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매거진 정영진 기자] 대도시의 심장부가 꺼지고 있다. 서울, 부산, 대구, 광주… 거대한 도시들은 오늘도 붕괴 직전의 지반 위에 서 있다. 매년 190건 이상 발생하는 도로 침하 사고. 하지만 대부분 시민들은 무심코 걷는다. 씽크홀은 예고 없이 나타나 삶을 위협한다. 우리는 지금, 안전 위의 모래성을 밟고 서 있다.
도심을 삼킨 검은 구멍, ‘싱크홀’…침묵 속 재난이 현실이 되다
지난 2024년과 올해 초, 서울과 부산의 한복판에서 갑작스럽게 땅이 꺼지는 ‘싱크홀’ 사고가 잇따라 발생했다. 마치 도심이 스스로 입을 벌려 삼켜버린 듯한 이 장면은 시민들에게 충격을 안겼고, 이는 더 이상 낯선 광경이 아니다. 도로 한복판에서 차량이 순식간에 꺼지고, 사람이 빠질 정도의 규모라면 그것은 단순한 도로 손상이 아니라 ‘도시의 경고’라 봐야 한다.
국토교통부와 소방청의 통계에 따르면 2019년부터 2023년까지 전국에서 발생한 도로 침하, 즉 싱크홀 사고는 총 957건에 달한다. 단순 계산으로도 매주 3건 가까운 싱크홀이 발생한 셈이다. 그중에서도 인구 밀집지역인 서울과 부산은 집중 발생 지역이다. 실제로 2024년 부산 해운대 도심 한복판에 대형 싱크홀이 생기며 지나가던 차량이 함몰돼 2명이 부상했고, 2025년 초 서울 마포에서도 도로 일부가 꺼지며 긴급 통제가 이뤄졌다.
이런 사고는 단순히 물리적인 피해를 넘어 시민의 일상과 안전을 위협하며 사회적 불안을 증폭시키고 있다. 싱크홀은 자연현상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 이면에는 도시 기반시설의 노후화, 무리한 지하 개발, 부실시공 등 인간이 만든 요인들이 도사리고 있다. 특히 노후 하수관로의 파손, 상수도 누수, 무분별한 지하 굴착공사 등은 도로 밑의 지반을 약화시키는 핵심 원인이다. 전문가들은 “싱크홀은 도시가 스스로 무너지고 있다는 신호”라며 “지하 인프라에 대한 체계적 관리와 조기 경보 시스템 마련이 시급하다”고 경고했다.
예고 없이 나타나 인명까지 위협하는 싱크홀은 이제 단순한 자연현상을 넘어서 ‘사회적 재난’으로 규정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실제로 일부 지자체는 싱크홀 위험 지역에 대한 정밀 탐사를 확대하고, 지반 정보 지도를 제작해 실시간 모니터링을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여전히 사각지대가 많다는 점이다. 예산 부족과 관련 부서 간 협업 부족으로 인해 일부 지역은 여전히 위험에 방치돼 있는 상황이다.
지하의 물이 흔들리면, 도시가 무너진다
싱크홀은 단순한 지반 침하가 아니다. 지하수의 흐름이 바뀌거나, 지하 구조물이 파손되거나, 과도한 개발이 반복될 때 지하의 빈 공간이 커지면서 결국 지표면이 붕괴된다. 특히 한국처럼 석회암 지형이 드문 지역에서는 자연적 원인보다 인위적 요인이 지반 붕괴에 더 큰 영향을 준다. 지하수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지반의 균형을 좌우한다. 도심의 고밀도 개발로 인해 지하수가 빠르게 유출되면 지반이 점차 약해진다. 여기에 무분별한 공사, 굴착, 노후한 인프라까지 겹치면 작은 균열이 대형 사고로 이어진다.
강동구 명일동의 경우 인근에서 지하철 9호선 연장 공사가 이뤄지고 있다. 둔촌동 중앙보훈병원역에서 명일동을 거쳐 샘터공원역까지 연결하는 공사다.
