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올 기름 없으면 비행기 못 뜬다” 말까지 등장…4월 베트남·호주여행 ‘빨간불’

“유럽에서 연료를 구해도, 동남아에서 돌아올 연료를 못 구하면 비행은 못해요.”
중동 분쟁 장기화로 촉발된 고유가·고환율 충격이 국내외 항공업계를 강타하고 있다. 국내 저비용항공사(LCC)들이 노선 감축과 유류할증료 인상으로 버티기에 나섰지만, 아시아 전역에서는 항공유 공급 부족으로 인한 ‘항공 대란’ 조짐까지 나타나고 있다.
24일 항공업계에 따르면 국내 LCC들은 수익성 악화를 견디지 못하고 운항 축소에 돌입했다.
에어부산은 다음 달부터 부산발 다낭·세부·괌 등 주요 3개 노선에서 총 20회를 감편한다. 항공유는 항공사의 영업비용의 약 30%를 차지하며 달러로 결제되는 구조로, 유가와 환율이 동시에 치솟을 경우 운항할수록 손실이 커질 수밖에 없다.
승객들의 부담도 빠르게 커지고 있다. 다음 달 국내선 유류할증료는 기존보다 1100원가량 인상된다. 특히 국제선의 경우 운항 거리에 따라 기존 대비 최대 3배 안팎(25~76달러 수준)까지 오를 전망이다. 유류할증료는 출발일이 아닌 발권일 기준으로 적용되는 만큼 4~5월 출발 항공권이라도 3월 내 발권하면 인상 전 요율이 적용돼 서둘러 예매에 나서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기름이 없다”… 아시아·오세아니아 제트연료 수급난
문제는 단순한 비용 상승을 넘어 공급 부족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뉴욕타임스(NYT)는 아시아 항공사들이 제트연료 수급난으로 수천 편의 항공편을 취소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제트연료 가격은 배럴당 200달러를 돌파하며 전쟁 전 대비 2배 이상 급등했다.
특히 제트연료는 다른 정유 제품보다 품질 기준이 까다롭고 변질 위험이 커 장기 비축이 어렵다. 이런 특성으로 공급망 충격에 가장 취약한 연료로 꼽힌다. 이에 따라 중국은 가장 먼저 제트연료를 포함한 정유 제품 수출 제한 및 금지 조치를 단행했다. 이어 태국도 제트연료 등 일부 연료 수출을 일시적으로 금지했다.
이 조치로 가장 먼저 발등에 불이 떨어진 곳은 베트남이다. 베트남은 항공유의 약 75%를 중국과 태국 수입에 의존하고 있어 대체 공급선을 찾기 어려운 실정이다. 베트남 항공 당국은 이르면 다음 달부터 제트연료가 부족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호주의 상황도 심각하다. 연료의 90%를 수입에 의존하는 호주는 이달 초 기준 제트연료 비축량이 고작 32일분에 불과한 것으로 파악됐다. 현지 업계에서는 호주도 베트남과 마찬가지로 다음달부터 항공기 정상 운항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수급난의 파급력은 이미 가시화되고 있다. 에어뉴질랜드는 제트연료 수급난으로 1100편에 달하는 항공편 운항 취소를 결정했다. 니킬 라비샹카르 에어뉴질랜드 최고경영자(CEO)는 이를 두고 “전례없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글로벌 항공업계는 이번 사태를 ‘사상 최대의 공급 위기’로 규정한다. 벤 스미스 에어프랑스·KLM CEO는 “연료 부족에 어떻게 대응할지 시나리오 작성에 돌입했다”며 “유럽에서 연료를 구할 수 있더라도 동남아에서 돌아올 연료를 못 구할 수도 있다. 연료가 없으면 비행은 못한다”고 말했다.
이지젯 켄턴 자비스 CEO 역시 “아무도 ‘6주 뒤에도 당장 문제는 없다’란 말을 하지 않는다”며 공급 불확실성을 언급했다. 저스틴 어바치 국제항공협의회(ACI) 사무총장은 “단기적으로 큰 문제는 연료 가격보다는 앞으로 공급이 충분히 있을지”라고 말했고, 윌리 월시 국제항공운송협회(IATA) 회장은 “지금까지 겪은 최대의 공급 문제”라고 평가했다.
대학 휴교에 주 4일제까지…지구촌 ‘에너지 줄이기’ 몸부림
연료 부족 여파는 항공기를 넘어 국가 운영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각국은 에너지 소비를 줄이기 위한 비상 조치에 잇따라 나서는 모습이다.
스리랑카는 공공기관과 학교에 주 4일제를 도입하고 연료 배급제를 시행했다. 방글라데시는 대학에 휴교령을 내리고, 실내 온도를 25도 이하로 낮추는 것을 금지했다. 파키스탄도 전국 학교에 2주간 휴교를 명령했다.
태국은 공무원에게 재택근무를 권고하고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 이용을 장려하는 등 일상적인 에너지 절감까지 요구하고 있다. 방송 진행자들이 재킷을 벗고 출연하며 에어컨 사용 절감을 독려하는 장면도 연출됐다.
슬로바키아는 주유소에서 경유 판매를 제한하고 외국 차량에는 더 높은 가격을 적용했다. 영국은 음식점과 주점에 야간 냉장고 전원을 끄도록 권고했다. 다만 이 조치는 ‘미지근한 맥주’ 논란을 낳으며 반발을 불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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