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지자고 했을 뿐인데 지옥이 펼쳐졌다. 폭행, 주거침입 시도, 성관계 영상 유포 협박, 보복성 역고소…. 연인에게 이별을 고한 한서연(25·가명)씨가 지난 4년간 겪었던 일이다.
한씨는 동갑내기 김익현(25·가명)씨와 2020년 3월 연애를 시작했다. 여느 연인과 다르지 않던 두 사람 사이는 이듬해 6월 급속히 악화했다. 김씨가 전 여자친구를 몰래 만난 적이 있다는 사실을 한씨가 알게 되면서다.

한씨가 이별을 통보하자 악몽이 시작됐다. 이별을 거부한 김씨는 “성관계 영상을 유포해서 네 인스타그램 팔로워 수를 늘려주겠다”고 협박했고, 뺨을 때렸다. 한씨는 연락을 차단했지만 김씨의 괴롭힘은 그치지 않았다. 1원씩 돈을 송금하며 “미친 짓 하고 뒤져줄게” 등 협박 메시지를 수십 개 보냈다.
그후 김씨는 점점 과격해 졌다. 자해 협박을 했고, 차 안에 번개탄을 피우는 영상을 보냈다. 급기야 자신의 배를 칼로 그어 한씨가 응급실로 데려간 적도 있다. 한씨는 “한때 좋아했던 사람이 만나주지 않으면 죽겠다고 하니 마음이 약해졌다. 성관계 영상도 진짜 유포할까 봐 두려웠다”고 말했다.

2023년 4월 김씨는 군에 입대했다. ‘이때가 기회’라고 생각한 한씨는 완전히 연락을 끊었다. 그러자 김씨는 2023년 6월부터 8월까지 소속부대 생활관에서 “전 여자친구를 남자친구가 죽이는 이유를 알겠다” 등 협박 메시지를 보냈다. 무려 2408개에 달했다. 한씨는 “그제야 내가 죽을 때까지 끝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더는 이렇게 못 살겠다 싶어 결심했다”며 김씨를 고소했다. 김씨는 성폭력법상 촬영물 등 이용 협박, 스토킹범죄처벌법 위반, 주거침입미수, 폭행 혐의로 지난해 5월 군사법원에서 유죄를 선고 받았다. 하지만 형량은 겨우 징역 1년에 그쳤다.
괴롭힘도 끝이 아니었다. 한씨는 지난 3월 촬영물 등 이용 협박, 상해 혐의로 조사를 받아야 한다는 경찰의 연락을 받았다. 김씨가 보복성 역고소를 한 것이었다. 김씨는 한씨가 2022년 4월부터 9월까지 자신의 주거지에 홈 캠을 설치해 감시하고, 폭언과 욕설을 일삼아 우울증이 왔다고 경찰에 주장했다. 한씨는 경찰에 출석해 자신의 무고함을 입증해야만 했다.
경찰은 지난달 9일 “피해자의 주장 외에 그를 뒷받침할 만한 증거는 존재하지 않는다”며 한씨를 무혐의 처분했지만, 이미 삶은 피폐해졌다. 4년 동안 주거지와 휴대전화 번호를 2번 바꾸고 직장까지 관둬야 했던 한씨는 “가족한테까지 해코지할까 봐 지금도 두렵다”고 울먹였다. 한씨를 변호한 홍푸른 변호사는 “접근차단조치가 시행되자 가해자가 한씨 가족한테 연락하기도 했다. 제도의 한계가 드러난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씨 사례를 접한 전문가들은 “낯설지 않은 교제폭력 사건이다. 피해자는 운 좋게 살아 남은 경우”라고 말한다. 한씨 사례는 지난 6월 자신을 경찰에 신고한 전 연인이 거주하는 아파트 가스 배관을 타고 창문으로 침입해 흉기로 찔러 살해한 대구 스토킹 살인 사건과도 판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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