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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안동 병산서원을 찾은 윤석열 당시 대통령이 2023년 10월 27일 유림간담회를 마친 뒤 참석자들과 기념식수를 하는 모습. 연합뉴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병산서원 내에 심은 소나무와 기념비석(경향신문 7월2일자 11면 보도)이 ‘불법’인 것으로 드러났다. 국가유산청과 안동시는 해당 행위가 법 위반 사실임을 알면서도 별다른 조처를 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소나무가 심어진 이후 누군가에 의해 설치됐다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 기념비석은 언제 설치됐는지, 누가 철거한 지도 불분명해 세계문화유산 관리가 부실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일 경향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2023년 10월 27일 윤 전 대통령은 유림간담회를 위해 병산서원을 방문한 날 소나무 1그루를 기념식수로 심었다. 이 소나무가 식재된 곳은 병산서원 입구 인근으로 국가지정유산구역이다.
이 구역에서 나무를 심거나 기념비석 등을 설치하려면 담당 지방자치단체에 ‘국가유산 현황 변경신청’을 해야 한다. 이후 국가유산청은 지자체로부터 전달받은 신청내용을 확인한 뒤 검토를 거쳐 허가 여부를 결정하게 돼 있다.
하지만 대통령실은 안동시에 변경신청을 하지 않았다. 병산서원은 사적 제260호이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문화재다. 서원 내 만대루는 보물로도 지정돼 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경북 안동시 풍천면 병산서원 입구에 윤석열 전 대통령 방문을 기념하며 심은 소나무 앞에 기념비석(왼쪽, 독자제공)이 있는 모습과 지난 1일 소나무 앞에 비석이 사라진 모습. 김현수 기자
국가유산청 관계자는 “문화유산법에 따라 (윤 전 대통령 기념식수 행위가) 위법한 행위임은 분명하다”며 “해당 구역에 형질을 변경하는 모든 행위는 허가를 받아야 한다. 별다른 신청이나 허가를 받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안동시는 현상변경을 한 주체가 대통령인 만큼 대통령 본인이나 대통령실에서 변경 신청을 해야 하지만, 별다른 신청이 없어 국가유산청에 허가를 구할 수 없었다고 해명했다.
안동시 관계자는 “허가를 받지 않은 조형물 등에 대해서는 철거하는 등 원상복구를 해야 한다”며 “하지만 대통령이 직접 진행한 일이고, 담당자도 바뀌는 등의 이유로 적절한 조처를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윤 전 대통령 기념식수 행사 당시에 권기창 안동시장 등이 참석해 논란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국가유산청 또한 윤 전 대통령이 소나무를 심는 등의 모습이 주요 언론에 보도됐음에도 원상회복 등의 조치는 하지 않았다.
주민 전모씨(50)는 “대통령이 만대루에서 술판을 벌이자면 그렇게 할 것인가”라며 “세계문화유산인데 대통령이 아니라 대통령 할아버지가 와도 관리는 원칙대로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경북 안동시 풍천면 병산서원 입구에 1일 윤석열 전 대통령 방문을 기념하며 심은 소나무(붉은색 원)가 서 있다. 김현수 기자
윤 전 대통령이 심은 소나무 앞에 누가 설치한 지, 언제 철거된 지도 모르는 기념 비석도 문제다. ‘방문기념식수 대통령 윤석열’이라고 적힌 이 비석도 변경신청 등의 절차 없이 무단으로 설치됐다가 최근 사라졌다.
서원 관리자에 의해 1~2주 전쯤 사라진 것으로 추정될 뿐이다. 국가 보물이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관리가 부실하다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앞서 병산서원에서는 지난해 12월 30일 KBS 드라마 촬영팀이 소품용 모형 초롱을 달기 위해 만대루 8곳과 동재·서재 2곳 등 모두 12곳에 못질을 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나무에 구멍이 난 못 자국은 개당 두께 2∼3㎜, 깊이 약 1∼1.5㎝로 파악됐다.
당시에도 안동시는 드라마 촬영 허가만 한 뒤 현장 관리는 하지 않았다. 건축가 민서홍씨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이 사건을 올리며 논란이 됐고, 이후 안동시는 KBS 드라마팀을 경찰에 고발했다.
안동시 관계자는 “철거해야 할 무허가 비석이 사라진 만큼 별도 경찰 고발은 필요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며 “서원이 개방돼 있고 나무가 주요 시설은 아니다 보니 뒤늦게 발견한 것 같다”고 말했다.
국가문화유산청 관계자는 “(윤 전 대통령이 심은) 나무는 원칙적으로 원상복구 대상”이라며 “심어진 나무가 1그루인 만큼 문화유산위원회 검토를 거쳐 결정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