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서울 압구정동에 있는 병원을 다녀왔다. 아킬레스 건염으로 고생하는 남편 진료가 예약된 날이었기 때문이다. 진료를 마치고 건물 주차장에 맡겨둔 차를 찾기 위해 발레 파킹 정산소로 갔다.
주차비가 3천 원이라는 걸 미리 알고 오백 원짜리 여섯 개를 준비해 갔다. 남편은 동전을 안 받을 거 같다며 카드 결제로 해야 될 거라 말했다. 그래도 난 설마 하는 마음으로 준비했다.
"주차비는 3천 원입니다."
기다렸다는 듯 난 오백 원짜리 여섯 개를 주머니에서 꺼냈다. 미리 준비해온 잔돈이다. 작은 금액은 동전이나 지페로 내는 것이 익숙한 세대다.
그런데 직원은 동전을 내미는 내 손을 슬쩍 보고는 고개를 내 저였다.
"현금은 안 받아요. 카드나 계좌이체로만 가능합니다."
남편의 짐작이 맞았다. 백 원은 몰라도 오백 원짜리는 받을 거라는 건 내 생각일 뿐이었다. 순간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 같아 당황스러웠다.
그 순간, 마음 한편이 휑해졌다. 분명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런 일이 흔하지 않았는데, 이제는 현금이 '거절' 당하는 일이 너무나 자연스러워졌다. 그동안 여러 가게에서 '현금보다는 카드로 부탁드립니다'라는 말은 들었지만, 이번엔 아예 "현금 불가"라는 확고한 거절이었다.
물론 불편했던 건 그 상황 자체가 아니라, 내가 쥐고 있던 오백 원짜리 여섯 개의 무력함이었다. 한때는 자판기도, 시장도, 학용품 하나도 동전으로 사고팔던 시절이 있었는데, 이제는 그 동전이 사용조차 어려운 시대가 된 것이다.
하지만 문득 드는 생각이 있다. 혹시 우리는 그 편리함을 좇다가, 누군가를 배제하고 있는 건 아닐까.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는 어르신, 스마트폰에 익숙하지 않은 어르신, 은행 앱을 어려워하는 분들, 휴대폰이 없어도 살아가는 사람들.
그분들에게는 '계좌이체'보다 '현금 한 장'이 훨씬 익숙하고 안전한 방법이다. 그런데 이제는 작은 주차비 조차도 '디지털 능력'을 요구한다. 현금은 점점 불편한 존재가 되어가고, 현금을 쓰는 사람도 '불편한 사람'처럼 취급받는 것 같아 씁쓸하다.
요즘은 시장에서 떡 하나를 사도 "페이 되나요?"라고 묻는 시대다. 그리고 그 질문이 익숙해진 나조차도, 그날처럼 동전 하나 내밀었다가 거절 당하면 속이 씁쓸해진다. 아직 나는 완전히 '현금 없는 사회'에 마음을 내주지 못한 사람인가 보다.
나는 오늘도 지갑 한쪽에 동전 주머니를 챙긴다. 당장은 쓸 일이 없더라도, 누군가 내 동전을 흔쾌히 받아주는 날이 올까 기대하면서. 그리고 잊지 않기 위해서다. 지금의 '편리'가, 누구에게는 '불편'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김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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