에 불과했다. 이 조촐한 기업이 훗날 세계에서 가장 기술적으로 진보한 기업 중 하나로 성장하리라고 상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삼성의 기원은 이미 한국 식민 자본주의의 모순적인 구조를 반영하고 있었다.
 
1910년부터 1945년까지 이어진 일본의 통치는 한국 경제를 변화시켰다. 식민 정부는 철도, 산업, 농업 상업화를 확장하며 한국을 일본 제국의 경제권으로 편입시켰다. 그러나 산업 소유권은 철저히 일본인의 손에 집중되어 있었다. 한국인 기업가들은 종속적인 위치에서 주로 소규모 상업 활동에 국한된 채 사업을 영위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경험은 훗날 전후 산업화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게 될 신흥 한국 비즈니스 계층을 탄생시켰다.
 
동아시아의 많은 경재계 거물들과 마찬가지로, 이병철 역시 식민지 시대에 형성된 교육, 사회적 인맥, 상업 네트워크에 대한 접근성을 바탕으로 이익을 얻었다. 훗날 한국의 거대 재벌을 설립한 창업자들은 빈곤에서 벗어나 스스로 성공을 일군 아웃사이더들이 아니었다. 이들은 식민주의, 전쟁, 민족주의, 그리고 자본주의가 교차하는 과도기적 사회 질서 속에서 탄생했다.
 
그리고 재앙이 찾아왔다.
 
1945년 해방 직후 곧바로 분단, 점령, 이념 갈등이 이어졌고, 결국 한국전쟁이 발발했다. 1950년부터 1953년까지 한반도는 황폐화됐다. 도시가 파괴되고, 산업이 붕괴했으며, 수백만 명이 사망했다. 한국은 전쟁의 상흔 속에서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국가 중 하나로 전락했다.
 
오늘날 한국은 반도체, 인공지능, 조선업, 첨단 제조업을 선도하는 국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하지만 1950년대의 한국은 경제적으로 취약했고, 미국의 원조에 크게 의존했으며, 정치적으로 불안정했다. 1인당 국민소득은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가장 가난한 지역과 비슷한 수준에 머물렀다.
 
삼성이 살아남고 점진적으로 사업을 확장한 것은 바로 이런 환경 속에서였다.
 
회사는 제당, 방직, 보험, 소비재 분야로 다각화했다. 다른 신흥 한국 기업들과 마찬가지로 삼성도 국가의 인허가, 신용 대출, 수입 기회에 대한 접근성의 수혜를 입었다. 부패와 정치적 후원 관계가 만연했다. 사업의 성공은 시장에서의 실적뿐만 아니라 정치 당국과의 관계에도 좌우됐다.
 
이러한 패턴은 1961년 군사 쿠데타 이후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발전 국가' 모델과 재벌의 부상
 
삼성의 역사, 나아가 현대 한국 자본주의 역사의 전환점은 군부 정권 아래서 찾아왔다.
 
1961년 군사 쿠데타로 권력을 장악한 군부의 수장은 20세기 세계에서 가장 야심 찬 산업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그는 가난한 나라가 주로 농업이나 원자재 수출에 의존해야 한다는 생각을 거부했다. 대신 국가는 제조업, 수출, 산업 고도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이 모델이 바로 훗날 일컫는 '발전 국가(developmental state)'다.
 
한국 정부는 국가가 통제하는 은행을 통해 신용을 배분하고, 국내 산업을 보호하며, 수입을 제한하고, 환율을 관리했으며, 수출 증대에 기여한 기업에 보상을 제공했다. 국가 목표를 달성한 기업은 대출, 보조금, 정치적 지원을 받았다. 반면 실패한 기업은 즉시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었다.
 
삼성은 이 시스템의 주요 수혜자 중 하나였다. 정부는 가족이 통제하는 대기업인 이른바 재벌을 국가 산업화의 도구로 적극 활용했다. 이들 재벌은 여러 부문으로 동시에 사업을 확장하며, 한 산업에서 얻은 수익을 다른 산업으로 진출하는 자금으로 삼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들은 막대한 정치적 영향력을 지닌 거대한 경제 제국으로 성장했다.
 
삼성은 방직에서 시작해 전자, 중공업, 건설, 조선업, 그리고 마침내 첨단 기술 분야로 진출했다. 그러나 이러한 변모는 단지 경제적인 차원에 그치지 않았다. 이는 다분히 정치적인 과정이기도 했다.
 
발전 국가는 권위주의적 통제에 의존했다. 독립적인 노조는 탄압받았고, 정치적 반대 세력은 억압됐다. 노동운동은 철저히 감시당했다. 산업 현장의 규율은 경제 근대화의 핵심 요소로 자리 잡았다. 한국의 산업적 기적은 단순히 기술 고도화뿐만 아니라 고도로 권위주의적인 조건 하에서의 집중적인 노동력 동원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하지만 냉전 시기 서구 관찰자들에게 한국의 빠른 경제 성장은 공산주의에 맞선 자본주의의 성공을 증명하는 사례였다. 미국의 막대한 군사적, 재정적 지원은 정권을 안정시키는 데 기여했고, 미국 시장으로의 접근은 수출 주도 성장의 기회를 창출했다.
 
따라서 삼성의 부상은 냉전의 지정학을 떼어놓고는 설명할 수 없다. 이 기업은 미국의 군사력, 반공 동맹, 글로벌 무역 통합으로 형성된 국제 질서 안에서 기업 규모를 키웠다. 여러 면에서 삼성은 냉전 자체가 만들어낸 가장 성공적인 산업적 산물이었다.
 
