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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항준 감독 최고의 커리어다. 사실 '라이터를 켜라'부터 '기억의 밤' '리바운드'까지 코미디부터 스릴러 등 다양한 장르를 만들어왔기에 사극에 도전하는 장항준 감독의 영화에 대한 큰 기대는 없었다. 장항준 감독에게 대중이 기대하는 게 과연 무엇일까를 생각해보면 입담만큼 재미있는 코미디려나? 하지만 '왕과 사는 남자'를 보면 장항준 감독에게 새삼 놀라게 된다.
역사에 있는 이야기이기에 결말을 알고 본다지만, 풍성한 영화적 상상력으로 역사책 행간의 사람과 사람 간의 이야기를 촘촘하게 채움으로써 영화 속 인물들을 살아 있게 만들었다.
영화의 킥은 눈빛에 있다. 처연한 단종의 눈빛은 박지훈의 눈빛으로 569년 전 인물을 떠올리게 했다. 그리고 단종을 바라보는 유해진의 눈빛이 관객과 민심을 대변하게 했다. 여기에 호랑이 눈 같은 매서움을 그려낸 유지태의 살벌한 눈빛이 더해지니, 극 중의 긴장감은 각 등장인물의 눈만 클로즈업해도 서사가 완성될 정도다.
박지훈의 연기는 특히나 기대 이상이다. 초반의 유약한 이미지를 끌고 가다 갑자기 "네 이놈"이라고 호령하는 장면에서는 "아, 저 사람 왕이었지! 왕 맞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로 기세를 순식간에 바꾼다.
작품의 웃음과 감동은 유해진이 하드캐리한다. 초반의 깔깔 포인트부터 후반의 눈물 버튼까지 유해진이 역사책을 찢고 나온 현실감으로 화면을 가득 채운다. 실제로 조선 시대로 돌아가 이 인물을 데리고 온 게 아닐까 싶은 유해진의 연기는 첫 장면, 활의 깃에 침을 바를 때부터 인상적이다.
배우들의 케미가 너무 좋아서 장항준 감독이 연출을 위해 따로 한 게 있을까 생각될 정도다.
명절에 온 가족이 함께 보기에 좋을 영화라는 장점이 분명하지만, 중간중간 음악의 사용, 종잇장처럼 나풀거리는 호랑이 CG, 더 감동과 눈물을 뽑아냈어도 될 것 같은데 그러지 못한 약간의 연출적 아쉬움도 있다.
1457년 청령포, 마을의 부흥을 위해 유배지를 자처한 촌장과 왕위에서 쫓겨나 유배된 어린 선왕의 이야기 '왕과 사는 남자'는 2월 4일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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