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동 감독은 새 영화 ‘가능한 사랑’을 준비 중이다. 배우 설경구 전도연 조인성 조여정 등이 참여한다. 영화진흥위원회 ‘중예산 한국 영화 제작 지원’ 사업에 선정돼 15억 원을 지원 받기로 돼 있었다. 해외 선판매가 잘되기도 했다. 당초 예상 제작비는 80억 원 아래였다.
이 감독은 국내 대형 투자배급사에 투자를 타진했으나 난색을 표했다고 한다. 배우 양해를 구해 출연료를 크게 낮췄는데도 손사래를 쳤다는 후문이다. 상업성은 떨어져도 빛나는 이력을 지닌 유명 감독이 해외 판매와 기관 지원금을 확보하고도 국내 투자사의 외면을 받은 것이다. 투자를 못 받자 영화진흥위원회 지원금은 자진 철회했다. “지금 한국 영화의 냉혹한 현실”이라는 말이 영화업계에서 나온다.
극장은 어떤가. 공포영화나 마찬가지다. 올해 들어 관객이 급감했다. 관객 500만 명 정도까지 기대했던 ‘미션 임파서블: 파이널 레코닝’은 300만 명대 초반에서 퇴장할 듯하다. 관객 호평이 쏟아지는 한국 영화 ‘하이파이브’는 예상보다 못한 흥행 성적(12일 기준 127만 명)을 기록 중이다. “극장에서 만난 관객 반응은 예전 300만 명 정도 분위기”라는 관계자 말이 씁쓸하다.
한국 영화는 지금 ‘빙하기’를 겪고 있다. 극장 관객이 감소하니 투자사와 제작사에 돈이 돌 리 없다. 돈이 없으니 투자도 제작도 이뤄지지 못한다. 불황의 악순환 고리에 갇혔다. 한 중견 제작자에 따르면 요즘 국내 투자사는 제작비 30억 원 이하 또는 200억~300억 원 이상 영화에만 투자할 생각이 있다고 한다. 저예산 영화 또는 덩치로 흥행을 밀어붙일 수 있는 영화에만 지갑을 연다는 거다.
넷플릭스 같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가 대안이 되기는 어렵다. 대다수 OTT는 수익을 나누지 않는다. 제작 수수료 정도만 제작사에 지급한다. 넷플릭스의 경우 제작비의 10~20%였던 수수료가 한 자릿수로 떨어진 지 오래다. 너도나도 넷플릭스에 몰려가서다. 아무리 많은 제작비가 들어간 영화를 만들어도 ‘납품’하고 나면 손에 쥐는 돈은 얼마 없다는 푸념이 영화계에서 나온다.
만나는 영화인들 대부분은 한숨을 쉰다. 언제까지 불황이 이어질 지, 어떻게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지 우려한다. 해법에 대해선 의견이 엇갈리나 기대는 동일하다. 새 정부가 획기적 제도 개선과 파격적 지원을 해주기를 원한다. 돈가뭄에 시달리는 영화산업에 대한 지원 바람이 가장 크다.
한국 영화는 K컬처의 선봉이다. 한국 영화가 무너지면 K컬처가 흔들린다.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 공약집에서 K컬처 매출 300조 원 시대를 열겠다고 확언했다. 투자 없는 실적은 드물다. 정부가 나서서 영화계에 돈이 들어오고 돌게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