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유산청 "왕과 사는 남자" 또 다른 이야기. 정순왕후 🏛️남양주 사릉🏛️
남양주 사릉 (南楊州 思陵)
Sareung Royal Tomb, Namyangju
단종과 영월 사람 호장 엄홍도의 이야기를 소재로 한 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국민의 마음을 움직이며 흥행하고 있습니다. 영화엔 등장하지 않지만, ‘왕과 산 여인’인 왕비가 있습니다. 조선 6대 단종(1441-1457)의 왕비 정순왕후(定順王后) 송씨(1440∼1521)이죠.
단종의 정비인 정순왕후는 대부분 세자의 빈으로 추대되어 남편이 즉위하게 되면 왕비가 되지만, 정순왕후 송씨는 1454년(단종 2) 왕비로 책봉되었죠. 다음 해에 단종이 왕위를 세조에게 이양하고 선왕이 되자 의덕왕대비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1457년(세조 3) 단종복위운동이 발각되면서 단종이 노산군으로 강등되며 영월로 유배를 가고, 군부인으로 강등되어 동문 밖 정업원에서 지냈습니다.
결국, 영월에서 단종이 죽임을 당하자, 정업원 뒤쪽 산봉우리에 올라 영월 방향을 바라보며 통곡하며 한 많은 세월을 살았다고 하죠. 자식이 없어 단종의 누이인 경혜공주 아들 정이수를 시양자로 삼았습니다. 정순왕후는 1521년(중종 16)에 82세로 세상을 떠나, 경혜공주의 시가(媤家)인 해주정씨 묘역에 묘소를 조성하였고, 1698년(숙종 24) 단종이 복위되자 정순왕후로 복위되고 능의 이름을 사릉이라 하였습니다.
사릉은 추존된 왕비의 능제에 따라 능침에는 병풍석과 난간석을 생략하였고 혼유석과 석양, 석호, 장명등, 문석인, 석마, 망주석을 세웠습니다. 단종의 능인 장릉(莊陵)의 능침 구성과 같은 왜소하면서도 소박한 형식입니다.
사릉참봉의 벼슬을 한 서유영은 “아! 왕비는 어린 나이에 불문에 몸을 의탁하여 한을 품고 고통을 인내하며 여생을 마쳤다”며 『금계필담(1873년)』에 탄식하고는 능침을 배알 할 때마다 목이 멘다고 했습니다.
“사릉의 꽃과 나무, 선봉(仙封)을 지켜주고/ 소쩍새 소리마다 원망이 서려있네 / 정업원 동편에 있는 세 길 넘은 바위는 / 지금도 영월의 봉우리를 바라보네”라는 문구로 슬픈 역사로 남은 정순왕후의 넋을 달랬습니다.
정순왕후가 평생을 그리워한 단종은 숙부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빼앗긴 뒤, 충신들이 그를 다시 왕으로 복위시키려는 계획이 밝혀져 영월로 유배되어 그곳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후환이 두려워 단종의 시신을 거두는 사람이 없었는데 영월 호장 엄흥도가 몰래 장사를 지내 모셨죠.
중종 이후 조정에서 단종의 제사와 무덤에 관한 의견이 나오게 되어, 선조 때에 이르러 상석· 표석·장명등·망주석을 세웠습니다. 노산군으로 지위가 낮아졌던 단종은 1618년(숙종 7년)에 노산대군이 되었고, 1698년(숙종 24)에 단종으로 복위되어 능의 이름을 장릉이라 하였습니다.
명릉(숙종과 인현왕후·인원왕후의 능)이래 만들어진 사각지붕형 장명등은 장릉에서 첫선을 보였습니다. 특히 장릉은 무덤 제도로 정해진 것 외에 단종에게 충절을 다한 신하들의 위패를 모시는 건물인 배식단사를 설치하였습니다. 조선왕릉 중 정려비·기적비·정자 등이 있는 곳은 이곳뿐이며, 모두 단종과 관련된 것들이죠.
2009년에는 영월 장릉을 포함한 조선왕릉 40기가 능원 공간의 조형 형식 변화와 산릉제례를 오늘날까지 이어 온 가치를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습니다. 두 분의 능은 영월과 남양주에 서로 떨어져 있지만, 신위는 종묘 연녕전에 함께 모셔져 있습니다.
🏛️남양주 사릉🏛️
📍소재지: 경기 남양주시 진건읍 사릉로 180 (사능리)
• 이제는 국가유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