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제목 그대로, <오즈의 마법사>는 의외로 1939년 개봉 당시엔 흥행 실패작이었다. 그것도 대단히 실망스러운 경우.
당시로서 들어본 적 없는 수준이었던 277만7000달러 제작비를 들였는데 1939년 상영 시엔 300만 달러밖에 못 벌었다. 수익을 극장과 나누고 나면 큰 적자. 심지어 10년 뒤인 1949년 재상영 시에도 150만 달러 정도만 추가로 벌어들이는 정도였다.
아주 긴 세월 동안 <오즈의 마법사>는 MGM 스튜디오에 있어 '실패작' 낙인이 찍혀있었다.

2. 물론 당시에도 비평적 반응은 좋아서 당해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로 오르고 음악상과 주제가상을 수상했다.
당시 분위기상으로 <오즈의 마법사>와 같은 판타지가 실사영화로 소화되는 데엔 대중이 어색해했다는 평가가 많다. 그 2년 전인 1937년에 나와 대박을 친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처럼 이런 종류 판타지는 애니메이션으로 나와야 대중이 호응할 수 있었단 것이다.
결국 당시로선 "지나치게 예술적 야심이 컸던 모험" "대중이 받아들이기엔 아직 시기상조였던 실험" 정도였다고 봐야한다.

3. 그러다 1956년 처음 미국서 TV로 방영될 때 무려 5400만 명이 시청하는 기록을 세웠다.
그 세월 동안, 특히 1950년대부터 다양한 SF 영화들이 등장해 호응을 얻으면서 시장 분위기가 달라진 것도 있고, 그 사이 주제가가 워낙 유명해져 그 유명세만으로도 TV 방영은 지켜볼 가치가 있었다는 설, 어찌됐든 영화 등장 후 10여년 뒤까지도 너무 실험적이고 파격적인 콘셉트여서 극장까지 돈 주고 갈 엄두는 안 났지만 TV로는 보고 싶었단 설 등이 나온다.
지금의 <오즈의 마법사> 신화가 씌어진 건 사실 이 1956년 TV 방영 후 여파가 결정적이었단 견해가 지배적이다.
월트 디즈니에서 실사로 거대 제작비를 들여 1964년 <메리 포핀스>를 내놓게 된 것도 이 1956년 <오즈의 마법사> TV 방영에 따른 엄청난 반향을 보고 용기를 얻은 것이란 후문도 있다.

4. 이처럼 영화의 대중친화적 성격 탓에 막상 개봉 당시엔 흥행 실패작이었지만 흥행 대성공작으로 여겨지는 영화도 있는 반면, 그 정반대 케이스도 있다.
대표적으로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1968년작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지나치게 난해한 SF영화란 점 탓에 '당대엔 흥행에 참패했다'는 식 이상한 신화가 씌워졌지만, 실제론 <화니걸>에 이어 1968년 연간 흥행 2위였고, 지금 기준으로 환산해보면 대략 <아이언맨> 정도로 벌어들였었다.

비슷한 예로 <이지 라이더> <지옥의 묵시록> 등등의 흥행 대성공작들이 더 있다. 그리고 또, 1960년대 프랑스 누벨바그 영화들도 대부분 흥행 성공작들이다. 반면 엘리자베스 테일러 주연의 에픽 <클레오파트라>는 그 유명세와는 달리 제작비를 회수하는 데 아주 오랜 세월이 걸린, 개봉 당시로서 흥행 실패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