삼성의 부상은 흔히 기업가적 천재성과 기술 혁신의 승리로 묘사된다. 그러나 현실은 훨씬 더 정치적이었다. 이 기업은 권위주의적 국가 권력, 규율화된 노동, 냉전의 지정학, 그리고 막대한 산업 보조금이 결합된 시스템 속에서 성장했다.
 
이는 한국을 넘어 현대 아시아 자본주의 자체를 이해하는 데 필수 요소다.
 
◇ 노동, 규율, 그리고 한국 기적의 인적 기반
 
삼성의 부상이 국가의 지원과 냉전 지정학에 의존했다면, 그 기저에는 훨씬 더 근본적인 요소, 즉 노동이 자리하고 있었다.
 
기술 혁신의 신화 이면에는 흔히 가혹하고 억압적이며 극도로 고된 조건 속에서 수행된 고도로 규율된 수십 년간의 산업 노동이 존재했다. 한국의 경제적 변혁은 단순히 자본 투자나 국가 계획만으로 달성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전국 각지의 공장, 조선소, 조립 라인, 산업 단지에서 이루어진 대규모 인적 노동의 동원을 통해 구축됐다.
 
이러한 현실은 '한강의 기적'이라는 찬양 섞인 수사 뒤에 가려지곤 했다.
 
1960년대와 1970년대에 한국 정부는 노동력을 주로 국가 발전의 도구로 간주했다. 수출 경쟁력을 위해서는 노사 안정이 필수적이라고 여겼다. 노조는 탄압받았고, 파업은 제한되었으며, 노동운동은 정당한 사회적 요구가 아닌 정치적 위협으로 취급되곤 했다.
 
삼성은 이러한 환경 속에서 성장하며 이 체제를 상징하는 가장 대표적인 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회사는 온정주의, 규율, 충성심, 국가에 대한 봉사라는 이미지를 배양했다. 직원들은 기업의 목표와 자신을 동일시할 것을 요구받았다. 회사에 대한 평생의 헌신은 한국 산업 자본주의의 이데올로기적 문화의 일부가 됐다. 그 대가로 삼성과 같은 대기업은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고용, 사회적 명성, 그리고 팽창하는 중산층에 진입하는 고학력 남성 노동자들에게 상향 이동의 기회를 제공했다.
 
그러나 이러한 기업적 화합의 이미지 이면에는 깊은 불평등과 통제가 존재했다.
 
수출 주도 산업화의 초기 수십 년 동안 경공업과 전자제품 조립 부문 노동력의 상당수는 상대적으로 낮은 임금을 받으며 장시간 일하는 젊은 여성들로 구성됐다. 대만, 홍콩, 싱가포르, 그리고 훗날 중국과 베트남과 마찬가지로 한국의 산업화는 여성 노동자들이 수출 제조업의 하층을 차지하는 젠더화된 노동 시스템에 크게 의존했다.
 
특히 전자제품 생산은 정밀함, 규율, 그리고 반복적인 조립 작업을 요구했다. 고용주들은 젊은 여성들이 관리가 더 쉽고, 독립적으로 조직화할 가능성이 적으며, 공장 규율에 더 잘 순응한다고 여겼다. 기숙사 생활은 노동자들의 일상에 대한 경영진의 통제를 더욱 강화했다.
 
권위주의적인 정치 환경은 이러한 패턴을 공고히 했다.
 
군부 정권 치하에서 노동운동은 국가 안보 기관의 철저한 감시를 받았다. 학생 운동가, 지식인, 노조 조직가, 반정부 세력은 감시와 탄압에 직면했다. 빠른 산업 성장은 막대한 부를 창출했지만, 그 사회적 비용은 불균등하게 분배됐다.
 
1970년대에 이르러 한국의 노동자들은 세계에서 가장 노동 시간이 긴 집단 중 하나가 됐다.
 
장시간의 노동, 극심한 생산 압박, 위계적인 기업 문화는 한국 산업 자본주의를 정의하는 특징이 됐다. 발전 국가는 희생을 애국적인 의무로 칭송했다. 노동자들은 국가의 생존이 경제 성장과 수출 성공에 달려 있다는 말을 끊임없이 들어야 했다.
 
여러 면에서 이 이데올로기는 성공을 거두었다. 한국이 이룩한 변화의 속도는 경이로웠다. 한 세대 만에 국가는 전후의 폐허에서 산업 강국으로 도약했다.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소득 증가, 교육 기회 확대, 생활 수준 향상을 경험했다. 삼성 자체도 국가적 자부심과 기술 진보의 상징이 됐다.
 
◇싸구려 전자제품에서 기술 초강대국으로
 
삼성이 글로벌 기술 거인으로 거듭난 것은 자연스럽거나 피할 수 없는 결과가 아니었다.
 
1970년대 동안 한국 기업들은 서구 시장에서 여전히 저비용, 저품질 소비재 생산자로 널리 인식됐다. 한국의 전자 기업들은 기술력보다는 주로 가격 경쟁력을 통해 텔레비전, 라디오, 가전제품을 조립하고 경쟁했다. 첨단 소비자 가전은 일본이 장악하고 있었고, 미국 기업들은 컴퓨팅과 반도체 혁신에서 리더십을 유지했다.
 
