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주시가 추진한 Y프로젝트 '영산강 익사이팅 존' 국제 설계 공모 과정에서 당선작을 출품한 건축사사무소 협력체(컨소시엄) 측이 심사를 앞두고 심사 위원을 접촉해 당선작에 선정될 수 있도록 청탁한 정황이 포착됐다.
설계 공모 심사 위원이었던 A씨는 최근 한국일보와 통화에서 "본심사(2월 20일) 이삼일 전 당선작을 낸 협력체의 참여사 대표 B씨가 전화를 걸어 자기들도 제출했으니 (심사할 때) 고려해 달라고 부탁했다"고 말했다. A씨는 '고려해 달라'는 의미에 대해 "당선되도록 해 달라는, 그 말"이라고 덧붙였다. 이어 "B씨는 (내가) 아는 사람이어서 '고려를 안 하겠다'고 말은 못하고 '그냥 알았다'고 한 뒤 (심사 때 B씨 협력체가 제출한 공모안을) 선택(투표)하지는 않았다"며 "심사가 끝난 뒤에도 B씨에게서 인사 전화가 왔다"고 했다.
'심사 과정에서 청탁 등 어떠한 불공정행위도 하지 않겠다. 불공정행위로 인한 문제 발생 시 발주기관(광주시) 조치에 이의가 없음을 확인한다'는 공정 심사 이행 서약을 어겼다는 얘기다. 광주시는 설계 공모 지침에서 심사 대상자가 심사 위원을 사전 접촉해 공모안을 설명하거나 심사에 영향을 미치는 부당한 청탁을 행사한 경우 해당 공모안을 실격(심사 제외)하도록 규정했다.
이 외에도 B씨는 심사 전날인 2월 19일과 심사 당일 자신의 고교 후배인 공모 발주 부서 직원과 각각 한 차례 통화를 했다. B씨는 본보의 사실 확인 요청에 "심사 전에 A씨와 전화 통화한 사실은 기억나지 않는다"며 "발주 부서 직원과 통화한 건 설계 공모안 발표 시간과 참여 인원 등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고 해명했다.
경찰은 지난달 28일 A씨를 참고인으로 조사하며 B씨가 사전 접촉을 통해 청탁을 했다는 내용의 진술을 확보했다. 특히 경찰은 공공 건축 설계 공모 과정에서 심사 위원과 심사 대상자 간 사전 접촉이 공공연한 비밀로 알려져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건축 설계 업계의 한 관계자는 "심사 위원 과반수만 자기편으로 만들면 당선되는 구조다 보니, 공모 참여 업체와 심사 위원 간 사전 접촉 등 불공정행위가 일상화했다"며 "B씨가 참여한 협력체 측이 제3자를 통해 또 다른 심사 위원과 사전 접촉했다는 뒷말도 들린다"고 했다.
경찰은 B씨 협력체 측이 조직적으로 심사 위원들(9명)에게 접촉했는지 확인하기 위해 나머지 심사 위원들도 참고인으로 소환해 조사할 계획이다. 이와 관련 법조계에선 심사 위원이 청탁을 거절했더라도 심사 대상자들의 로비로 공정한 심사를 기대할 수 없게 됐다면 업무방해죄가 성립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광주의 한 변호사는 "공공 건축 설계 공모 심사 위원은 공무 수행 사인(私人)이라 심사 대상자의 조직적 로비 시도로 심사의 신뢰성과 공정성이 훼손될 현실적 위험이 있다면 업무방해로 판단할 수 있다"며 "실제 심사가 방해됐는지 여부보다 심사 절차 자체의 신뢰가 흔들린 점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광주= 김진영 기자 (wlsdud451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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