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기사/뉴스 [윤나애의 녹색 미술관] 식탐의 흔적
10,604 5
2025.05.27 01:04
10,604 5

ZrDXZJ

[문화매거진=윤나애 작가] 학생들을 가르치다 보면 미취학 아이들이 공룡과 화석에 꽤나 큰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그런지 나도 어린 친구들과 미술 놀이를 할 때 즐겨했던 수업 중 하나가 ‘화석 놀이’였다. 아이들은 점토에 공룡 피규어 발자국을 찍어 굳히기도 하고 뼈 모양을 만들어 색칠해보기도 하면서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과거의 생물을 상상했다. 

그 모습에서 나는 화석이 단순한 과거의 유물이 아닌 세대와 세대를 잇는 흥미로운 매개체임을 느낄 수 있었다. 화석은 시간을 초월한 기록이다. 이미 사라진 생물의 존재와 그 시대의 기후, 그리고 환경까지 오늘의 우리에게 전해주는 증언자다. 문득 이런 궁금증도 생긴다. 먼 미래의 아이들은 어떤 화석을 보고 지금 우리의 시대를 상상할까?

환경학자들은 이미 그 답을 내놓았다. 대량 사육된 닭의 뼈와 플라스틱 조각이 바로 그것이다. 이는 인간이 지구의 생태계와 지질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인류세(Anthropocene)’의 상징이다. 고생대, 중생대, 신생대 등으로 구별되던 지구의 시대는 자연이 주체였고 그 자연의 변화에 따라 수천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지층은 천천히 흔적을 남겼다. 하지만 인류세人類世, 이 시대는 자연이 아닌 인간이 주체가 되어 환경에 영향을 끼친다. 인간 활동에 따라 그 속도도 급변할 수 있다. 자연퇴적물이 쌓였던 지층의 흔적과 달리 인류세의 시기에는 닭 뼈와 플라스틱이 지층에 흔적을 남길 것이다.

닭 뼈 화석은 대량사육을 의미한다. 작고 약한 닭 뼈는 본래 화석이 되기 어렵다. 하지만 259억 마리에 달하는 사육계들은 몇백만 마리에 불과한 자연 상태에 비해 너무도 많아 결국 지층에 남을 수밖에 없다고 한다. 인간의 야식이 지구의 지층에 도장을 찍는 것이다.

살기 위해 직접 사냥해서 먹던 시절은 지났다. 우리는 이제 배고프지 않아도 먹는다. 시간에 맞춰 먹고, 기분에 따라 먹는다.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혹은 그저 입이 심심해서 먹는다. 식사는 생존이 아니라 위로이고 쾌락이자 소비가 되어버렸다. 

이 시점에서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 1881-1973)의 ‘맹인의 식사(The Blind Man's Meal, 1903)’가 떠오른다. 나는 피카소 삶의 화려함과 대비되는 청색시대 작품들을 좋아하는데, 이 작품 또한 청색시대에 그려진 그림이다. 

피카소는 어릴 적부터 천재로 유명했다. 그의 유년 시절 작품들은 큐비즘으로만 피카소를 접한 사람들에게 놀라움을 선사해줄 수 있을 정도로 완성도가 높다. 미술학교 입학도 빨랐고 유명해지는 데도 오래 걸리지 않았다. 큐비즘은 20세기 미술사의 판도를 바꾸었으며 세계적인 명성을 누리며 평생 최고 예술가의 삶을 살았다. 청색시대는 그의 화려한 이력 속 그림자 같은 시기다. 친한 친구의 죽음으로 피카소는 깊은 슬픔을 느꼈고 그 감정을 푸른빛으로 표현했다. 그의 고통은 예술로 승화되어 청색시대를 지나고 장밋빛 시대와 큐비즘을 거쳐 더 넓은 세계에 도달했다. 

‘맹인의 식사’는 작품을 살펴볼수록 조용한 슬픔이 가슴을 친다. 그림 속 맹인은 어둠 속에서 빵과 포도주를 더듬는다. 앞이 보이지 않지만 그는 먹어야만 한다. 음식을 바라볼 수 없고 즐길 수도 없다. 먹는다는 것은 단지 살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일 뿐이다. 절제된 색감, 텅 빈 배경, 말 없는 인물. 모든 것이 생존 그 자체에 집중되어 있다. 이 작품과 지금 우리의 현실은 얼마나 큰 차이를 보이는가? 우리는 넘치는 음식 속에서 과식하며 죄책감도 없고 매일 버리는 일회용 플라스틱과 음식물 쓰레기로 미래의 지층을 채운다. 한 조각 빵을 간절히 원하던 맹인과 달리 우리는 너무 쉽게 먹고 너무 많이 버린다.

