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개봉 영화 ‘좀비딸’ 밤순 役
좀비가 된 손녀…기강잡는 할머니
“최유리 리액션 덕에 코믹 연기 살아나”
“멈추다 가다하며 연기하는 것이 꿈”

[헤럴드경제=손미정 기자] “어디 버르장머리 없이 할미 한티(한테)”.
오랜만에 본 손녀가 입질부터 해댄다. 가차없이 효자손을 휘두르고 나니 그제서야 온순해진 ‘내 강아지’. 어쩐지 으르렁 거린다 했는데, 좀비 바이러스에 감염됐다는 사실을 듣고는 엉엉 눈물이 터져나온다. 기쁨과 분노, 그리고 슬픔.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타는 와중에도 쉬지 않고 웃음버튼을 눌러대니 당해낼 방법이 없다. 효자손 앞에선 그저 순한 양이 돼버리는 좀비 손녀까지, 가뜩이나 신을 집어삼키고 있는 할머니의 ‘연기쇼’를 총력 지원한다.
역시나, 다시 한번 느낀다. 몸빼를 입은 이정은은 절대 당해낼 수 없다. 영화 ‘미성년’(2019)의 술취한 방파제 할머니도, 드라마 ‘오 나의 귀신님’(2015)에서 귀신을 잡으러 뛰어다니던 서빙고 보살도 그랬다. 시간이 지나고 곱씹어보게 되는 장면에는 늘 그가 있었고, 이번에도 예외는 없다. 영화 ‘좀비딸’의 ‘밤순’ 역을 맡은 이정은을 서울 종로구 모처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답변 하나하나에 이정은이란 배우가 온전히 실려오는 듯 했다. 돌아오는 대답에 웃음이 나고, 이어지는 대화가 깊어지는 인터뷰였다.

‘밤순’은 할머니이자 엄마다. 그는 때로는 단호하게, 때로는 다정하게 좀비가 된 손녀 수아(최유리 분)와 아들 정환(조정석 분)의 울타리가 돼 준다. ‘겁 없이’ 좀비 손녀를 다루는 밤순은 유쾌하고, 이들을 안아주는 밤순은 따뜻하다. 영화에 가득찬 따뜻한 웃음은 밤순이 없이는 결코 이야기할 수 없다.

이정은은 “이걸(노역을) 유쾌하게 받아 들이지않으면 안된다. 자연스럽게 오는 것을 늦출 수는 없다”면서 “나문희 선생님도 내 또래 때 할머니역을 맡았다. 50대 후반의 여배우들이 주인공을 빼고 할 수 있는 배역 중 하나고, 노역이라도 이야기의 구성에 영향력을 미치는 역할이라면 의미가 크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작중 밤순은 2NE1의 ‘내가 제일 잘나가’에 맞춰 춤을 추며 마을잔치를 휩쓰는 힙(Hip)한 할머니다. 만화에서 갓 튀어나온 것 같은 범상치않은 할머니를 ‘땅’에 붙이는 것이 이정은에게 주어진 숙제였다. 실존하는 할머니 래퍼 그룹, 소위 ‘칠곡 어머니’들이 총출동해 촬영 현장에서 그를 지원했다. 그는 “실제감이 들 수 있는 역할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칠곡 어머니들을 만나보니 ‘내가 근거가 있는 인물이구나’란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어머니들을 만나면서 신이 났어요. 내가 배워야하는, 내 나이 또래에 실존하는 인물들을 만나게 되는 거잖아요. 연기를 할 때 늘 내가 맡은 배역처럼 사는 실존 인물들이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거든요. 실제로 칠곡 어머니들을 만나보니 집집마다 사연도 있고, 생활 속에서 음주가무도 잘 하시더라고요. 사실 저는 근거가 있는 인물있던 거죠”(웃음).
이정은의 연기는 뇌리에서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다작(多作)의 영향인가 했는데, 배역의 크기와 상관없이 깊은 인상을 남기는 것은 아무래도 이정은이 가진 힘이다. 언제나 ‘신스틸러’란 수식으로는 설명이 부족한 배우였다. 이정은은 “틈새시장을 잘 노린 것 같다”며 기어이 연기 밖에서 그 이유를 끌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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