국제 사회의 그 누구도 한국이 이 두 분야의 패권에 도전하리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하지만 불과 몇십 년 후, 삼성은 메모리 칩부터 스마트폰, 디스플레이 기술에 이르는 여러 부문을 석권하며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기술 기업 중 하나로 떠올랐다. 이 변화의 속도는 엄청났다. 이는 현대 경제사에서 가장 성공적인 산업 고도화 사례에 해당한다.
 
변혁의 중심에는 삼성 창업주 이병철의 아들인 이건희의 전략적 비전이 있었다.
 
1987년 아버지의 사망 이후 이건희가 경영권을 물려받았을 때, 삼성은 이미 주요 한국 재벌이었다. 그러나 아직 세계적으로 존경받는 기술 리더는 아니었다. 한국 제품은 여전히 혁신보다는 모방이라는 평판을 지니고 있었다.
 
이건희는 삼성이 저임금만으로는 무한정 경쟁할 수 없다는 것을 간파했다. 1993년 그는 훗날 '신경영(New Management)'이라 불리게 되는 이니셔티브를 주도했다. 임원들에게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꾸라"는 지시가 내려졌다. 이 슬로건은 삼성 내부 변혁의 강도를 상징했다. 회사는 생산 시스템을 재편하고, 연구 개발에 막대한 투자를 시작했으며, 글로벌 인재를 영입하고, 저렴한 대량 생산보다 기술적 품질을 우선시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전환은 막대한 비용과 위험이 따르는 결정이었다. 삼성은 대규모 자본 투자, 고도의 엔지니어링 역량, 장기적인 전략 계획이 필요한 반도체 분야에 엄청난 자원을 쏟아부었다. 당시 글로벌 메모리 칩 생산은 일본 기업들이 장악하고 있었고, 설계 및 컴퓨팅 기술의 리더십은 미국 기업들이 쥐고 있었다.
 
그러나 반도체는 결정적인 요소, 즉 '규모(scale)'를 제공했다.
 
이 산업은 지속적으로 기술적 정교함을 업그레이드하면서 동시에 높은 효율로 막대한 물량을 생산할 수 있는 기업에게 보상을 줬다. 이는 국가의 정책, 장기적인 자금 조달, 규율된 제조 구조의 지원을 받는 조정된 산업 시스템 내에서 운영되는 기업에 유리했다.
 
삼성은 이러한 환경에 유난히 좋은 위치를 점하고 있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여러 이점을 결합했다.
 
-대규모 자금 조달에 대한 접근성
-강력한 국가 지원
-수직 계열화된 생산
-고등 교육을 받은 엔지니어
-공격적인 산업 계획
-장기적인 전략적 우위를 추구할 의지가 있는 조직 문화
 
단기적인 주주 수익에 집중하던 서구 기업들과 달리, 삼성은 훨씬 더 긴 시간 범위로 운영됐다. 전략 기술에 대한 통제권을 확립하기 위해 수년간의 손실을 감수할 의향이 있었다.
 
이것이 반도체 분야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에 이르러 삼성은 D램 메모리 칩, 플래시 메모리, 디스플레이 기술 부문에서 글로벌 리더가 됐다. 반도체는 결국 한국 수출 경제의 핵심이자 세계에서 가장 전략적으로 중요한 산업 중 하나로 진화했다.
 
삼성전자의 부상은 글로벌 자본주의 자체의 더 광범위한 변화를 반영하기도 했다.
 
제조업은 국경을 넘어 점차 파편화되고 있었지만, 기술적 리더십은 첨단 생산 시스템을 통제할 수 있는 소수의 기업에 집중되어 있었다. 삼성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단순히 제품을 싸게 제조했기 때문이 아니라, 연구, 엔지니어링, 물류, 특허, 글로벌 규모의 공급망 조정을 포함하는 복잡한 산업 생태계를 마스터했기 때문이다.
 
동시에 소비자 가전 부문으로 적극적으로 진출했다.
 
삼성의 텔레비전, 노트북, 가전제품, 휴대전화는 놀라운 속도로 글로벌 시장에 진입했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삼성은 브랜드 인지도에서 노키아, 모토로라, 소니 같은 경쟁사들에 뒤처져 있었다. 그러나 디자인, 마케팅, 제조 규모에 대대적으로 투자한 결과 글로벌 무대에서 국제적 이미지를 바꿔놨다.
 
스마트폰 혁명은 이 변화를 극적으로 가속화했다. 2007년 아이폰의 출시는 글로벌 전자 산업을 근본적으로 재편했다. 기존의 많은 기업들이 적응에 실패했다. 노키아는 무너졌다. 모토로라는 쇠퇴했다. 블랙베리는 관련성을 잃었다.
 
삼성의 대응은 달랐다.
 
거대한 제조 역량과 부품 생산 능력을 활용해 구글의 안드로이드 운영 체제로 구동되는 스마트폰 시장에 공격적으로 진입했다. 많은 경쟁사와 달리 삼성은 디스플레이, 메모리 칩, 프로세서 등 자체 공급망의 상당 부분을 통제했다. 이러한 수직 계열화는 소수의 경쟁사만이 필적할 수 있는 전략적 유연성과 규모의 경제를 제공했다.
 
불과 몇 년 만에 삼성은 세계 최대의 스마트폰 제조업체가 됐다.
 
