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명백한 불공정 행위"
한 아이돌 가수가 사생활 문제로 소속사로부터 수십억 원대 '빚 각서' 작성을 강요당했다며 법정 다툼을 벌인 끝에, 법원이 가수의 손을 들어줬다. 이번 판결은 연예계의 고질적인 '노예 계약' 관행에 경종을 울린 사례로 기록될 전망이다.
꿈을 담보로 쓴 ‘올가미 각서’ 한 장
4인조 남성 그룹의 멤버 A씨에게 데뷔는 간절한 꿈이었다. 28세라는 늦은 나이에 아이돌로 재도전하는 만큼, A씨는 모든 것을 걸었다. 하지만 그 꿈은 한순간에 날아갈 위기에 처했다.
2023년 1월 8일, A씨는 고향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만난 한 여성과 하룻밤을 보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소속사 B사는 일주일 뒤인 1월 15일, A씨에게 한 장의 각서를 내밀었다. 각서의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본인(A씨)은 스캔들에 대한 모든 사실을 시인하며, 이로 인해 발생한 모든 재산적 피해를 배상할 것에 동의한다."
배상 범위는 사실상 무제한에 가까웠다. ▲그룹 1집 제작 및 활동비 전액 ▲전속계약서에 따른 위약금 ▲기타 추가 위약금까지 모두 A씨가 책임져야 했다. 심지어 "A씨 재산으로 배상이 불가능할 경우, A씨의 부모 및 친족에게 대신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것에 동의한다"는 조항까지 포함됐다.
A씨는 그룹 활동을 계속하고 싶다는 절박한 마음에 각서에 서명했다. 하지만 소속사는 각서를 받은 지 단 이틀 만인 1월 17일, A씨의 그룹 탈퇴와 계약 해지를 공식 발표했다. 이후 소속사는 이 각서를 근거로 A씨에게 2억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 "사생활 문제, 계약 위반 아니다"…각서는 '무효'
소속사는 "A씨의 성관계는 아이돌로서 품위를 손상시킨 명백한 계약 위반"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서울중앙지방법원 김노아 판사는 소속사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하며 원고의 청구를 전부 기각했다.
재판부는 먼저 A씨의 행위가 계약서상의 '품위유지 의무' 위반에 해당하는지부터 따졌다. 판결문에 따르면 계약을 위반하기 위해서는 "대중문화예술용역에 지장을 초래할 정도로 품위를 손상시키는 행위"여야 한다.
법원은 "피고(A씨)가 여성과 성관계한 행위가 형사사건에 해당하지 않고, 매체 등에 언급되지도 않았다"며, 이 행위만으로는 계약 제6조 제3항을 위반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선을 그었다. 즉, 범죄가 아니었고 대외적으로 알려져 활동에 지장을 주지 않은 이상, 사적인 관계 자체를 문제 삼아 계약 위반으로 볼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어 법원은 이 사건의 핵심인 '빚 각서'의 효력에 대해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 각서가 민법 제104조의 ‘불공정한 법률행위’에 해당해 원천적으로 무효라고 판결했다.
법원은 "피고는 28세로 다른 아이돌 그룹 멤버에 비해 나이가 많았고, 기존에 다른 그룹으로 데뷔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며 A씨가 처한 상황을 고려했다. 소속사가 이러한 A씨의 절박한 심리를 이용해 법적 근거도 없는 수십억 원대의 배상 의무를 지웠다는 것이다.
결국 법원은 소속사가 A씨를 상대로 청구한 2억의 손해배상 청구를 모두 기각하고 소송비용까지 전부 소속사가 부담하라고 판결했다. 꿈을 향한 아티스트의 절박함을 이용해 '족쇄'를 채우려던 소속사의 시도는 법원의 엄중한 심판 앞에 좌절됐다.
[참고] 서울중앙지방법원 2024가단5256126 판결문 (2025. 7. 9. 선고)
로톡뉴스 https://lawtalknews.co.kr/article/NLJY02VBC6QX
https://x.com/masterofjgp/status/19551383970155766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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