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 투자자 A씨는 작년 11월 중순 삼성전자 주식을 10만원 안팎에 샀다. 오랜만에 PC를 한 대 장만하려고 부품 값을 보다가 램 가격이 몇 달 전의 거의 두 배가 된 것을 확인했다. 게다가 언론을 통해 ‘D램 품귀’ 이야기도 이어지자 “반도체가 더 갈 수 있겠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다. 이후 주가가 오르면서 A씨는 현재 30%가 넘는 평가 이익을 보고 있다. 다만 최근 상승 폭이 커지자 마음이 복잡해졌다. A씨는 “너무 많이 오르니 무섭다”며 “이제 슬슬 팔아야 할 것 같은데, 타이밍을 도무지 못 잡겠다”고 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투톱’ 주가가 강세를 이어가면서 투자자들 사이에선 “매수보다 매도가 어렵다”는 격언이 다시 회자된다. 주가가 오를수록 언제 매도 버튼을 눌러야 할지가 고민되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주가는 1년 전 대비 148%, SK하이닉스 주가는 263% 올랐다. 증권가에선 업황의 ‘속도’가 빨라진 만큼, 단순히 오름폭만 보고 결정하기보다 사이클이 어떤 성격으로 바뀌고 있는지를 먼저 짚어봐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재고 재축적 국면에서 과잉 발주 국면으로… ‘AI 공급 병목’이 만든 새 사이클
이은택 KB증권 연구원은 반도체 사이클이 지금까지의 ‘재고 재축적’ 국면을 지나 재고 확보를 위한 ‘과잉 발주’ 사이클로 전환될 가능성에 주목했다. 통상 재고 축적기가 꺾이면 반도체 ‘랠리’도 둔화하지만, 이번엔 부족 우려가 커지면서 필요한 양보다 더 크게, 더 빨리 주문을 넣는 양상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연구원은 과잉 발주를 2021년 팬데믹 당시 컨테이너 운임 급등과 비교해 설명한다. 당시엔 공급 병목 우려가 커지자 유통업체들이 여러 공장에 중복 주문을 넣거나 평소보다 몇 배 많은 물량을 발주했고, 공급업체는 이를 실제 수요로 오해하면서 가격과 관련 지표가 한 번 더 ‘오버슈팅’했다는 것이다. 최근 메모리 반도체 가격 급등 흐름이 당시 운임 지수의 두 번째 급등 구간과 닮았다는 진단이다.
핵심 요인으로는 인공지능(AI) 칩 생태계의 변화를 꼽았다. 지금까지는 엔비디아의 범용 그래픽처리장치(GPU) 중심 구조가 강해, 고대역폭메모리(HBM)를 받아 즉시 모듈을 만들면 되는 ‘독점 구도’에 가까웠다. 하지만 빅테크들이 검색·광고·클라우드 등 자사 서비스에 최적화한 맞춤형 AI 칩(ASIC)을 본격적으로 확대하면서 상황이 달라지고 있다. ASIC 진영도 메모리 확보전에 가세하면서 공급 병목 국면의 ‘재고 확보 경쟁’이 더 쉽게 발생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여기에 올해 1분기(1~3월)에는 통화정책 변수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봤다. 이 연구원은 “투자 사이클이 확장될 때 중앙은행은 통상 긴축으로 과열을 막아야 하지만,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는 과잉 완화를 선택할 가능성이 크다”며 “과잉 발주와 과잉 완화 조합이 단기적으로 반도체 업황은 정점으로 향할 것”이라고 했다. 다만 2분기 이후 거시경제 환경이 복잡해질 수 있다는 점은 감안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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