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숨 가쁜 시간을 지나온 사람은 누구나 그렇듯 그 발자취를 뒤돌아보고, 그 속에서 품었던 열정과 노력에 관하여, 그리고 열정만으로 다할 수 없었던 좌절과 시련에 관하여 누군가에게 이야기하고픈 염원을 품게 마련입니다.
12·3 비상계엄 선포 이후 공수처는 가능한 모든 인력을 투입하여 불법 비상계엄으로 인한 내란 및 직권남용 혐의 수사에 총력을 기울였습니다.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는 마치 바다 위 흔들리는 배가 거센 비바람을 헤치며 거친 파도를 넘어가는 것과 같습니다. 공수처라는 배의 키를 잡은 선장으로서 현직 대통령 수사를 위해 고군분투하며 느낀 어려움에 관하여 적고자 합니다.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법원의 구속취소 결정과 이에 대한 검찰의 즉시항고 포기 사태를 겪으면서, 공수처는 수사 과정에서의 어려움에 더하여 수사권과 기소권의 불일치에서 오는 큰 시련을 겪었습니다. 공수처법은 공수처에 대통령, 국회의원, 여러 부처의 정무직 공무원, 판·검사, 도지사 등 고위공직자의 직무범죄에 대한 수사권을 부여하면서도 기소 대상은 판·검사 및 고위직 경찰공무원으로 제한하고 있습니다. 권력기관 견제 목적으로 공수처가 설립되었는데, 기소 여부 및 공소 유지 업무를 검찰에 맡겨서는 권력기관 견제라는 본연의 업무를 효율적으로 완수하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고위공직자의 부패범죄에 대한 엄정한 수사를 통한 공직사회 부패 척결’이라는 시대적 과업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기소권의 범위를 넓혀 공수처가 수사한 고위공직자범죄에 대하여 공수처 검사가 기소할 수 있도록 하는 공수처법의 개정이 매우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공수처가 겪고 있는 또 다른 어려움은 ‘관련범죄’ 규정이 매우 제한적이라는 것입니다. 공수처법 제2조 제4호 라.목은 “고위공직자범죄 수사 과정에서 인지한 그 고위공직자범죄와 직접 관련성이 있는 죄로서 해당 고위공직자가 범한 죄”를 관련범죄의 하나로 정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해당 고위공직자가 범한 죄’라는 부분입니다. 예를 들어 불법 비상계엄 사건에서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와 관계없이 내란죄만을 실행한 공범은 공수처가 수사권을 갖는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의 ‘관련’범죄인 내란죄의 ‘관련’사건에 해당하여 공수처의 수사 대상이 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관련범죄를 규정함에 있어 ‘해당 고위공직자가 범한 죄’라는 제한을 삭제하고 관련범죄라는 용어 자체의 의미에 부합하도록 “고위공직자범죄와 직접 관련성이 있는 범죄”로 개정하여 효율적인 수사가 이루어지도록 할 필요가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수사 현장에서 느끼는 어려움은 인력 부족과 신분 불안의 문제입니다. 공수처 검사의 임기는 3년이고 3회에 한하여 연임할 수 있게 되어 있는데(최장 12년 근무), 2024년 8월 13일 공수처 인사위원회의 만장일치로 공수처 검사 4명의 연임이 의결되었음에도 대통령이 임기 만료를 53시간 남겨놓은 2024년 10월 25일이 되어서야 연임을 재가한 예에서 보듯이, 공수처는 검사 연임에 있어 대통령의 인사권에서 전혀 자유롭지 못합니다. 이는 독립기관인 공수처의 위상에 맞지 않습니다.
한편, 처·차장을 제외하면 현재 재직 중인 공수처 검사는 총 12명(공수처법상 검사 정원 25명)으로 턱없이 부족한 실정입니다. 공수처는 신임 검사 7명의 채용 절차를 마치고 2024년 9월(3명), 2025년 1월(4명) 임명 제청하였으나 아직 임명 절차가 이루어지지 않아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대통령의 임명 절차가 신속하게 이루어지지 않을 때는 수사에 차질을 빚게 되고 독립기관의 위상이 흔들리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외압이나 신분 불안 등의 문제없이 뛰어난 인재들이 고위공직자의 부패 청산이라는 시대적 요구에 헌신할 수 있도록 임기 제한의 폐지와 검사의 정원 확대가 절실합니다.
적절한 견제장치도 마련되어야 하겠지만, 공수처가 본연의 기능을 다하기 위해서는 위와 같은 제도 개선이 꼭 이루어져야 합니다.
공수처가 국민의 신뢰를 받는 기관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정치적 중립을 지키며, 권력기관 견제·고위공직자 부패범죄 일소라는 기관 설립 목적을 이루어내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더불어 오랜 염원 끝에 힘겹게 탄생한 공수처라는 배가 거친 파도를 넘어 목적지까지 무사히 항해하기 위해서는 국민의 지지와 격려가 꼭 필요합니다.
오동운 공수처장
https://www.lawtimes.co.kr/news/2073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