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정치 "아, 한국은 신분제 사회였지" 조국 사면이 들춘 우리 사회의 단면
45,591 481
2025.08.14 09:56
45,591 481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2/0002401458?sid=001

 

[기고] 조국 사면과 우리가 잃어버린 것… "최소한의 윤리적 감각 상실한 사회, 분열과 증오로 얼룩져 가"

지난 11일, 조국 전 조국혁신당 대표 사면이 확정됐다는 속보를 접했다. 그 순간 나는 몇 달 전 윤석열 전 대통령의 내란 사태로 온 나라가 뒤숭숭했던 그 겨울날을 떠올렸다.

지난해 12월, 나는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을 촉구하는 서울 동십자각 집회에 참석하기 위해 버스를 탔다. 광화문 부근을 우회하던 버스가 꽤 오래 정차했는데, 누군가 열어둔 차창 밖으로 '윤석열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 연설이 들렸다.

"저는 올해 50대 후반입니다. 나름 잘 살고 있습니다. 평범하게 자라 좋은 대학에 갔고, 대학생활 동안 데모를 쫓아다닌다고 수업도 매번 빼먹었습니다. 그런데도 졸업이 어렵지 않았고, 졸업 후 정년이 보장된 직장에 취직해 아이 둘을 명문대에 보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여기 계신 어르신들이 피땀 흘려 이룬 산업화 덕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20대 청년들은 어떻습니까? 죽어라 공부해서 대학에 가도 취직도 못 하고 결혼도 못 하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됐습니까? 소위 민주화의 주역이라는 586 운동권들, 데모나 쫓아다니던 제 또래들이 다 민주당 가서 배지 차고 국회의원 한 자리씩 해먹으면서 자칭 진보란 작자들이 나라를 망쳐놓았기 때문입니다."

우레와 같은 함성이 쏟아졌다. 앞자리에 앉아있던 남성 청년이 하차벨을 다급하게 누르며 기사에게 여기서 세워달라고 했다. 그의 가방 한쪽에는 작은 태극기가 꽂혀있었다. 나는 쥐고 있던 응원봉을 주머니에 넣어 가렸다. 순식간에 공기가 서늘해졌다.

그때부터 나는 하나의 질문에 사로잡혔다. 저 청년들의 분노는 정말 '586 세대'를 향한 것일까? 아니면 그들이 겪어온 불공정한 경쟁 구조에 대한 것일까?

 

끔찍했던 입시 현장

2010년대 중반, 내가 사교육 강사로 일했던 시절을 돌이켜본다. 당시 대학 입시에는 '있을 수 없는 전형'이 있었다. 서류와 면접이 기본 틀이었는데, 서류전형에 아무런 제한이 없었다. 연구 참여, 인턴십, 봉사활동, 비교과 활동을 전부 기록할 수 있었고, 증빙자료만 간단히 첨부하면 됐다. 쉽게 말하면, 학교 밖에서 했던 모든 활동을 제약 없이 기록할 수 있는 시스템이었다.

그때 내가 제일 많이 받은 오더는 논문 대필이었다. 학생 5명분의 원고료를 줄 테니 5명을 논문 공저자로 만들어서 몇 가지 논문과 보고서를 완성해 달라는 것이다. 대치동에는 그런 산출물을 대필해 주며 큰돈을 버는 사교육 업체가 즐비했다. 논문 대필, 보고서, 자소서 대필은 사교육 시장에 거대한 기회였다. 평생 영어, 수학만 수업하던 어떤 강사들은 나에게 "너희 로또 맞은 거 아니냐. 이때 왕창 벌어라"라는 말도 했다. 학자금 대출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상황에서 나에게 학부모들이 제안한 금액은 내 한 학기 등록금에 가까웠다.

나는 거절했다. 대단히 양심적이어서가 아니라 겁이 났기 때문이다. "대필해서 서류를 허위로 제출했다가 면접 때 다 들통날 게 뻔하다"며 "차라리 논문 작성 강좌를 열 테니 학생이 수강하는 게 어떠냐"고 학부모를 설득했지만, 돌아오는 답은 언제나 같았다. "아이들이 내신과 수능 대비로 시간이 없어 직접 논문을 쓸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나에게 그런 작업을 의뢰한 학부모들이 다 '잘 사는' 사람도 아니었다. 그분들은 "누구는 교수 딸이라, 누구는 대기업 다니는 누구 아빠 아들이라, 누구는 고위공직자라 서로 네트워크가 잘 돼 있어 다 부모 '빽'으로 알아서 처리해 준다"고 말했다. "자신들은 그럴 능력이 없어 이렇게 사교육 업계에 돈이라도 밀어 넣어 해줘야 하는 처지"라고도 했다.

