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깥에 보이는 불타는 도시
화려하게 별빛이 반짝이는 밤하늘
소설의 혼란한 표지는 이들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의문을 갖게 만듭니다.

이야기는 우주 어딘가에 존재하는 행성, 라가시(Lagash)에서 시작합니다.
지구처럼 아름다운 자연과 호흡할 수 있는 대기, 마실 수 있는 물을 갖춘 행성이며 여기서 라가시 사람들은 20세기 수준과 같은 문명을 일궈냈습니다.
하지만 지구와 확실하게 다른 점이 있으니, 무려 6개의 태양을 갖춘 6중성계라는 것입니다.
여섯 개의 항성에는 오노스(Onos), 도빔(Dovim), 트레이(Trey), 파탄(Patru), 타노(Tano), 시타(Sitha) 라는 이름이 붙어있습니다.
(소설 단편에서는 그냥 알파, 베타, 감마 식으로 불렀으나 장편 버전에서 고유한 이름이 붙었습니다)
이 때문에 라가시는 어떤 순간에도 반드시 하나 이상의 항성이 햇빛을 비춰주고 있기 때문에 24시간 내내 낮이 지속되며, 여러 항성의 간섭으로 궤도가 계속 영향을 받고 중력이 불규칙하게 변동하기에 만유인력의 발견이 한참 늦어졌습니다.
라가시의 천문학은 이처럼 지구와 전혀 다른 발전을 겪었습니다.

라가시의 천문학자 제노비가 '라가시는 항성 주위를 돌고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이후 이 육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수 세대에 걸친 수학적 계산이 이어졌으며, 그 결과 중력 관계식을 정립하는 데에만 무려 400년이 소요됐습니다.
만유인력으로 6개의 태양 궤도 운동을 완벽히 설명할 수 있다고 발표한지가 고작 20년 밖에 안 됐습니다.
하지만 이야기 시점에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6개의 태양으로 인한 중력을 모두 계산에 넣었는데도 라가시의 궤도에 오차가 발생한 겁니다.

알고보니 6개의 태양으로 인한 햇빛에 가려 그동안 망원경으로도 관측할 수 없던 '달'이 있던 겁니다.
그리고 이 달이 2049년마다 한번씩 태양을 가리게 되는데, 하필 그 순간은 라가시에서 해가 단 하나만 보이는 시기입니다.
유일한 해가 가려지면서 라가시는 2049년마다 '밤'을 맞이하는 것이죠.

