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율에서 생존으로, 재고는 비용이 아니라 생존 수단.’
글로벌 제조기업의 공급망 관리 전략이 반세기 만에 근본적인 변화를 맞았다. 1970년대 이후 표준으로 자리 잡은 JIT(just in time·부품 적기 조달) 전략을 대신해 JIC(just in case·돌발변수를 대비한 조달) 전략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에 이은 두 번의 전쟁이 효율보다 안정적 공급을 택하게 만들며 세계 무역질서를 재편하고 있다.
JIT는 재고를 최소화해 비용을 절감하는 것을 핵심으로 한다. 세계 각지에서 필요한 원자재와 부품을 정확한 시간에 조달하는 효율적인 시스템을 전제로 작동한다. JIC는 리스크 관리가 최우선이다. 핵심 부품 중 하나라도 공급이 막히면 전체 생산라인을 세워야 하는 사태를 예방하는 것이 목표다.
JIT를 창시한 도요타조차 최근 알루미늄을 쌓아놓기 위해 러시아산 등 신규 공급원 추가에 나섰다. 응고지 오콘조이웨알라 세계무역기구(WTO) 사무총장은 “WTO 회원국들이 공급망 탄력성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완충 작용을 강화해 세계인의 경제적 부담을 덜어줄 수 있다”고 말했다.
비용 절감보다 '위험 대비'가 우선…막대한 보관 비용에도 재고 비축
반도체 공정 핵심인 헬륨 부족…스위스·프랑스 등 재고 확보 총력
◇ JIC로 생존 해법 찾는 기업
많은 글로벌 기업과 각국 정부는 이미 JIC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비용을 치르더라도 더 많은 재고를 쌓고, 공급처를 가능한 한 다변화하고 있다.
스위스 반도체 부품업체 VAT는 반도체 공정의 핵심 원자재인 헬륨 부족에 직면해 미국 등 대체 공급원을 찾고 있다. 재고도 최대한 확보하기로 했다. 프랑스의 산업용 가스 전문 기업 에어리퀴드는 세계 곳곳에서 헬륨 공급원을 추가로 확보했다. 아르멜 르비외 에어리퀴드 부사장은 “카타르에너지의 불가항력 선언에 대응하기 위해 글로벌 공급망 네트워크를 최대한 가동하고 있다”고 밝혔다.
각국 정부는 원유 공급난에 직면해 각종 석유제품 수출을 막아 국내 재고를 쌓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중국은 지난달 12일 석유 정제연료 수출을 전면 중단한 데 이어 19일에는 인산계 비료 수출도 금지했다. 러시아는 지난달 24일 질산암모늄 수출을 중단했고, 인도도 석유 정제연료 수출 금지를 검토 중이다. 최근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회원국들에 이달부터 가스 저장고를 조기 충전하라고 촉구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정부는 지난달 27일 나프타 수출 통제를 시작했다.
장상식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은 “기업과 국가의 공급망 경쟁력을 평가하는 기준이 ‘재고를 얼마나 적게 두느냐’에서 ‘충격이 왔을 때 얼마나 빨리 복구할 수 있느냐’로 바뀌고 있다”고 분석했다.
▶ JIT(Just In Time)
부품 및 원자재를 필요할 때 필요한 만큼만 공급받아 제품을 즉시 생산하는 방식. 낭비를 최소화하고 원가를 절감하는 효율을 추구하는 게 특징이다.
▶ JIC(Just In Case)
원자재와 부품 재고를 쌓아 공급망 리스크에 대비하는 생산 방식. 예상치 못한 상황을 맞아 생산라인이 멈추는 위기를 예방하는 것이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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