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2년 1월, 청와대에서 진행한 신년 인사회의 신스틸러는 ‘푸른 호랑이’였다. 문재인 전 대통령의 등 뒤를 총천연색 호랑이가 꽉 채워 눈길을 끌었다. 해당 작품은 한국 현대 미술계의 거장 12명 중 1명으로 선정된 고상우(47) 작가의 2019년작 ‘운명’ 이었다.
검은 호랑이의 해에 걸맞은 신년 행사는 성공적으로 마무리됐지만 고 작가는 생각지 못한 수난을 겪게 됐다. 9개월 뒤 ‘운명’과 너무나 비슷한 벽화가 경북 안동의 한 초대형 카페에 전시됐기 때문이다. 컬레버 작업으로 착각한 이가 많았지만 고 작가는 벽화를 그린 적도, 이미지 사용을 허락한 적도 없었다.
표절 시비가 붙었다. 벽화를 그린 A 작가는 “영감을 받았을 뿐 표절은 절대 아니다”고 반박했다. 작업을 의뢰한 카페의 B 대표도 “A작가에게 의뢰했을 뿐”이라며 모르쇠로 일관했다. 이들은 한국저작권위원회의 조정 참석 요청에도 응하지 않았다. 결국 사건은 법적 공방으로 번졌다
2022년 7월 고 작가는 한 카페 측에서 이메일을 받았다. ‘운명’ 작품을 벽화로 그려도 되겠냐는 취지였다. 메일에는 감정에 호소하는 내용도 있었다. “작가님의 인종차별 경험을 작품으로 승화한 호랑이를 벽화로 남기고 싶다”며 “인근에서 일하는 동남아시아 이주 여성 노동자들과 카페를 활성화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고 작가가 알아본 결과 실제 카페 운영의 목적은 공익과 거리가 멀었다. 해당 카페는 경북 안동 최대 규모의 베이커리 카페로 동남아 이주 여성과 전혀 상관이 없었다. 유명 작품으로 포토존을 만들어 수익을 창출하기 위한 것임을 눈치챈 고 작가는 요청을 거절했다.
고 작가는 “다문화 가정을 위한 카페라면 진행할 의사가 있지만 개인 상업시설이라면 사용하지 말라”며 “원작의 이미지를 변형해 사용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고 답장을 보냈다. 카페 측에서는 “다른 작품으로 하기로 결정했다”고 회신했다. 하지만 몇 개월 뒤 갈등이 시작됐다.
1심 결과는 이례적인 유죄였다. 법원은 단순 벌금형이 아니라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저작권법 위반 혐의로 징역형 이상이 선고되는 일은 드물다. 법조계에 따르면 1심을 맡은 대구지법 안동지원 형사1단독 손영언 부장판사는 A작가와 B대표에게 각각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1심 재판부는 “피해자의 작품은 다른 미술작품에선 흔히 볼 수 없는 색상 및 배치를 사용해 자신만의 창작적 개성을 반영해 호랑이 얼굴을 표현한 것”이라며 “다른 저작자의 기본 작품과 구별할 수 있을 정도의 특성이 부여돼 저작권법에 의해 보호되는 저작물에 해당한다”고 전제했다.
이어 “A작가가 피해자의 작품을 표절한 게 맞다”며 “해당 벽화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커다란 호랑이 얼굴 부분은 피해자의 작품과 동일하거나 매우 유사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