추후 교수님들에게 그 전형에 관해 물을 기회가 있었다. 한 교수에게 "면접에서 그 진위를 가릴 수 있느냐"고 물어봤다. 그는 정말 나를 세상 물정 모르는 인간이라는 표정으로 보면서, "그건 그냥 잘사는 학생들을 뽑기 위한 요식행위에 불과한 거 모르니?"라는 답을 해줬다.

내가 맡은 학생들은 국립묘지나 노인 요양병원에서 봉사 시간을 채웠는데, 강남의 입시 설명회에서 "봉사활동도 진로와 연관된 것을 해야 유리하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수십 시간의 활동증을 폐기했다. "성실히 했으면 괜찮다"는 내 말은 언제나 공허했다. 그 광기의 시절에 아등바등해 모든 악재를 뚫고 합격한 학생들도 있었다. 차라리 이딴 전형에 목숨을 거느니 수능을 잘 봐서 승부를 보겠다고 학교를 떠난 제자들도 꽤 있었다.

결국 한 남학생은 수시전형으로 원하는 대학 입학이 어렵다고 판단하고 자퇴해 검정고시를 봤다. 몇 년 후, 그 학생이 나를 찾아왔다. 맞은편 재수학원 옥상에서 매일 죽을 생각을 하다가 우연히 내가 있는 교실 불빛을 보고 용기를 냈다고 했다. 오랜만에 만난 그의 첫 마디는 "선생님, 저 정신과 좀 데려다주세요"였다.

 

제도는 바뀌었지만…

2017년경이 되어서야 학교 밖 어떤 활동도 기재할 수 없는 방식으로 입시 전형이 바뀌었다. 그런 제도가 무려 7년간 지속되었다. 그 7년 동안 얼마나 많은 학생과 학부모가 불공정한 경쟁에 내몰렸을까. 물론 조국 전 대표가 그러한 입시제도를 만든 것도 아니고, 그 일가족이 그런 사회를 부추긴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가 아무 죄가 없고, 누구나 그 정도는 했던 때"라고 말하는 이들에게, "위조는 했지만 입시 당락에 영향이 없었다"거나 "봉사시간을 부풀린 것이 뭐 대수냐"라고 말하는 이들에게 나는 반문하고 싶다.

그때 그 제도 아래에서 고통받았던 학생들과 학부모들에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는가? 정육점을 운영하던 아버지에게, 재수학원 옥상에서 절망했던 그 학생에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는가?

한국 사회가 잃어버린 것

2025년 광화문 탄핵 반대 집회장에서 586 민주화 세대를 향한 증오의 언어가 쏟아졌다. 마이크를 잡은 청년들은 입시비리에서 시작된 '부모찬스'와 기회의 불평등을 약자 혐오로 치환하며 극우세력과 공명하고 있었다.

이번 사면을 계기로 우리는 또다시 조국 사태로 상징되는 한국사회의 극단화된 갈등과 마주하게 됐다. 사교육을 통한 계급 재생산, 부와 권력의 대물림 문제는 여전히 수면 아래 꿈틀거리고 있다. 더 심각한 것은 공동체가 지녔던 최소한의 윤리적, 상식적 감각을 상실해가고 있다는 점이다. "다들 그 정도는 했다"는 식의 상대주의, "입시 당락에 영향이 없었으니 괜찮다"는 식의 결과론이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우리는 먼저 되물어야 한다. 우리 사회가 언제부터 이렇게 윤리적 감각을 잃어버렸는가? 공정과 정의에 대한 최소한의 합의마저 무너뜨린 채 진영논리에만 매몰돼 있지는 않은가?

그 버스 안에서 느꼈던 서늘한 공기를 잊을 수 없다. 분열과 증오로 얼룩진 이 시대에, 우리는 다시 대화할 수 있을까? 정녕 최소한의 상식과 윤리를 공유할 수 있을까?

