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하지 못한 당신을 기다리며②]
당신이 사라지고, 삶이 남았다.
지붕을 설치하다가, 콜센터에서 전화를 받다가, 드라마를 만들다가, 시멘트를 바르다가, 석탄을 치우다가 퇴근하지 못한 당신은 영영 돌아오지 않는데 삶은 남았다.
그 삶으로 세상이 들어왔다.
한 해 2000명이 산업재해로 퇴근하지 못하는 사회가 들어왔다.
떨어져서, 끼여서, 더워서, 추워서, 괴로워서 사라진 한 명 한 명이 꼭 사랑하는 당신 같았다. 그래서 거리에 나갔다. 법을 배우고, 국회에 가고, 사람들 앞에 섰다. 싸우는 법을 익혔다.
‘산업재해 유가족’이 됐다.
경향신문은 산재 유가족 5명을 다시 만났다.
어느새 ‘산재 분야의 유명인’이 된 그들이 처음부터 ‘투사’였던 건 아니다.
결혼을 앞둔 응급구조사, 사고뭉치 딸의 아빠, 평등한 교실을 꿈꾸는 교사, 진로를 고민하던 청년, 평범한 가장의 삶은 산재라는 사건을 만나고 서로 닮은 싸움으로 채워졌다. 그 경로를 기록했다.
유가족은 지금도 퇴근하지 못한 한 사람을 기다린다. ‘누구도 함부로 잃지 않는 세상’을 향해 나아간다. 수많은 ‘당신’이 다시는 사라지지 않길 바란다.
2016년 10월 어느 날 새벽 홍순성씨(66)의 전화가 울렸다. 경찰서에서 딸 수연이가 시비에 휘말려 싸웠다고 했다. 상대가 무려 7명이랬다. 수연이가 얼마나 다쳤을지 걱정돼 순성씨는 경찰서로 달려갔다. 문을 열자 의외의 풍경이 펼쳐졌다. 외따로 앉은 수연이 옆으로 “눈탱이가 밤탱이가 된 가시네들”이 모여 있었다. 막상 수연이는 크게 다치지 않았다. 어리둥절한 순성씨에게 경찰이 영상을 보여줬다. 영상에서 수연이가 신고 있던 구두로 술에 취한 무리를 제압했다. 억센 딸의 모습에 순성씨는 헛웃음이 나왔다.
2017년 1월23일, 순성씨의 전화가 울렸다. 경찰서에서 수연이가 죽었다고 했다. 콜센터에 현장실습을 나가던 수연이가 전날 새벽 저수지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했다. 7명을 상대해도 지지 않던 딸이 무언가에 꺾였다. 순성씨는 수연이를 무너지게 한 것을 찾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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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혜림 기자
경향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