애플과의 라이벌 관계는 21세기를 정의하는 기업 갈등 중 하나가 됐다. 두 회사는 혁신, 소송, 브랜딩, 공급망 상호 의존성을 통해 경쟁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삼성은 소비자 시장에서 직접적으로 경쟁하면서도 애플 기기 내부에서 사용되는 핵심 부품을 제조했다.
 
이러한 역설은 글로벌 자본주의의 변화하는 본질을 보여준다.
 
경쟁과 협력은 깊이 상호 연결된 기술 공급망 내부에서 점차 공존하게 됐다. 삼성은 더 이상 제품을 해외로 수출하는 한국 기업에 그치지 않았다. 디지털 글로벌 경제 자체의 인프라 내에서 핵심 노드가 된 것이다.
 
그리고 그 변화와 함께 새로운 종류의 권력이 생겨났다. 2010년대에 이르러 삼성은 단순히 소비자 가전제품생산하는 것이 아니었다. 현대 자본주의가 점점 더 의존하게 되는 기술적 아키텍처를 형성하는 데 기여하고 있었다.
 
◇위기, 세계화, 그리고 한국 자본주의의 재창조
 
기술면에서 삼성의 부상은 글로벌 경제의 변화와 일치했다.
 
한국의 산업 기적을 창출하는 데 기여했던 발전 국가는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에 약화되기 시작했다. 민주화, 금융 자유화, 인건비 상승, 심화되는 글로벌 경쟁은 한국 기업들이 급변하는 국제 환경에 적응하도록 강요했다. 국가 주도의 엄격하게 통제된 산업화라는 기존 모델은 고속 성장의 권위주의 시대와 같은 방식으로 더 이상 작동할 수 없었다.
 
그리고 1997년 아시아 금융 위기가 발생했다.
 
이 위기는 현대 아시아 역사상 가장 트라우마틱한 경제 사건 중 하나였다. 통화 가치가 폭락하고, 외국 자본이 지역 시장을 빠져나갔으며, 기업들은 파산했고,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 전역에서 수백만 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한국은 금융 붕괴에 위험할 정도로 근접했으며 결국 국제통화기금(IMF)의 대규모 구제금융 패키지를 수용해야만 했다.
 
많은 한국인들에게 이 위기는 이전 세대를 규정했던 거침없는 국가 발전의 이미지를 산산조각 냈다. 기존의 발전 모델은 갑자기 취약해 보였다. 비판자들은 재벌 시스템이 위험하게 과도한 부채를 지고 있으며 불투명하고 비효율적이라고 주장했다. 대기업들은 막대한 부채를 축적하면서 너무 많은 부문으로 공격적으로 확장했다. 기업 엘리트, 은행, 정치 당국 간의 긴밀한 관계는 점차 국가적 강점이라기보다 시스템적 취약성의 원인으로 간주됐다.
 
일부 주요 재벌은 완전히 붕괴했다. 그러나 삼성은 살아남았다.
 
더욱 중요한 것은 삼성이 많은 경쟁사들보다 더 빠르고 효과적으로 적응했다는 점이다. 위기는 회사 내부에서 이미 진행 중이던 과정, 즉 보호받는 국내 대기업에서 세계적으로 경쟁력 있는 다국적 기술 기업으로의 전환을 가속화했다.
 
이 전환은 한국 자본주의 자체를 근본적으로 재편했다.
 
국제 금융 기관과 글로벌 투자자들의 압박 속에서 한국은 광범위한 개혁을 실행했다. 금융 시장이 자유화되고, 외국인 투자가 확대되었으며, 기업 지배 구조 기준이 변경되었고, 기업들은 효율성과 수익성에 대한 커져가는 요구에 직면했다. 주주 가치, 투명성, 경쟁력이라는 언어가 전례 없는 힘으로 한국 기업 담론에 진입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재벌의 소멸이 아니었다. 대신, 힘있는 재벌들이 훨씬 더 강력해졌다.
 
삼성은 이전보다 더 국제적으로 통합되고, 기술적으로 세련되며, 전 세계적으로 야심 찬 기업으로 거듭났다. 경쟁력이 떨어지는 부문은 축소하거나 재편한 반면, 전략 산업, 특히 반도체와 첨단 전자제품에는 집중했다. 이제 이 기업은 단지 국가 산업 계획에 의해서가 아니라 글로벌 금융 및 초국가적 생산 네트워크의 논리에 따라 운영됐다.
 
이는 주요한 역사적 역설을 낳았다.
 
수십 년 동안 서구 경제학자들은 비효율적인 복합 기업을 보호하고 시장 경쟁을 왜곡한다는 이유로 한국의 발전 국가 시스템을 비판해 왔다. 그러나 위기 이후, 살아남은 많은 재벌이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기업으로 변모했다.
 
특히 삼성은 전략적 적응에 탁월한 능력을 보였다. 국제적으로 생산을 확장하고, 제조 위치를 다변화하며, 글로벌 공급망에 깊이 통합됐다. 동시에 연구 개발, 브랜딩, 기술 혁신에 대한 투자를 늘렸다. 2000년대에 이르러 삼성은 미국, 일본, 유럽의 주요 기업들과 경쟁하며 첨단 기술 연구에 매년 수십억 달러를 지출했다.
 
그러나 세계화는 노동 관계도 변화시켰다.
 
이전의 발전 모델은 대기업 내에서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장기 고용에 크게 의존했다. 노동 조건은 권위주의적이었지만, 산업 확장은 한국 사회의 상당 부분에 중산층으로 진입하는 경로를 창출했다.
 
