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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 교육개혁이 아니라, 교육실험입니다... 고교학점제를 멈춰야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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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7일 서울 관악구 당곡고등학교에서 고교학점제 ‘스마트콘텐츠 실무 수업’이 진행되고 있다. 2025.3.30 |
| ⓒ 연합뉴스 |
올해 3월, 고교학점제가 전면 시행된 지 겨우 한 학기가 지났다. 하지만 벌써부터 교육 현장은 혼란으로 가득 차 있다. '진로 맞춤형 교육'이라는 취지에는 학부모들도 공감한다.
그러나 현실은 아이도, 교사도, 부모도 모두 길을 잃었다. 지금 고교학점제는 준비되지 않은 제도 속에서 수많은 학생들을 실험대 위에 세워놓고 있다.
교육부는 이것이 '선의의 정책'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책상 앞 펜대 굴리는 논리와 현장의 실제는 다르다. 교실 안 아이들은 불안 속에 방황하고, 학부모는 방향 없는 제도에 아이를 맡긴 채 불안만 키우고 있다.
이대로라면 교육은 개혁이 아니라 포기다
고교학점제는 학생 스스로 과목을 선택하고, 진로에 맞는 학습을 설계하며 졸업까지 192학점을 이수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 설계가 현실과 맞지 않는다는 데 있다.
내신은 여전히 상대평가이고, 9등급제에서 5등급제로 바뀌며 오히려 등급 간 간격이 넓어져 변별력은 더 애매해졌다. 변별이 불분명한 상태에서 평가받는 아이들은 혼란스럽고, 그로 인한 불안은 부모에게 고스란히 전해진다.
더 큰 문제는 대입 제도와의 완전한 엇박자다. 고등학교 1학년 아이에게 진로를 먼저 정하라고 강요하면서, 정작 대학은 '무전공 선발'을 확대한다.
아이는 과목을 고르고 나서 "이 길이 아닌 것 같다"고 생각해도 되돌릴 수 없다. 그렇게 불확실성 속에서 자퇴를 택하고 정시로 몰입하는 학생들이 늘고 있다. 고등학교는 더 이상 '배움의 공간'이 아니라 '부담의 공간'이 되고 있다.
교사들의 상황도 심각하다. 학생 선택권을 보장하려면 다양한 수업이 열려야 하지만, 교사 수는 오히려 줄었다. 수업은 늘었고 행정업무는 더 늘었다. 진로 컨설팅 인력은 턱없이 부족하다.
'진로 설계'라는 이름의 모든 부담이 고스란히 담임교사 한 명에게 쏠려 있다. 교사는 관리자처럼 일하지만, 학생의 불안은 받아줄 여유조차 없다. 수업보다 보고서가 먼저이고, 교육보다 행정이 앞서는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교육부와 교육청은 또다시 '성과'에 집중하고 있다. 노트북을 나눠주고 디지털 교육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하지만 그 기기를 수업에 억지로 연동하려다 아이와 교사 모두 생고생하고 있다.
노트북은 쓰기 불편하고, 수업은 혼란스러우며, 학습 효과는 검증되지 않았다. 예산은 낭비되고 현장은 혼란스러운데, 보여주기식 생색만 남는다.
이제는 멈춰야 한다. 아니면 방향을 제대로 잡아야 한다. 고교학점제를 유지하려면 대입 제도와 연동해 설계를 다시 해야 한다. 상대평가를 고집할 것이 아니라 절대평가로 전환해 아이들이 공정하게 평가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진로지도 인력을 확충하고, 아이들이 한 번의 선택이 아니라 반복 가능한 탐색을 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줘야 한다.
무엇보다 정책은 숫자가 아니라 아이의 눈물과 땀이라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 학부모는 더 이상 정부의 발표 자료가 아니라 아이의 흔들리는 눈빛에서 진실을 본다. 정책이 삶을 바꾸지 못한다면, 그것은 실패한 선언일 뿐이다.
이제 교육부는 다시 들어야 한다. 책상이 아니라 교실의 소리를, 지표가 아니라 부모의 절규를, 펜대가 아니라 아이의 마음을. 고교학점제는 지금처럼 가서는 안 된다. 최소한 멈추고, 다시 제대로 시작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