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기사/뉴스 [최여민의 뮤지엄 노트] 잠들기 전 최고의 선택
5,850 0
2025.07.28 13:04
5,850 0


xZIWxR

▲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 / 프랑스 / 1887~1968), '샘(Fountain)', 레디메이드, 63×48×35cm, 1917년(1964년 복제)
[문화매거진=최여민 작가] 오늘은 몇 달째 구독만 해놓고 끝내 보지 못한 넷플릭스를 보기로 결심한 날이다. 하지만 30분 넘게 리모컨을 돌려 보아도 마땅히 끌리는 게 없다. 로맨스부터 액션, 다큐멘터리, 애니메이션까지 온갖 장르를 기웃거렸지만, 어느새 시계는 밤 11시를 가리킨다.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먼지 쌓인 책을 집어 든 나의 선택은 나에게조차도 뜻밖이었다. 정말이지 예측 불가능한 밤이다.

기발하고 엉뚱한 선택으로 주목받는 데는 누구보다 앞서 있던 예술가가 있다. 공장에서 찍어낸 변기를 예술이라며 내민 마르셀 뒤샹이다. 책으로 선회한 나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의 대담함이다. 뒤샹은 실제 공장에서 생산된 소변기에 사인 하나를 얹어 ‘샘(Fountain)’이라는 이름을 붙여 세상에 내놓았다.

당시 뉴욕의 한 전시회는 참가비만 내면 어떤 작품이든 전시할 수 있다고 홍보했다. 하지만 막상 뒤샹이 평범한 남성용 소변기를 작품으로 제출하자 부적절하다는 이유로 작품을 거부했다. 결국 전시장에 놓이기도 전에 퇴짜를 맞은 ‘샘’은 오히려 더 큰 주목과 논란을 불러일으켰고, 현대미술 역사상 가장 상징적이면서도 논쟁적인 작품으로 남았다.

뒤샹은 누구나 살 수 있는 공산품을 미술관에 놓아 예술의 경계에 도발적인 질문을 던졌다. 그는 이 평범한 물건을 ‘레디메이드(readymade)’라 불렀다. 말 그대로, 이미 만들어져 일상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사물이라는 뜻이다. 예술가가 직접 그리거나 조각을 통해 새롭게 만든 것도 아니고, 특별한 장식이나 변형을 더하지도 않았다. 그냥 가게나 공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제품을 그대로 가져와 작품으로 내놓은 것이다. 

공산품에 단지 사인 하나 했을 뿐인데 그것만으로 예술 작품이 되었다. 예술에서 사인은 단순한 이름 표기를 넘어, 작품이 ‘진짜’임을 증명하고 그 가치를 높여주는 중요한 표시로 여겨져 왔다. 예술가의 이름은 곧 작품에 대한 보증이자 상징이었던 셈이다. 그런데 뒤샹이 ‘샘’에 붙인 사인도 절대 평범하진 않다. 그는 자신의 이름 대신 ‘R. Mutt 1917’이라고 적었다. 이 가짜 이름은 위생도기 브랜드 ‘J.L. Mott Iron Works’에서 따온 말장난이자, 당시 미국 만화 캐릭터인 ‘Mutt and Jeff’에서 유래된 장난스러운 익명성이었다. 그래서 굳이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지 않았고, 대신 익명성조차 하나의 개념으로 활용하며 작품의 일부로 녹여냈다. 이런 태도는 이후 ‘개념미술’이라는 새로운 예술 흐름에 큰 영향을 주었고, 뛰어난 기술이나 거창한 주제보다 작품에 담긴 생각과 문제의식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예술의 길을 열어주었다.

뒤샹은 선택하는 행위만으로도 예술이 될 수 있다고 믿었다. 사람들이 당황하고 혼란스러워한 건 생소한 형태의 작품이 아니라, 너무도 익숙한 물건을 예술이라 주장한 그의 과감한 선택이었다. 어떤 이는 변기를 예술이라 부르는 데 분노했고 또 다른 이는 그 단순함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발견했다. 