1997년 이후의 경제는 훨씬 더 양극화됐다. 불안정한 고용이 확대됐고 하도급이 증가했다. 임시직과 비정규직 노동이 더 흔해졌다. 소득 불평등이 확대됐다. 젊은 세대는 부모 세대에 비해 주거비 상승, 극심한 교육 경쟁, 그리고 낮아진 상향 이동의 기대치에 직면했다.
 
삼성 자체도 한국을 넘어 확장되는 복잡한 글로벌 생산 시스템에 의존하게 됐다. 공장은 중국, 동남아시아, 동유럽 등지로 확장됐다. 베트남이 특히 중요해졌다. 2010년대에 삼성은 베트남을 핵심 글로벌 제조 허브 중 하나로 변모시켜 엄청난 수의 노동자를 고용하고 베트남 수출의 상당 부분을 창출했다.
 
여러 면에서 삼성은 과거 한국 자체를 형성했던 것과 동일한 발전 모델을 해외에서 재현했다.
 
-수출 주도의 산업화
-노동 집약적 제조
-기술적 업그레이드
-국가 당국과 다국적 자본 간의 긴밀한 조정
 
그러나 과거와 현재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었다. 당초 한국의 발전 국가 모델은 국가에 뿌리를 둔 산업 강국 창출을 목표로 했다. 이와 달리, 21세기 글로벌 공급망은 생산을 여러 국가로 분산시키면서 기술적 통제권과 지적 재산권을 소수의 거대 기업 내부에 집중시켰다.
 
삼성은 국가 대표 기업(national champion)에서 초국가적 산업 제국으로 진화했다. 그리고 그 확장과 함께 한국 내부뿐만 아니라 글로벌 경제 전반에 걸쳐 정치적 영향력이 증가했다.
 
◇부패, 승계, 그리고 기업 권력의 정치학
 
국제 무대에서 삼성의 성공은 한국 현대화의 상징이었다. 동시에 한국 자본주의 중심에 있는 오랜 의문을 증폭시키도 했다. 바로 '민주 사회에서 단일 대기업이 얼마나 많은 권력을 가져야 하는가'이다.
 
이 문제는 단순히 경제적인 것이 아니다.정치적, 사회적, 심지어 문화적인 것이다.
 
21세기 초에 삼성의 영향력은 제조나 기술을 훨씬 넘어 확장됐다. 이 복합 기업은 금융, 미디어, 건설, 의료, 고등 교육 및 국가 수출에서 중심 위치를 차지했다. 정치인들은 기업이 불안정할 할 경우 경제에 미칠 여파를 두려워했다. 투자자들은 삼성이 한국의 글로벌 경쟁력에 필수적이라고 보았다. 중산층은 국가적 자부심의 원천이자 불평등과 집중된 권력의 상징으로 봤다.
 
이러한 모호함은 더 넓게는 재벌에 대한 대중의 태도를 형성했다.
 
많은 한국인은 삼성의 기술적 성취와 글로벌 위상을 존경했다. 동시에 가족이 통제하는 대기업에 의해 축적된 부와 영향력의 극단적인 집중을 비판했다. 발전 국가는 국제적으로 경쟁할 수 있는 거대 산업 기업을 생산했지만, 민주적 책임과 조화시키기 점점 더 어려워 보이는 과두제적 구조도 생성했다.
 
승계 문제만큼 이 모순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이슈는 없었다.
 
다른 주요 재벌과 마찬가지로, 삼성은 회사의 엄청난 규모와 다양한 사업 구조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으로 창업주 가족에 의해 통제됐다. 복잡한 소유 구조, 순환 출자, 경영권을 통해 이(李) 씨 일가는 상대적으로 제한적인 지분만을 직접 보유하면서도 거대한 기업 제국에 대한 통제력을 유지했다.
 
비판자들은 이 시스템이 기업 지배 구조를 왜곡하고 엘리트 가족을 의미 있는 책임으로부터 보호한다고 주장한다. 지지자들은 가족의 장기적인 통제가 주주 자본주의의 단기적인 압력 하에서는 불가능했을 전략적 계획을 가능하게 했다고 반박한다. 그들은 삼성이 반도체, 연구, 산업 업그레이드에 막대한 투자를 한 것을 두고, 재벌 모델이 서구의 파편화된 기업 구조보다 중요한 이점을 유지하고 있다는 증거로 지적한다.
 
이러한 논쟁은 이건희 전 회장의 아들인 이재용 회장을 둘러싼 승계 과정에서 특히 가시화됐다.
 
리더십이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넘어가면서, 삼성은 현대 한국 역사상 가장 큰 정치 스캔들 중 하나에 깊이 연루됐다. 수사 결과 정치적 영향력, 기업 기부금, 대통령의 권력과 관련된 복잡한 관계가 밝혀졌다. 이 스캔들은 결국 2017년 현직 대통령의 탄핵으로 이어지며 국내 정치 위기를 촉발했다.
 
이재용 자신도 뇌물 공여 및 기업 지배 구조 관행과 관련된 혐의에 직면했다. 수년에 걸친 재판, 구속, 항소, 대통령 사면이 이어지며, 한국의 경제력과 민주주의 제도 간의 관계에 대한 격렬한 공개 토론이 발생했다.
 
