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항공 참사 유가족들과 읍내로 나가는 길이었다. 아내와 외동딸, 사위, 손주 둘을 모두 잃은 유가족이 운전을 하고, 나는 조수석에 앉아 긴장하고 있었다. 창밖을 보다가 나도 모르게 “꽃이 피었네”라고 중얼거렸다. 서울에서는 목련이 겨우 필 때라 봄꽃들이 낯설었다.
그때 운전석에 앉은 박인욱씨가 말했다. “꽃이… 보이요?” 서운해하거나 타박하는 말투가 아니었다. 정말로 그의 눈에는 사방에 핀 벚꽃이 눈에 하나도 들어오지 않는다는 걸, 그의 깜짝 놀란 듯한 말투로 깨달았다. 아차 싶었다. “서울에는 꽃이 아직 안 피어서요, 저도 모르게 깜짝 놀라서 말해버렸네요.” 횡설수설 수습하려 했지만 그는 이미 꽃은 안중에도 없었다.
그제야 봄꽃의 알록달록한 색이 눈에 들어왔는지 그는 갑자기 캐리어 이야기를 꺼냈다. “처제가 묻는 거야. 언니가 가져간 캐리어 색이 뭐냐고. 그런데 도무지 기억이 안 나. 각시가 무슨 가방을 가져갔는지도 모르더라고. 하기야, 서방이라는 사람이 각시가 사고난 줄도 모르고 오면 밥 먹인다고 미역국을 끓이고 있었으니.” 운전대를 잡고 있던 그가 한 손으로 눈물을 훔쳤다. “누가 그 상황에서 캐리어 색을 기억하겠어요. 다들 황망한데요.” 겨우 쥐어짜낸 위로의 말이 열린 창문 밖으로 허망하게 흩어졌다.
그날 밤, 숙소에 돌아와도 내내 그 한 문장이 떠올랐다. 꽃이 보이요? 꽃이, 보이요? 꽃이··· 보이요? 머릿속에서 그 한 문장은 길게 늘어났다. 꽃이 어디에 있소? 정말 꽃이 핀 게 맞소? 당신의 눈에는 꽃이 들어오는갑소···.
물론 안다. 유가족의 슬픔을 모두 이해하기는 불가능하다는 걸, 애초에 기자가 그 선을 넘어서도 안 된다는 걸. 하지만 누군가의 눈에는 당연히 보이는 봄꽃도 누군가의 눈에는 당연히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몇 번을 곱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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