우리는 정말 생존을 위해서 먹는가? 아니면 채워지지 않는 욕망을 위해 먹는가. 필요 이상으로 넘치는 식탁은 더 많은 생산과 사육을 요구한다. 소, 돼지, 닭을 키우기 위해 쏟아붓는 물과 사료, 배출되는 메탄과 이산화탄소, 깎여나가는 숲, 오염된 땅과 물 등등. 지구는 그 대가를 치르게 된다. 쓸데없이 많이 먹는 인간의 습관이 생태계를 무너뜨리는 시작점이 된 것이다.

https://www.munwhamagazine.co.kr/news/articleView.html?idxno=4200

목록 스크랩 (2)
댓글 5
댓글 더 보기
새 댓글 확인하기

번호 카테고리 제목 날짜 조회
이벤트 공지 💙니베아X더쿠💙 니베아 선 프로텍트 앤 라이트 필 선세럼 체험단 30인 모집 66 00:05 1,412
공지 [공지] 언금 공지 해제 24.12.06 5,140,648
공지 📢📢【매우중요】 비밀번호 변경 권장 (현재 팝업 알림중) 24.04.09 12,359,686
공지 공지가 길다면 한번씩 눌러서 읽어주시면 됩니다. 23.11.01 13,113,828
공지 ◤더쿠 이용 규칙◢ [스퀘어 정치글은 정치 카테고리에] 20.04.29 35,652,143
공지 정치 [스퀘어게시판 정치 카테고리 추가 및 정치 제외 기능 추가] 25.07.22 1,111,737
공지 정보 더쿠 모바일에서 유튜브 링크 올릴때 주의할 점 785 21.08.23 8,565,656
공지 정보 나는 더쿠에서 움짤을 한 번이라도 올려본 적이 있다 🙋‍♀️ 270 20.09.29 7,468,957
공지 팁/유용/추천 더쿠에 쉽게 동영상을 올려보자 ! 3619 20.05.17 8,680,601
공지 팁/유용/추천 슬기로운 더쿠생활 : 더쿠 이용팁 4020 20.04.30 8,570,949
공지 팁/유용/추천 ◤스퀘어 공지◢ [9. 스퀘어 저격판 사용 금지(무통보 차단임)] 1236 18.08.31 14,520,631
모든 공지 확인하기()
3059407 이슈 7년 전 포켓몬 카드를 중고나라에서 15만원에 팔았던 사람 13 02:41 1,802
3059406 유머 머리 자르고 일남력 MAX된 어떤 남돌...jpg 2 02:38 1,196
3059405 유머 엔믹스 해원 레드레드 반응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twt 3 02:36 785
3059404 이슈 진수는 어버이날 선물로 뭐 준비했어? 6 02:27 1,754
3059403 기사/뉴스 어린이날 흉기로 아내 위협하고 6살 아들 밀친 50대 검거 5 02:26 501
3059402 유머 고여서 썩어버린 과정을 지나 이제 경이로운 단계에 이르렀다는 요즘 겟앰프드 유저들 수준 7 02:16 900
3059401 정치 코엑스급 복합시설 만든다더니...서울시장 바뀌고 사라진 공동체 4 02:16 820
3059400 이슈 어제 하루종일 트위터 뒤집어 놓은 아이들 토론 영상 80 02:15 4,790
3059399 정치 정청래 리스크라고 아예 못 박은 외신 11 02:10 1,095
3059398 정보 여행가서 살인 당할 뻔한 썰..(주의) 11 02:08 2,048
3059397 유머 배우 이민정도 도전한 갸루메이크업(⚗‿⚗ ✿) 15 02:03 1,638
3059396 이슈 서른이 넘기 전에 02:00 733
3059395 이슈 존나 황당 ㅋㅋㅋㅋ 4 01:59 1,144
3059394 유머 이번앨범 퍼포디렉이랑 작사까지 참여한 이채연.jpg 1 01:58 335
3059393 이슈 5세대돌 앞에서 개큰 무리하는 효연sbn과 대선배 앞에서 웃참하는 베이비몬스터.. 5 01:55 858
3059392 이슈 권고사직 당한 서른 중반 현실 26 01:49 5,159
3059391 기사/뉴스 신혜선, 최근 가족 여행 "공기랑 다녀온 느낌" (유퀴즈) 6 01:48 1,344
3059390 기사/뉴스 "기저귀에 소변 봐서"…3살 아들 '돌침대'에 던져 숨지게 한 20대 친부 21 01:46 1,253
3059389 이슈 96세가 되었다는 마이클 잭슨 어머니 캐서린 잭슨 (자넷 잭슨 인스타) 3 01:46 1,842
3059388 이슈 3살 아이를 세탁기에 넣고 돌린 계부... 1년 8개월동안 교화가 될까? 5 01:45 4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