이 에피소드는 현대 한국에서 기업 권력과 정치 권력이 여전히 얼마나 깊이 얽혀 있는지를 보여줬다. 그러나 반복되는 스캔들에도 불구하고 한국 경제에서 삼성이 차지하는 중심적인 위치는 근본적인 구조 조정을 어렵게 만들었다. 이는 더 광범위한 세계적 현상을 반영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대기업은 국가, 노동조합, 시민 사회 기관에 비해 더욱 강력해지고 있었다. 특히 기술 기업은 인프라, 통신, 금융, 산업 생산에 대한 막대한 영향력을 축적했다. 삼성은 여러 면에서 실리콘 밸리 기업들과 달랐지만, 권력이 기업으로 집중된다는 점에선 세계적인 추세와 일치했다. 
 
한국의 사례가 독특한 이유는 이러한 집중의 뿌리가 국가 주도의 산업화와 명시적으로 연결됐기 때문이다. 삼성은 순수한 자유 시장 질서에서 등장한 회사가 아니다. 수십 년간의 국가 계획, 보호 금융, 산업 정책, 지정학적 전략을 통해 구축됐다. 따라서 이 회사의 막대한 권력은 단순히 시장의 성공뿐만 아니라 현대 한국 발전의 역사적 궤적 자체를 반영한다.
 
이는 한국 민주주의에 지속적인 딜레마였다.
 
삼성은 무너지도록 두기에는 경제적으로 너무 중요했고, 고립시키기에는 전 세계적으로 통합됐으며, 규제하기에는 정치적인 영향력이 매우 컸다. 정부는 주기적으로 재벌 개혁, 더 강력한 기업 지배 구조, 권력 집중의 완화를 약속했다. 그러나 개혁가들이 제약하고자 하는 바로 그 복합 기업에 국가 경제가 여전히 깊이 의존하고 있었기 때문에 의미 있는 구조적 변화를 이루어내기가 무척 어려웠다.
 
이러한 의미에서 삼성은 현대 자본주의의 큰 모순 하나를 상징한다.  즉, 경제 성장, 기술 혁신, 글로벌 경쟁력을 주도하는 바로 그 기업이 민주적 통제와 사회적 평등에 도전하는 형태의 권력을 축적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동남아시아, 특히 빠르게 산업 환경이 확장되는 베트남은 삼성의 글로벌 파워가 가장 잘 드러나는 장소다.
 
◇베트남의 삼성과 아시아 자본주의의 새로운 지리
 
한국이 일본 이후 동아시아 발전 자본주의의 첫 번째 성공 스토리라면, 베트남은 일부 정책 입안자들과 투자자들에게 그 유력한 후계자로 여겨졌다.
 
그리고 그 변혁에서 가장 큰 역할을 한 외국 기업은 삼성이다.
 
2010년대에 이르러 이 회사는 베트남에서 가장 중요한 단일 외국인 투자자이자 국가 수출 경제의 중심 기둥이 됐다. 삼성 공장들은 전 세계 시장으로 향하는 스마트폰, 전자 부품, 디스플레이, 소비재를 생산했다. 수십만 명의 베트남 노동자들이 삼성의 생산 네트워크에 통합되었고, 전체 산업 지역이 전자제품 제조 및 수출 물류를 중심으로 재편됐다.
 
어느 해에는 삼성 관련 수출이 베트남 전체 수출의 1/4을 차지했다. 그야말로 엄청난 영향력이다.
 
베트남의 글로벌 제조 편입은 1980년대 후반에 시작된 '도이머이'라는 경제 개혁 이후 가속화됐다. 과거 중국처럼, 베트남은 경직된 중앙 계획에서 벗어나 국가의 권위와 시장 지향적인 산업화 및 수출 주도 성장을 결합한 하이브리드 모델로 전환했다. 외국인 직접 투자는 경제 변혁의 중심 엔진이 됐다.
 
삼성은 최적의 시기에 진출했다.
 
중국의 임금 상승, 지정학적 다변화 전략, 새로운 제조 허브를 찾으려는 움직임이 활발해졌다. 다국적 기업들은 동남아시아에서 생산을 확대했다. 베트남은 몇 가지 주요 이점을 제공했다.
 
-비교적 낮은 인건비
-정치적 안정
-개선된 인프라
-수출 제조에 대한 강력한 국가 지원
-아시아 공급망에 대한 지리적 근접성
 
삼성은 베트남에 적극적으로 투자했다. 박닌과 타이응우옌 같은 지역에 거대한 산업 단지가 조성됐다. 한적한 농촌이 글로벌 전자 시장과 직접 연결되는 주요 제조 센터로 천지개벽했다. 지방 정부는 인프라 개발, 세금 인센티브, 산업 구역 확장을 통해 투자를 유치했다.
 
삼성과 베트남의 관계는 한국의 산업화 초기 단계를 닮았다.
 
베트남 정부는 글로벌 제조업을 유치해 기술적 업그레이드, 산업 학습, 고용 증가, 수출 확대를 희망했다. 반대급부로 삼성은 풍부한 노동력과 유리한 투자 조건의 혜택을 받았다.
 
그러나 20세기 한국의 발전 모델과 21세기 베트남의 글로벌 생산 시스템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었다.
 
한국의 산업화는 궁극적으로 기술, 금융, 산업 전략을 통제할 수 있는 강력한 국가 기반 재벌을 탄생시켰다. 삼성 자체도 단순히 제조업 하청업체가 아니라 지적 재산권, 연구, 브랜딩, 공급망 조정을 광범위하게 통제하는 세계적 기술 기업이 됐다.
 
