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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킨십도 계속하면 무뎌진다"며 '감정수업' 빙자한 그루밍 성범죄
항소심 재판부 원심 파기하고 징역 2년 선고
"스킨십도 계속하면 괜찮아질 거야. 병원에선 이런 거 안 해주잖아. 내가 도와줄게."
칵테일 조주 강사 A씨(41)는 18세 제자에게 이렇게 말하며 '특별한 수업'을 시작했다. 남성을 두려워하는 제자의 심리적 약점을 파고들어 '치료'를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그 실체는 법원이 인정한 명백한 '그루밍 성범죄'였다.
서울고등법원 제14-1형사부(재판장 박혜선)는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A씨에게 징역 2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감정 수업'이라는 이름의 덫
바텐더의 꿈을 안고 A씨의 작업실을 찾은 피해자는 등록 첫날부터 A씨의 표적이 됐다. A씨는 피해자의 정신 병력과 남성 기피 성향을 파악한 뒤, 이를 해결해주겠다며 접근했다. 그는 "스킨십에도 단계가 있다"며 "1단계는 눈 마주치기, 2단계는 안기, 4단계는 뽀뽀"라는 자신만의 '커리큘럼'까지 제시하며 신체 접촉을 정당화했다.
피고인의 진술서에 따르면, A씨는 '정서적 안정이 숙면에 도움이 된다'며 피해자를 안아주거나, '너도 나를 안아주면 더 좋다'고 말하는 등 지속적으로 스킨십을 유도했다. 결국 2022년 11월, A씨는 피해자의 입에 뽀뽀를 하기에 이르렀고, 이는 사건의 결정적 도화선이 됐다.
피해자는 그날의 충격을 일기에 고스란히 남겼다. "갑자기 입에 뽀뽀 하셔서 진짜 당황스러웠다. 그 후로 생각도 많아지고 집중도 하기가 힘들었다...자해 충동도 느끼고 미치는 줄 알았다." 이 일기는 A씨의 범죄를 입증하는 핵심 증거가 됐다.
가해자의 '무죄 주장' 일축한 이유
1심 재판 이후 A씨는 강제추행 사실을 전면 부인하며 항소했다. 피해자가 범행 이후에도 "쌤 오늘 학원 가두돼여?", "집 잘 도착했어요!!" 등 친근한 메시지를 보냈다는 점을 무죄의 근거로 내세웠다. 성범죄 피해자라면 보일 수 없는 태도라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의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는 "성폭력 피해자의 대처 양상은 피해자의 나이, 성정, 가해자와의 관계 등 구체적인 상황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는 대법원 판례를 인용하며 A씨의 주장을 일축했다.
재판부는 피해자가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아르바이트비로 학원비를 내며 바텐더의 꿈을 키워왔다는 점에 주목했다. 이런 상황에서 스승인 A씨의 부적절한 행동을 참고 견디며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려 했던 피해자의 행동이 비합리적이지 않다고 봤다.
특히, 피해자가 친구와 나눈 카카오톡 대화가 결정적이었다. 피해자는 "언니 내 얘기 들으면 미쳤냐고 난리날 것 같아서", "학원 가지마. 이러고 난리날 듯"이라며 피해 사실이 알려져 학원을 그만두게 될 상황을 더 걱정하는 모습을 보였다.
재판부는 이를 두고 "피해자가 꿈을 포기하고 싶지 않아 참고 견디려 했던 것"이라며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높게 평가했다.
원심 파기하고 징역형 집행유예
항소심 재판부는 A씨의 죄질이 매우 나쁘다고 판단했다. ▲강사라는 지위를 이용해 보호해야 할 18세 청소년을 범행 대상으로 삼은 점 ▲피해자의 정신적 약점을 이용해 '가스라이팅' 수법을 사용한 점 ▲범행이 일회성이 아닌 지속·반복적으로 이뤄진 점 등을 지적했다.
또한, A씨가 법정에서까지 범행을 전부 부인하며 반성하지 않고 피해 회복 노력도 전혀 하지 않은 점을 강하게 질타했다. 재판부는 "원심의 형이 너무 가벼워서 부당하다"는 검사의 항소를 받아들여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징역 2년을 선고했다. 다만 형사처벌 전력이 없는 점 등을 고려해 4년간 형의 집행을 유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