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요한은 양쪽 발목에 인대가 없다. 어릴 적부터 해온 운동이 남긴 흔적이다. 13년간 태권도를 했고 전국체전에서 두 차례 우승을 했다. 국가대표 상비군에 발탁될 만큼 잠재력도 인정받았다. 그러나 태권도와 함께 걸어온 청춘은 부상 앞에서 예고 없이 닫혔다. 빠르게 좌절을 털어낸 김요한이 선택한 두 번째 행선지는 아이돌. '태권소년'이 '연습생'이 되는 건 자기 존재를 다시 정의해야 하는 일이었지만 그는 시도에 새긴 패기로 끝내 기적을 만들었다.
그 기적의 무대는 Mnet '프로듀스 101' 시즌2에서 펼쳐졌다. 프로그램 출연 당시 김요한의 연습생 경력은 고작 석 달에 불과했다. 준비가 부족한 만큼 방송 초반에 보여준 실력은 미숙했다. 그러나 그는 짧은 시간 안에 '노력형 인간'의 드라마를 썼다. 투박하지만 패기 어린 춤선, 맑게 빛나는 표정, 건강하게 발현된 자아는 '국민 프로듀서'들의 눈에 빠르게 각인됐다. 단점을 채워가는 과정 자체가 성장 서사가 됐고, 결국 김요한은 최종 순위 1위로 프로그램을 마무리했다. 준비가 부족한 연습생에서 단숨에 '국민센터'가 되기까지의 변곡점은 기적이라는 단어 외에 달리 설명하기 어려운 순간이었다.
그러나 기적의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김요한을 포함한 '프로듀스 101' 시즌2 최종 TOP11으로 결성한 엑스원은 데뷔 4개월 만에 해체됐다. 프로그램이 순위 조작 논란에 휩싸인 탓이다. 스포트라이트 한가운데서 추락은 더 가팔랐다. 김요한은 누구보다 빠르게 스타덤에 올랐지만 동시에 누구보다 일찍 무대에서 자리를 잃었다. 이후 그는 보이그룹 위아이로 발걸음을 이어갔지만 '국민센터'라는 타이틀이 남긴 무게를 되살리기에는 힘이 부족했다. 화려한 출발에 비해 이른 좌절과 성과 없는 활동은 김요한의 이름을 다시 한번 불확실성 속에 놓았다.

김요한은 돌파구를 연기에서 찾았다. 2020년 웹드라마 '아름다웠던 우리에게', 2021년 '학교 2021'에서 그는 청춘의 풋풋한 에너지를 보여줬지만 임팩트는 약했다. 아이돌 출신 배우라는 선입견과 맞물리며 김요한의 연기는 깊이를 더하지 못한 채 표면에서 맴도는 듯 보였다. 잘생긴 외모와 준수한 체격은 배우로서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분명한 장점이었지만, 이를 실질적인 설득으로 끌어올릴 만큼의 연기력은 부족했다.
그로부터 4년 후 SBS 금토 드라마 '트라이: 우리는 기적이 된다'(이하 '트라이')에서 김요한은 마침내 제 옷을 입었다. 김요한은 극에서 한양체고 럭비부 주장 윤성준을 연기하며 이전 작품들과는 전혀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재능보다 노력형 FM 선수, 축구 국가대표 쌍둥이 동생의 그림자, 사랑 앞에 뚝딱이는 서툼, 그러나 누구보다 묵묵히 그라운드를 뛰는 청춘. 김요한은 이 결핍과 집념의 서사를 통해 자신의 과거를 투영하듯 연기한다. 부상으로 운동을 접고 아이돌로 기적을 경험했으나 좌절을 맞았던 궤적. 그렇게 배우와 배역의 결핍이 일치하면서 김요한은 그동안 지적받던 입체감의 부족을 메운다.
'트라이'에서 김요한의 연기는 눈빛과 몸에 의존한다. 이전까지는 이 점이 한계로 지적되기도 했지만 이번 작품에서는 오히려 강점으로 작용한다. 거친 스포츠인 럭비는 몸의 돌파력과 순간적인 에너지가 필요하다. 실제 럭비 선수들과 석 달간 훈련하며 완성한 단단한 체격과 순간에 집중해 돌진하는 눈빛은 성준의 집념을 현실적으로 구현해 낸다. 김요한은 말보다 몸으로 설명보다 움직임으로 청춘의 투지를 증명하며 스포츠 드라마라는 장르가 요구하는 생동감을 끌어냈다.

물론 감정적인 밀도도 한층 두터워졌다. 짝사랑하는 서우진(박정연) 앞에서 뚝딱거릴 때 드러나는 풋풋한 서투름이나, 동생만 챙기는 부모 앞에서 삼켜내는 씁쓸함을 표현할 때, 그리고 그라운드 위에서 공을 움켜쥐고 달릴 때 번뜩이는 눈빛은 모두 성준이라는 인물을 입체적으로 살아 숨 쉬게 만든다. 김요한은 몸의 에너지와 함께 미묘한 감정선을 덧입히며 배우로서 한발 더 나아갔다.
이 성취는 김요한의 커리어 전반을 다시 돌아보게 만든다. 그는 언제나 '기적'이라는 단어와 함께했다. 태권도 선수에서 아이돌, 그리고 좌절에 이르기까지의 굴곡진 궤적. 드라마 제목이 '기적이 된다'라는 사실은 우연 이상으로 읽힌다.
'트라이'는 김요한에게 세 번째 기적의 가능성을 열어준 작품이다. 무엇보다 이번에는 철저한 준비와 훈련 위에서 거둔 성과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제 그가 넘어야 할 과제는 기적을 일시적 반짝임으로 남기지 않는 것이다. 럭비공을 움켜쥐고 온몸을 내던지는 윤성준처럼, 배우로서 김요한 역시 끊임없는 돌파로 길을 열어야 한다. '트라이'로 보여준 가능성이 또 한 번의 '기적'으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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