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박수칠 때 떠났어야 했다. 질척의 끝은 쥐어짠 신파와 흥건한 피의 파티였다.
자랑스러운 ‘K시리즈’의 피날레를 기대했지만, 결과는 그저 한국판 헝거게임의 변주였다. 심오한 척하지만 결국엔 뻔한 서사의 반복, 잔인함만 덧칠된 새빨간 피날레, 바로 ‘오징어 게임3’(감독 황동혁)이다.
칼을 쥔 자들은 죽여야 살고, 열쇠를 쥔 자들은 꼭꼭 숨거나 탈출해야 산다. 별이 빛나는 밤, 다시 펼쳐지는 이 잔인한 숨바꼭질로 시즌3의 문이 열린다.
게임은 점점 더 잔혹 수위를 높여가는 가운데 게임장 밖 답답하고도 엉성한 섬찾기 여행과 긴장감 없는 투표, 게임 하려는 빌런 팀과 이젠 멈추고 싶은 신파 팀의 평행선은 그대로다. 그나마 시즌2에는 이병헌의 투입으로 새로운 긴장감과 연기 관람의 재미라도 있었지만, 이번엔 그조차 없다. 몇 안 되는 장면에서도 그의 존재감은 압도적이지만 너무도 적다.(이정재의 과잉 연기는 계속된다. 물론 당신의 탓만은 아니다.) 볼거리를 찾는 일이야 말로 고난이도 숨바꼭질이다.
캐릭터들의 서사도, 이야기 전체의 흐름도, 연대와 갈등도, 예상한 대로 흘러간다. 애초에 정해진 결말이라고 해도, 그 과정이 지나치게 뻔하다. 피·땀·눈물의 무한 반복.
캐릭터들의 힘도 빠졌다. 대환장 파티 속에서 아이를 낳고 뒤늦게 모성 본능 치솟는 참가자, 그의 곁을 지키는 희생적인 참가자, 부성과 욕망을 오가며 계속 망가져 가는 참가자, 목숨 걸고 게임을 멈추려는 이들과 목숨 바쳐 끝까지 상금을 쟁취하려는 자들, 이 쇼를 매번 즐기는 VIP들과 기계 같은 실무자들, 그리고 절망을 딛고 ‘개가 아닌 사람이길 증명하려’ 다시 일어서는 전 우승자까지.
주인공 외 인물들을 양으로 승부한 탓에 선택과 집중이 없다. 그로 인해 누군가 죽거나 혹은 살거나, 어떤 선택의 기로에 놓였을 때도 몰입도가 떨어진다. 각각의 생명력이 미약하니 감흥이 없다. 얕은 관계성, 진부한 사연, 획일화 된 구성의 한계가 여실이 드러난다.
이곳저곳에선 더 치열한 싸움이 벌어진다. 피의 향연이 펼쳐지지만, 감정은 움직이지 않는다. 조롱, 방관, 선택, 생존이라는 구조 속에 긴장도, 슬픔도, 분노도 없다. 역대 시즌 가운데 가장 존재감 없는 음악은 또 어떻고.
시즌이 거듭될수록 더 깊은 서사나 충격적 반전이 나올 법하지만, 알맹이는 끝내 등장하지 않는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인간 본연의 감정만 반복적으로 건드릴 뿐이다. 지루하고 평면적으로. 말 그대로, 그들만의 피날레, ‘사람은...’의 늪에 빠진 메가폰에 취한 결말이다.
미국판 제작을 의식한 엔딩 오브 엔딩은 작위적이고도 억지스러운 군더더기 같다. 미세하게 남은 여운마저 앗아가는, 그 놈의 ‘○ △ □’, 세련됨이란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마무리다.
...(중략)...
지난 ‘시즌2’ 공개 후 국내 반응이 극명하게 엇갈리자, 아니 혹평이 주를 이루자, 황 감독은 “고향이 더 매섭다”며 서운함을 토로했다. 때마다 나오는 신상, 그저 짧고 굵게 즐기고 흘러 넘기면 그만인 걸, 고향이기에 더 뜨겁게 응원했다. 그래서 더 실망했다. 각종 논란을 우려하며 열심히 비평했던 대중의 목소리를 외면한, 그 결과는 마치 작품 속 누군가를 떠올리게 한다. 의미있는 질문이 아닌, 화려한 수치와 두둑한 상금만 남겼다.
추신, 스핀오프는 넣어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