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오후 8시 서울 중구 명동 한복판. 극성 보수단체 회원들이 중국인(짱개)과 북한(북괴), 공산주의자(빨갱이)를 뜻하는 비하 발언들을 쏟아내며 나팔과 호루라기를 불고, 꽹과리를 쳤다. 300여 명이 한꺼번에 "차이나 아웃(China Out)" "시진핑 아웃"도 외쳤다. 이를 본 중국인 관광객들은 슬며시 발길을 돌렸고, 인근 상인과 행인들도 귀를 막으며 눈살을 찌푸렸다.
극우 단체들이 6·3 조기 대선 이후 '중국인 관광 1번지' 명동에서 노골적인 반중(反中) 시위와 행진을 반복하며 일대 상권에 피해를 주고 있다. 생과일주스 노점상 김모(40)씨는 "시위가 시작되면 분위기가 험악해져 줄 서 있던 손님들이 다 떠난다"며 "집회 날마다 매출이 절반으로 급감한다"고 한숨을 쉬었다.
22일 한국일보 취재에 따르면 명동에서 집회를 벌이는 단체는 '자유대학' '선관위서버까국민운동본부' '반공연대' 등 5개 안팎으로 주로 2030 청년층이다. 12·3 불법계엄 이후 여의도·홍대·성수 등 유동인구가 많은 장소를 돌며 탄핵 반대와 '윤 어게인'(윤 전 대통령을 다시 복귀시키자는 구호) 집회를 주도하다 대선 이후 명동으로 무대를 옮겼다. 부정선거에 중국이 개입했다는 주장을 펼치기 위해 주한중국대사관 인근을 택한 것이다. 실제 경찰에 따르면 대선 이튿날인 6월 4일부터 이달 4일까지 두 달간 서울에 신고된 보수단체의 전체 야간 집회 128건(윤 전 대통령 지지·부정선거 의혹 관련 집회)의 절반 가까이(63건)가 명동과 주변(서울역 등) 일대에 집중됐다. 이들은 매주 2, 3회 오후 7시쯤 주한중국대사관 앞에 집결한 뒤 명동 일대를 두 바퀴 돈다.
1시간 넘는 행진은 중국 지도자와 고위 간부 얼굴이 그려진 현수막 훼손으로 마무리된다. 자유대학 관계자들이 주한 중국대사 얼굴이 들어간 오성홍기(중국 국기)를 찢었다가 외국 사절 모욕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고 있지만 아랑곳하지 않는다. 최근엔 역대 중국 국가주석 얼굴을 인쇄한 현수막을 내건 뒤 훼손하고 있다.
경찰도 지난달 말부터 대응에 나섰다. 집회 주최 측에 행진 경로가 주한 중국대사관 경계 100m 이내 구간을 포함하니 우회하라고 통고했다. 소음과 출입 방해로 외교 공간 기능이 침해될 우려가 크고, 명동 일대 안전사고 위험이 크다는 이유다. 이재명 대통령도 12일 국무회의에서 "중국 외교공관 앞에서 표현의 자유를 넘어서는, 욕설과 폭력이 난무하는 혐오 시위가 벌어졌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대통령 발언이 나온 날도 야간 행진 뒤 현수막을 찢는 과격 시위가 되풀이됐다.
혐중 시위로 인한 피해는 상인들에게 돌아간다. 명동 거리가게 운영자 단체인 명동복지회 측은 "서울시가 명동을 관광특구로 지정해 관광객 유치에 앞장서지만 현장에선 (극우 세력이) '중국인 꺼져'라며 내쫓고 있다"며 "서울시와 경찰에 민원을 넣지만, 뾰족한 대책이 없다고 한다"고 털어놨다. 중국인들도 명동 오기가 꺼려진다고 했다. 베이징에서 왔다는 20대 중국인 여성 관광객은 "중국인이란 이유만으로 위협을 당할까 봐 두렵다"고 말했다. 지난 22일엔 극성 단체 인사들이 시위 자제를 촉구하는 상인들을 위협해 경찰이 분리 조치를 하기도 했다. 명동복지회 관계자는 "장사에 방해가 돼 비켜달라고 부탁하면 곧장 싸움으로 번진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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