베트남은 글로벌 생산 네트워크 내에서 훨씬 더 종속적인 위치를 차지했다. 대부분의 고부가가치 기술 역량은 해외에 집중되어 있었다. 핵심 기술, 반도체 설계, 첨단 부품 및 전략적 의사 결정은 주로 외국 통제 하에 머물렀다. 베트남은 조립, 제조 효율성, 수출 통합에 탁월했지만, 국내 기업들은 가치 사슬의 가장 수익성 높은 부분으로 올라가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이러한 비대칭성은 현대 세계화의 핵심 구조적 특징 중 하나를 드러냈다. 산업 생산은 지리적으로 분산되었지만, 기술 및 재정 권력은 여전히 고도로 집중되어 있었다.
 
따라서 베트남에서의 삼성은 단순한 투자 이야기 그 이상을 의미한다. 그것은 아시아 자본주의 자체의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국경을 넘어 이동하는 생산
-전체 지역을 통합하는 다국적 공급망
-외국인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경쟁하는 국가
-상대적으로 소수의 거대 기업에 집중되는 기술 권력
-노동 조건은 이러한 더 넓은 긴장을 반영했다.
 
많은 베트남 노동자들에게 삼성 공장은 농업이나 비정규직 노동보다 더 나은 임금과 기회를 제공했다. 산업 고용은 빠르게 팽창하는 도시 노동자 및 하위 중산층의 출현에 기여했다. 제조 구역 주변에는 새로운 도로, 주택 개발, 상업 시설, 서비스 경제가 생겨났다.
 
동시에 노동 활동가들과 연구자들은 노동 조건, 장시간 노동, 생산 압박, 직장 내 감시, 그리고 독립적인 노동조합 구성의 제한에 대해 우려를 제기했다. 어떤 면에서 베트남의 수출 제조를 둘러싼 노동 체제는 한국 자체의 권위주의적 발전 시대를 포함하여 동아시아 산업화의 이전 단계를 반영했다.
 
그 평행선은 역사적인 면에서 인상적이다. 국가 주도의 산업화와 규율된 노동 체제 내에서 부상했던 기업이 이제 새로운 글로벌 조건 하에서 아시아의 다른 곳에 유사한 산업 구조를 재생산하고 있었다.
 
삼성의 베트남 진출은 중대한 지정학적 의미도 수반한다. 미국과 중국 간의 긴장이 심화됨에 따라 다국적 기업들은 중국 이외의 지역으로 생산 네트워크를 다변화했다. 베트남은 이러한 전략적 재편의 주요 수혜자 중 하나로 떠올랐다. 삼성은 그 전환의 중심이다.
 
삼성은 다음과 같은 지정학적 환경과 마주했다.
 
-미·중 기술 경쟁
-반도체 민족주의
-공급망 안보 우려
-전략 산업에 대한 커져가는 국가 개입
 
이러한 의미에서 삼성의 역사는 원점으로 돌아왔다. 이 회사는 당초 냉전 발전 국가의 지정학적 틀 내에서 성장했다. 수십 년 후, 다시 한 번 산업 정책, 전략적 공급망, 국가간 경쟁으로 정의되는 글로벌 기술 경쟁의 중심에 서게 된 것이다. 다만 이제는 장소가 전 세계라는 점만이 다르다.
 
◇결론
 
삼성의 역사는 흔히 한 기업의 성공 스토리로 여겨진다.
 
이는 현대 경제사에서 가장 놀라운 이야기 중 하나다. 식민지 조선에서 설립된 작은 무역 회사가 한 세기도 채 되지 않아 지구상에서 가장 기술적으로 진보하고 세계적 영향력을 갖춘 기업으로 진화했다. 자본주의의 여러 시대를 거치며 이토록 극적으로, 그리고 성공적으로 변화한 기업은 거의 없다.
 
-식민지 상업에서 경공업으로
-중공업으로
-반도체로
-디지털 기술로
-글로벌 정보 경제 자체의 인프라로
 
삼성의 부상은 단일 기업의 성공 스토리 이상이다. 바로 현대 아시아 자본주의가 어떻게 구축되는지를 보여주는 증거다.
 
삼성은 국가 권력, 지정학적 전략, 산업 계획, 규율된 노동, 기술적 업그레이드의 특정한 역사적 조합을 통해 등장했다. 한국의 발전 국가 시스템은 결코 시장이 자유롭게 작동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았다. 국가는 조정된 개입, 선별적 보호, 주도적인 금융, 수출 지향적 계획을 통해 산업 자본주의를 적극적으로 구축했다.
 
삼성은 그 국가적 변혁의 주요 도구였다. 동시에 그 모델에 의해 생산된 많은 모순이 나타났다
 
-경제 권력의 극단적인 집중
-권위주의적인 노동 체제
-과두제적 기업 지배 구조
-기업과 정치 간의 깊은 얽힘
-글로벌화된 자본주의에 의해 생성된 심화되는 불평등
 
이러한 모순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그저 진화했을 뿐이다.
 
삼성은 세계화에 발맞춰 초창기 자신들을 만들어낸 국가적 틀에서 점차 분리됐다. 한국에서 베트남, 인도, 유럽, 중국, 미국으로 뻗어나가는 글로벌 공급망 전반에 걸쳐 확장됐다. 글로벌 기업들의 생산은 국제적으로 분산된 반면, 기술 통제권과 지적 재산권은 본사 내부에만 남아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삼성은 세계화의 산물이자 설계자다.
 
