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4월 서울 관악구 봉천동의 한 아파트에서 일어난 화재의 원인이 ‘층간 소음 갈등으로 인한 방화’로 잠정 확인됐다. 범인이 불을 지르기 직전 피해자를 향해 욕설을 하는 등 범행 동기를 추정할 수 있는 구체적인 정황도 드러났다.
10일 경향신문이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봉천동 방화사건 화재 감식보고서를 보면, 지난 4월21일 방화 용의자인 60대 남성은 관악구의 한 아파트 4층에서 불을 지른 뒤 숨진 채 발견됐다. 부검 결과 범인은 분신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됐다.
범인은 이날 오전 8시12분에 오토바이를 타고 아파트 지하주차장에 도착해 휘발유가 담긴 용기 2통 등을 숨겨둔 뒤 엘리베이터를 탔다. 4층에서 내린 범인은 방화 장소인 401호와 404호가 있는 복도를 향해 이동했다. 이때 범인은 세차 등을 할 때 사용하는 고압세척건을 갖고 있었다. 현관문 옆 창문을 드라이버 등 도구를 이용해 깨부순 뒤 고압세척건과 캔들라이터 등으로 화염을 방사해 불을 질렀다. 불이 난 401호와 404호는 약 500m 정도 떨어져 있었고 범인은 404호 옆 복도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이날 아파트로 이동하기 전 범인은 자신이 거주하는 인헌동 주택 주변 3곳에 고압세척건으로 불을 지르는 등 방화를 연습하는 듯한 행동을 보이는 장면이 포착되기도 했다.

화재 당시 범인이 발견된 장소를 설명한 그래픽.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제공
이번 보고서에선 범행 동기를 ‘층간 소음으로 인한 갈등’으로 볼 만한 정황들이 나왔다. 401호 거주 피해자는 화재 발생 직전 현관 밖 복도 쪽에서 창문이 깨지는 소리를 들었고 이를 확인해보니 범인이 창문을 깨는 동시에 고압세척건으로 화염을 방사하고 있었다고 한다. 범인은 피해자를 향해 “XX년” 등 욕설을 했고, 피해자는 그제서야 그가 과거 아래층에 살았던 사람임을 깨달았다고 한다. 조사 결과 범인은 2024년 11월까지 6개월간 같은 동 301호에 살다가 퇴거당해 인헌동으로 이사했다. 평소에도 층간 소음으로 피해자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과 갈등을 일으켰다고 한다. 401호 피해자 가족은 사건 직후 “(범인이) 4층에 올라와 망치로 벽을 두드리기도 했다”며 “해코지를 할 것 같아서 ‘이사를 가자’고 제안했는데 20년 넘게 산 집이라 정이 들어서 계속 머물렀다”고 말했다.
범인이 불을 지른 두 호실은 대부분의 가구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불에 타 소실됐다. 현장 사진을 보면 특히 404호는 소방대가 현장에 도착했을 당시 현관문 위쪽이 파손돼 문이 열린 상태였는데, 현관문 옆 벽면에 방 안에 있었던 음식물 등 이물질이 붙어 있는 등 폭발 등 압력이 일어났다고 볼 수 있는 흔적 등이 발견됐다. 이 방화로 401호와 404호 거주자 등 2명이 중상을 입고 약 6300만원의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경찰은 이번 감식보고서 등을 참고해 수사를 마무리할 방침이다.

지난 4월21일 서울 관악구 봉천동 아파트 방화 용의자가 엘리베이터에서 4층에서 내려 401호 및 404호 방향으로 이동하는 모습.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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