불길하게도, 라가시에는 기이한 고고학적 사실이 알려져있습니다.
대략 2000년마다 주기적으로 라가시에는 문명이 번영하다 갑자기 불타 잿더미가 되었다는 것이죠.
현재의 라가시 문명은 여섯 개의 층으로 쌓인 재 위에 건설되어있습니다.
그리고 라가시에는 이상한 광신도들이 활동하고 있었는데,
2050년마다 라가시가 거대한 동굴에 들어가 어둠이 세상을 덮으면 별이라는 것이 나타나 사람을 영혼 없는 짐승으로 만든다는 종말론자들입니다.
이상할 정도로 시기가 일치하죠.
정작 일부 과학자들의 불길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반응은 "그래서 뭐" 였습니다.
사람들은 이를 알아낸 아톤 박사의 발표를 학계의 관심을 끌기 위한 쇼로만 간주했으며 수천년동안 밤이란 것을 본 적이 없기에 '그럼 우리 서로 못알아보겠네 ㅋㅋ' 하며 재밌어하기도 했습니다.
문제는 라가시 사람들은 밤을 모른다는 겁니다.
라가시는 영원히 낮이 지속되는 행성입니다.
언제나 빛을 받아들이며 살아온 라가시인들은 빛이 없는 곳에 본능적인 거부감과 무의식적 공포를 갖고 있으며 이에 따라 라가시의 건축문화 역시 최대한 햇빛을 받아들이는 개방형 구조로 발달해왔습니다.
이 탓에 라가시인들은 공통적으로 극심한 폐쇄공포증과 어둠에 대한 공포심을 갖고 살아갑니다.
이들은 동굴 같은 곳을 극도로 무서워하며, 한번은 박람회장에서 공포체험 어트랙션이라며 15분동안 긴 터널을 지나가는 열차를 만든 적이 있는데 처음에는 나름 인기를 끌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타본 결과, 2~3명씩 심장마비로 사망하고 나머지도 극심한 트라우마가 생겨 아예 건물 안에 들어가려고도 하지 않는 부작용이 생겨났죠.
이 이야기를 하면서 신문기자에게 암실 체험을 시켜줬는데 고작 2, 3분만 있었는데도 몹시 당황하고 침착하지 못하는 반응을 보일 정도였습니다.
이런 이들에게 개기일식이 찾아온다?
상상할 수 없는 일이죠.
하늘의 태양이 하나 둘 사라지고 이윽고 붉은 태양인 베타성 하나만이 남아있을 때, 2천년만에 처음으로 라가시의 달이 모습을 드러내 일식을 일으키게 됩니다.
사람들은 처음으로 하늘의 기이한 풍경과 마주하고 압박감을 느끼며 집안으로 숨거나 서로에게 매달리기 시작합니다.
그것도 일식이 완전히 일어난게 아니라 그저 가장자리를 먹기 시작한 시점에서조차도요.
미리 준비하고 있던 과학자들은 미쳐버리지 않도록 서로를 확인하며 계속 의지를 다져야했습니다.
이 현상을 관측하고 기록해야하니까요.
하지만 도시에서는 광신도들이 군중을 선동하며 빛을 다시 불러오기 위해 옷이든 가구든 눈에 보이는 모든 것에 불을 지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천문대도 습격하고 횃불을 들며 불을 질러댔습니다.
공포로 미쳐버린 사람들은 자동차를 타고 오거나 총을 든 것도 아니고, 그저 맨손으로 천문대에 불을 지르고 있었습니다.
천문학자들은 곧 라가시 전체가 어둠으로 가득해질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지구 밤하늘보다 10배나 더 많은 별빛을 보기 전까진 말이죠.
라가시는 6중 성계에 속해있습니다.
지구보다 훨씬 항성이 많이 밀집한 은하계 안쪽에 위치한 행성이란 겁니다.
라가시는 여섯 개의 태양 탓에 항상 별빛이 안 보여서 그들에겐 오직 모성계만이 태양이 존재하는 곳입니다.
하지만 그 태양이 사라지자 밤하늘에는 무려 3만 개나 되는 별빛들이 반짝이고 있었습니다.
자신들이 살던 라가시의 표면은 차갑고 황량하며 검게 물들었는데, 하늘에는 있는 줄도 몰랐던 별이라는 것들이 가득했습니다.
우주에 태양이라곤 자신들이 보는 6개만이 존재하는 줄 알았지만 사실은 몇 만개나 되는 태양이 있던 겁니다.
그것도 비인간적인 아름답고 경이로운 풍경으로 갑자기 눈앞에 들이밀어졌죠.
마음의 준비도 없고 충격에 적응할 시간도 없이 풍경에 압도당하니 천문학자들조차도 경악하여 제정신을 유지할 수가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눈을 찌르거나 미쳐버려 비명을 지르기 시작합니다.
과학자들이 문명을 보존하기 위해 만들어둔 도서관의 기록물과 박물관의 유물들이 어둠을 몰아내고 빛을 불러오기 위한 땔감으로 전락하고, 태양이 아닌 인간이 만들어낸 심홍색의 불빛이 도시를 불태웁니다.
이제 왜 2천년마다 라가시의 문명이 불타버렸는지를 과학자들은 모두 깨닫습니다.
과학적 사실은 모두 잿더미가 되어 잊히고 오직 2천년마다 찾아오는 문명의 몰락만이 전해질 것입니다.
별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전설만 두려워하며 2천년 뒤의 일식을 아무것도 모른 채 마주하겠죠.
이야기는 이렇게 끝을 맺습니다.
[전설의 밤이 다시 찾아왔다.]

아이작 아시모프의 1941년작 단편소설 전설의 밤은 미국 SF 작가 협회의 최고의 단편으로 선정되어 명예의 전당에 수록됐습니다.
그저 러시아에서 건너온 유대인 3류작가였던 아시모프는 이 작품을 통해 본격적으로 인지도를 얻고 훗날 SF계의 거장으로 올라서게 됩니다.
80년이나 전의 작품이지만 지금도 여전히 소름끼치는 소재와 묘사로 회자되는 명작입니다.
만일 이런 일을 실제로 겪는다면 다들 미쳐버릴 거라고 반응하곤 하죠.
많은 SF 작품이 탄생한 21세기에도 여전히 참신함을 품고 있다는 점에서 아시모프의 천재적인 창의력을 다시한번 엿볼 수 있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