국경을 넘어선 생산의 파편화로부터 이익을 얻는 동시에 글로벌 제조의 지리를 재편하는 데 기여했다. 이 기업의 공장, 물류 시스템, 반도체 생산 라인, 연구 센터는 현대 자본주의가 작동하는 인프라다.
 
그러나 삼성의 부상을 가능하게 했던 세계는 이제 불확실성이 증가하는 시기로 접어들고 있다. 수십 년 동안 세계화는 비교적 개방된 무역, 확장되는 공급망, 심화되는 경제 통합에 의해 추진됐다. 오늘날 그 시스템은 가중되는 압력 하에 있다. 미국과 중국의 경쟁은 첨단 기술을 전략적 지정학적 전장으로 만들었다. 반도체는 더 이상 단순한 상업적 제품으로 간주되지 않는다. 반도체는 국가 안보, 산업 주권, 지정학적 경쟁의 도구가 됐다.
 
삼성은 그 투쟁의 중심에 있다. 미국 안보 동맹, 중국 시장, 고도로 파편화된 글로벌 공급 네트워크 내부에서 운영되면서 최첨단 반도체 칩을 생산한다. 각국 정부가 점차 기술적 분리와 전략적 자율성을 요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제적 운영 시스템을 유지하하고 있다.
 
이는 깊은 딜레마를 야기한다. 삼성과 같은 기업이 전례 없는 규모를 달성할 수 있게 해준 바로 그 세계화가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각국 정부는 또 다시 산업 정책, 기술 경쟁, 전략적 생산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있다. 여러 면에서 세계는 경제 민족주의 형태로 회귀하고 있으며, 이는 과거 발전 자본주의 시대를 연상시킨다. 비록 지금은 훨씬 더 복잡한 글로벌 조건 하에 있지만 말이다.
 
따라서 삼성의 미래는 혁신이나 시장 경쟁은 물론 지정학에도 달린 셈이다.
 
-한국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기술적 우위를 유지할 수 있을까
-심화되는 경쟁 속에서 삼성은 반도체 시장의 지배력을 지킬 수 있을까
-재벌 시스템은 한국 내부의 인구 감소, 사회적 불평등, 민주적 압력에 적응할 수 있을까
-그리고 글로벌 공급망은 전략적 경쟁과 경제적 분절화로 정의되는 시대에서 유지될 수 있을까.
 
이에 대한 답은 단일 기업이 감당할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다. 그것은 이번 세기 아시아의 미래와 관련 있다.
 
삼성은 단순한 대기업이 아니다. 아시아가 글로벌 경제 주변부에서 중심 엔진으로 변화하는 힘을 보여주는 창이다. 즉, 발전 국가의 힘, 노동의 동원, 기술 제조업의 부상, 글로벌 공급망의 확장, 그리고 현대 세계에서 심화되는 기업 권력의 집중을 의미한다.
 
따라서 삼성을 연구하는 것은 단순히 경영사를 살피는 게 아니다. 그것은 현대 자본주의의 형성을 탐구하는 작업이다.
 
 
*피에트로 마시나는 동남아 전문가로 나폴리동양학대에서 아시아 역사를 가르친다.
 
 
https://www.fmkorea.com/best/9852176085 출처.
 

'삼성 집중 분석' 3줄 요약

1단계: 실리콘밸리와의 근본적 발전 양상 차이 (자생적 혁신 vs 국가 주도 육성)

  • 실리콘밸리의 방식: 혁신과 위험 감수를 통해 기존 시장의 판도를 뒤집는 '독립적이고 영웅적인 창업가 정신'에 의해 자생적으로 구축되었습니다.

  • 삼성의 방식: 독립적인 천재성이나 순수한 시장 경제가 아닌 '발전 국가(Developmental State)' 모델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정부의 집중적인 금융 자원 배분, 권위주의 체제하에서 고도로 통제되고 희생된 노동력, 그리고 냉전 질서 속 미국의 지정학적 보호라는 특수한 정치적·역사적 조건 속에서 국가에 의해 선택되고 육성되었습니다.

2단계: 위기 돌파와 글로벌 초국가 기업으로의 진화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를 거치며 한국의 기존 발전 모델은 한계를 맞았지만, 삼성은 이를 계기로 국내용 재벌에서 글로벌 다국적 기업으로 완벽히 탈바꿈했습니다. 단기 주주 수익에 집중하는 서구와 달리, 국가적 지원을 바탕으로 수직 계열화와 반도체 분야에 막대한 장기 투자를 단행했습니다. 이후 베트남 등으로 거대한 생산 기지를 확장하며, 과거 한국의 성장 모델을 글로벌 공급망에 이식해 전 세계 정보 경제의 인프라를 장악했습니다.

3단계: 재벌 체제의 모순과 새로운 지정학적 시험대 국가 주도로 탄생한 거대 권력은 극단적인 부의 집중과 복잡한 가족 경영 체제를 낳으며 한국 사회와 민주주의에 딜레마를 안겨주었습니다. 나아가 오늘날 삼성은 자신이 누려왔던 개방된 세계화가 저물고, 미·중 기술 패권 경쟁과 경제 민족주의가 부상하는 새로운 위기에 직면해 있습니다. 이제 삼성의 생존은 단순한 기술 혁신을 넘어, 21세기 아시아 자본주의와 글로벌 공급망의 미래를 결정짓는 핵심 과제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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