진보적 의제를 내세우고 진보적 가치의 매력 자본을 거머쥐고 법무부 장관까지 된 그와 그들이, 어떤 세대에 혹은 그 사회 전체에 "아, 한국은 신분제 사회였지 참." 이 말을 재확인시킨 일이라면 그 죄가 작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런 질문들 앞에서 침묵할 수 없어 이 글을 쓴다.

목록 스크랩 (1)
댓글 481
댓글 더 보기
새 댓글 확인하기

번호 카테고리 제목 날짜 조회
이벤트 공지 [아도르X더쿠] 올영 화제의 품절템🔥💛 이런 향기 처음이야.. 아도르 #퍼퓸헤어오일 체험단 298 00:05 14,263
공지 [공지] 언금 공지 해제 24.12.06 4,412,385
공지 📢📢【매우중요】 비밀번호❗❗❗❗ 변경❗❗❗ 권장 (현재 팝업 알림중) 24.04.09 11,191,960
공지 공지가 길다면 한번씩 눌러서 읽어주시면 됩니다. 23.11.01 12,452,970
공지 ◤더쿠 이용 규칙◢ [스퀘어 정치글은 정치 카테고리에] 20.04.29 34,497,428
공지 정치 [스퀘어게시판 정치 카테고리 추가 및 정치 제외 기능 추가] 25.07.22 1,024,076
공지 정보 더쿠 모바일에서 유튜브 링크 올릴때 주의할 점 782 21.08.23 8,471,844
공지 정보 나는 더쿠에서 움짤을 한 번이라도 올려본 적이 있다 🙋‍♀️ 267 20.09.29 7,390,959
공지 팁/유용/추천 더쿠에 쉽게 동영상을 올려보자 ! 3593 20.05.17 8,594,420
공지 팁/유용/추천 슬기로운 더쿠생활 : 더쿠 이용팁 4014 20.04.30 8,474,814
공지 팁/유용/추천 ◤스퀘어 공지◢ [9. 스퀘어 저격판 사용 금지(무통보 차단임)] 1236 18.08.31 14,312,651
모든 공지 확인하기()
2957219 이슈 애매하게 5,6년 올드한게 아니라 한 30년 올드해버리니 오히려 힙함 ㅋㅋㅋ 1 22:46 277
2957218 이슈 나야, 최강록 소주 출시! 1 22:45 490
2957217 유머 1990년대 IT보안기술 4 22:43 372
2957216 이슈 드디어 등장해버린 두쫀쿠 끝판왕..jpg 23 22:41 1,977
2957215 유머 법원 위스키는 어디서 사냐 7 22:41 727
2957214 이슈 박나래vs매니저 논란 약간 반전? (새로운 이진호발 소식) 14 22:40 2,435
2957213 유머 [먼작귀] 찍은 사진을 공개하는 하치와레(일본연재분) 5 22:39 198
2957212 이슈 잼민이때 키자니아 갓는데, 키조라고 거기서만 쓸 수 잇는 화폐가 잇엇음 2 22:39 401
2957211 기사/뉴스 문과 전문직 '사망 선고' 내린 미 경제학자들…"앞으로 법조계 진로 절대 안 돼" 5 22:38 564
2957210 이슈 후카다 쿄코 리즈시절 1 22:38 310
2957209 유머 시아버지 : 뭐 먹고 싶은거 있으면 다 얘기해 다 해줄게 며느리 : 신선한 전복? 4 22:38 1,030
2957208 이슈 거침없이 하이킥 명장면 1 22:37 218
2957207 이슈 대만 청춘영화 주인공 같은 클유아 김성민 대만 출국 사진 2 22:37 339
2957206 이슈 재택근무vs사무실출근 연봉 2배차이 난다면? 3 22:36 632
2957205 기사/뉴스 하희라 “아들 얼굴 본 사람들 ♥최수종 성형 의심, 딸은 완전 아빠 눈”(옥문아) 22:36 930
2957204 유머 ??? 안성재.... 못참겠다는듯 안아버리네 4 22:36 1,176
2957203 이슈 아이슬란드 여행 갔다와서 서울에 집 산 사람 7 22:35 1,628
2957202 유머 흑백2 태안(출신) 셰프 오늘 개업 5 22:34 1,776
2957201 이슈 해외에서 화제인 검소한 메시 22:34 639
2957200 기사/뉴스 '패패패패패패패패패패패패패패패패' 안세영에 곡소리 中 왕즈이, 다시 안세영 만나러 간다 → 말레이시아오픈 8강 안착 1 22:34 1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