지금도 가장 영향력 있는 예술가 중 한 명으로 꼽히는 뒤샹은 변기 하나를 고르는 단순한 선택만으로 예술의 경계를 완전히 흔들어 놓았다. 결국 중요한 건 무엇을 보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바라보느냐 일지도 모른다. 한참을 넷플릭스 앞에서 망설이다가 우연히 집어 든 책이 깊은 울림을 안겨준 것처럼 말이다. 잠들기 전, 무심코 눌러 읽기 시작한 이 글이 어쩌면 당신만의 ‘샘’을 만들어내는 최고의 선택이었기를!

https://www.munwhamagazine.co.kr/news/articleView.html?idxno=4425

목록 스크랩 (0)
댓글 0
댓글 더 보기
새 댓글 확인하기

번호 카테고리 제목 날짜 조회
이벤트 공지 🔥 [아윤채 X 더쿠] 살롱 디자이너 강추템, #손상모발모여라! '인리치 본딩 크림' 체험단 모집 (100인) 651 01.01 111,148
공지 [공지] 언금 공지 해제 24.12.06 4,409,807
공지 📢📢【매우중요】 비밀번호❗❗❗❗ 변경❗❗❗ 권장 (현재 팝업 알림중) 24.04.09 11,181,128
공지 공지가 길다면 한번씩 눌러서 읽어주시면 됩니다. 23.11.01 12,449,329
공지 ◤더쿠 이용 규칙◢ [스퀘어 정치글은 정치 카테고리에] 20.04.29 34,484,663
공지 정치 [스퀘어게시판 정치 카테고리 추가 및 정치 제외 기능 추가] 25.07.22 1,024,076
공지 정보 더쿠 모바일에서 유튜브 링크 올릴때 주의할 점 782 21.08.23 8,470,529
공지 정보 나는 더쿠에서 움짤을 한 번이라도 올려본 적이 있다 🙋‍♀️ 267 20.09.29 7,390,959
공지 팁/유용/추천 더쿠에 쉽게 동영상을 올려보자 ! 3593 20.05.17 8,592,979
공지 팁/유용/추천 슬기로운 더쿠생활 : 더쿠 이용팁 4013 20.04.30 8,473,523
공지 팁/유용/추천 ◤스퀘어 공지◢ [9. 스퀘어 저격판 사용 금지(무통보 차단임)] 1236 18.08.31 14,309,660
모든 공지 확인하기()
2955790 이슈 최근 다시 주목받고 있는 데뷔 6개월 차 투애니원..... 2 19:52 201
2955789 이슈 쿠키한테 인종따지는게 난 너무 웃기다고ㅅㅂ살짝 더 구워졋는갑지씨발아 4 19:50 682
2955788 기사/뉴스 학교 앞 평화의 소녀상에 "매춘 진로지도" 불법 집회‥경찰 내사 착수 3 19:49 113
2955787 기사/뉴스 수배 중 40대 남성, 미성년자 성매매 혐의 체포 2 19:47 322
2955786 기사/뉴스 [단독] '종각 3중 추돌' 70대, 감기약 복용 뒤 운전…약물운전 혐의 제외될 듯 8 19:47 682
2955785 유머 [흑백] 감다살 그 자체인거같은 캐릭터 콜라보.jpg 23 19:46 1,547
2955784 기사/뉴스 애플 델 구글 아마존 임원들 반도체 구매협상 위해서 한국호텔에 임원들 수용중 2 19:46 478
2955783 이슈 마차열풍으로 보성녹차쪽이 많이 출하하고 있다고 함 16 19:46 1,366
2955782 유머 극 내향인은 현관문도 그냥 열지 않는다 6 19:46 673
2955781 이슈 평생 막내로 살다가 갑자기 맏형이 된 남돌 근황 1 19:45 818
2955780 이슈 엔하이픈 성훈 피겨선수 시절 의상 물려입었던 선수 근황 2 19:45 714
2955779 이슈 ?? : 심즈 프로게이머가 있으면 일케하지않을까 1 19:44 294
2955778 유머 네비를 크게 보는 엄마 1 19:44 490
2955777 이슈 씨엔블루 'Killer Joy' 핫백 37위 진입 3 19:44 101
2955776 이슈 오늘자 인간 맥 그 자체라는 미야오 엘라 비주얼 6 19:44 504
2955775 정치 장동혁, 주황색 타이 매고 ‘외연확장’ 밝혔지만… ‘尹절연’엔 거리두기 3 19:43 126
2955774 기사/뉴스 “해외서 유행 중” 아기 낳기 직전 가슴 쥐어짜는 임신부들… 대체 왜? 14 19:42 2,312
2955773 팁/유용/추천 올데프 우찬 노래 취향 #3 2 19:42 123
2955772 기사/뉴스 [단독] 호카 본사, '너 나 알아' 폭행 업체 측과 계약 해지 6 19:41 621
2955771 기사/뉴스 [속보]고속도로 걸어서 횡단하던 70대 여성, 화물차 치여 숨져 19 19:41 1,6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