소방 관계자는 3월 24일 “공사장과 싱크홀이 연결되어 있다”며 “공사장 차원에서 물을 빼는 작업을 하고 있으며 소방도 투입돼 장비를 넣어 작업할 지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이와 함께 노후화 된 상수도관과 서울세종고속도로 지하 구간 공사 등이 원인이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지하 공사 시 지하수를 빼내면서 연약한 토사물이 유입되고, 이로 인해 전체적인 지반이 약해지면서 침하했을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부산에서는 폭우 이후 도심 한가운데 지름 10m, 깊이 8m의 싱크홀이 발생했다. 사고 원인은 노후 하수관의 붕괴였다. 수십 년간 방치된 하수 인프라가 무너진 것이다. 부산시는 즉시 복구작업에 착수했지만, 사고는 이미 도심의 불안정을 증명하고 있었다.
기후변화도 무시할 수 없다. 최근 들어 극단적인 강수량이 자주 발생하면서, 지반에 가해지는 수압과 침투력이 예전보다 훨씬 강해졌다. 하수관이나 지하 시설이 이를 버티지 못하면, 땅속에 빈 공간이 생기고 그 위로 차량이나 보행자가 지나갈 때 대형 싱크홀이 발생한다.
2014년, 강원도 철원에서는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진 직후 주택가 도로가 붕괴되며 지름 6m, 깊이 4m의 싱크홀이 발생했다. 당시 지하수가 급격히 상승하면서 땅속 구조물이 침식되었고, 침하된 땅은 주민이 이동하던 골목 한복판을 집어삼켰다. 자연재해와 인프라 취약성이 겹친 사고였다. 2020년 태풍 ‘하이선’이 한반도를 관통했을 당시 경북 울진 지역에서도 급속한 강수로 지반이 약화되어 공사 중이던 도로가 통째로 무너진 사고가 발생했다. 당시 지역 주민들은 “폭우로 인한 배수 불량과 지반 약화가 반복되며 이미 위험 신호가 있었다”고 토로했다. 하지만 사전 조치는 미비했다.
인재로 인한 사고도 심각하다. 2018년, 서울 서초구의 한 도로에서 지름 1.5m의 싱크홀이 발생했는데, 이는 인근 지하철 공사 과정에서 지반 보강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안전 점검 보고서에는 균열 가능성이 이미 언급되어 있었지만, 시공사와 발주처는 서로 책임을 미뤘다. 그 결과, 퇴근길 차량 한 대가 땅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같은 해, 인천 남동구에서는 대형마트 앞 보도에 깊이 3m의 싱크홀이 생겼다. 사고 원인은 인근 오수관로 파손으로 추정됐다. 해당 배관은 30년 넘게 교체되지 않았고, 정기적인 점검 대상에서도 제외돼 있었다. 지나가던 행인이 발을 헛디뎌 추락했고, 다행히 큰 부상은 없었지만 사고 가능성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었다.
더불어 도시화는 하늘과 땅을 모두 뒤흔들고 있다. 고층 빌딩, 지하철, 고속도로 등 대형 인프라가 지하 공간을 복잡하게 만들면서, 지반의 일관성과 안전성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복합적 요소가 서로 얽혀 있다는 점이다.
대전의 한 신도시 개발지역에서는 민간 건설사가 고층 아파트 공사를 진행하면서, 인근 도로에서 연쇄적인 침하 현상이 발생했다. 전문가들은 초기 설계 단계에서 지반의 수분 흐름까지 고려하지 않은 탓에 주변 지하수가 빠르게 고갈됐고, 그 영향으로 도로 밑에 빈 공간이 생겼다고 분석했다. 싱크홀은 단순한 복구로 해결되지 않는다. 지하수 흐름의 실시간 모니터링, 노후 인프라의 선제적 교체, 공사 전 지반 조사와 보강 의무화 등, 예방을 위한 설계와 시스템 구축이 절실하다. 지하 시설물의 전수조사와 데이터 기반 예측 시스템 도입 역시 필요하다.
지금도 땅은 아래서부터 무너지고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지하의 위험을 외면하면, 도시의 안전은 그 자체로 위태로워질 수밖에 없다. 싱크홀은 ‘갑작스러운 재난’이 아니다. 우리 사회가 방치한 구조적 문제의 결과다.
...
전문은 출처로
https://www.sisamagazine.co.kr/news/articleView.html?idxno=5128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