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평 남짓한 회의실은 마치 법원의 조정실 같았다. ㄷ자 모양의 탁자 위에는 ‘위원’이라 적힌 명패, 마이크가 여러 대 놓여 있었다. 눈에 띄는 점이라면 ‘의견진술석’ 탁자 한쪽에 놓인 네모난 갑티슈였다.
“특히 초등학생들은 이 공간에 들어오면 너무 무서워해요. 딱딱한 분위기에서 어른들이 자기만 쳐다보고 있으니까 겁을 먹죠. 눈물 콧물 흘리며 우는 아이들이 많아 휴지 한 갑이 금방 떨어집니다.”
지난달 23일 경기 고양미래인재교육센터에서 만난 고재현 경기도시흥교육지원청 장학사가 말했다. 그는 2023년부터 2년간 경기도고양교육지원청 학교폭력제로센터에서 학교폭력 업무를 담당하며 이 공간을 거쳐 간 수많은 학생과 학부모들을 봤다.
이곳은 고양에서 일어난 학교폭력 사건을 심의하는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심의위)가 열리는 심의실이다. 지난해에만 550건이 이곳에서 다뤄졌다.
올해는 심의위 제도가 도입된 지 5년이 되는 해다. 각 학교에서 운영하던 ‘학폭위’(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 기능은 2020년 3월부터 각 시·도 교육청 산하 교육지원청에 설치된 심의위로 이관됐다. 교사들의 부담을 덜고, 전문성을 강화하겠다는 취지에서다. 심의위가 설치되고 초·중·고 학교폭력 심의 건수도 2020년 8357건에서 2023년 2만3579건으로 급증했다. 사소한 괴롭힘도 폭력이라는 인식이 확대되며 학교폭력에 대한 민감도가 높아진 까닭이다.
그러나 최근 현장에서는 “모든 학내 갈등이 과도하게 학교폭력 사건으로 간주되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최근 3년간의 심의위 심의 결과가 이를 증명한다. 심의 결과 ‘조치 없음’(학교 폭력이 아니라고 판단) 결정을 받은 사건은 2021년 10.7%에서 2023년 16%로 늘어났다. 반면 전체 조치 건수 중 출석 정지 이상(6∼9호)의 중대 조치 비중은 2021년 11.4%에서 2023년 9.3%로 줄었다.
고재현 장학사와 함께 고양교육지원청에서 학교폭력을 담당했던 김익환 경기도교육청 장학사는 이런 경향을 보여줄 사례로 초등학생 간 있었던 ‘세탁비 사건’을 떠올렸다. 사건의 개요는 이렇다. 미술 시간 친구의 실수로 옷에 물감이 묻은 아이가 세탁소 영수증을 내밀며 1만9천원을 요구했다. 물감을 튀긴 아이의 학부모는 세탁비가 너무 비싸다며 의문을 품었다. 학부모는 영수증을 발급한 세탁소에 비용을 문의했고, 비용을 요구한 아이가 영수증에 적힌 1만원을 1만9천원으로 고쳐 적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아이는 처음 입은 새 옷에 물감이 묻어 돈을 더 받고 싶은 마음에 그랬다고 시인했다. 사과와 화해로 끝날 일이었다. 그러나 이후 양쪽 부모 간 언성이 오갔고, 이 사안은 ‘사문서위조’라는 명목을 달고 심의위에 접수됐다. 당연히 심의 결과는 ‘조치 없음’이었다.
“심의위 위원들에게 지급하는 수당과 시설 운영비 등을 고려하면 사건 심의 한건에 150∼200만원의 예산이 듭니다. 물론 잘못된 행동이었지만, 사과와 화해로 해결할 순 없었나 아쉬웠죠.” 김익환 장학사가 말했다. 이 밖에도 지난해 고양교육지원청에는 친구가 째려본 것 같아서, 지나가면서 어깨를 치고 가서 등 다양한 이유로 학교폭력 사안이 접수됐다. 초등학교 1학년 자녀가 마음에 들지 않는 학교에 배정돼, 전학을 위해 무리하게 학교폭력 사안을 접수한 학부모도 있었다.
특히 초등학교 저학년에서 학교폭력으로 신고되는 사안들은 난감한 경우가 많다. “초등 1·2학년 아이들의 경우 사안이 발생하고 심의위에 오게 되는 두 달 동안 무슨 일이 있는지도 까먹고 이미 서로 화해해서 친하게 지내는 경우가 매우 많아요. ‘나는 친구와 잘 지내고 싶었는데, 우리 엄마가 신고하라 해서 어쩔 수 없이 했다’고 말한 초등학생도 있었고요.” 최건희 고양교육지원청 학교폭력 담당 변호사가 말했다. 2023년 기준 심의위에서 심의된 초등 1·2학년 사안 중 25%에 학교폭력이 아니라는 결정이 내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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