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수의 노예들은 여성들을 가사노동으로부터 해방시켜주었다. 그래서 로마 제정기에는 다른 일은 전혀 하지 않고, 오직 미와 쾌락만을 추구하는 귀부인들이 등장하게 되었다. 그들은 온종일 몸치장을 하고 저녁에는 극장, 연회 등에 참석했다. 그러나 더 지적이고 능력 있는 귀부인들은 공허한 향락생활의 추구에 만족하지 않고, 간혹 정치권력을 추구하거나, 대중문화비평가 내지는 작가, 또는 기타 학문을 배우는 생도가 되었다.
아내 지위의 변화에 따라 이혼에도 상당한 변화가 생겼다. 이혼에 대한 남편의 권리는 12표법에 잘 명시되어 있다. 공화정 초기에 이혼은 남편의 특권이었고, 오직 남편만이 일방적으로 이혼을 청구할 수 있었다. 그러나 2세기 중반부터, 아내도 남편에게 이혼을 요구할 권리를 지니게 되었다. 그래서 공화정 말기와 제정기에는 이혼이 일상적 다반사가 되었다.
로마의 남성들은 여성의 부와 권력이 비대해지자 분통을 터뜨렸다. 로마의 남성들은 돈 있고 배웠다고 잘난 체 하는 여성들에게 상당한 반감을 품고 있었다. 그들은 걸핏하면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려 들고, 남자를 곤경에 빠뜨릴지도 모른다며 똑똑하고 주체적인 신세대 여성들을 자기 집안에 맞아들이길 거부했다.
이처럼 새로이 해방된 여성들의 영리함은 독신가구 증가라는 결과를 낳았다. 주된 요인은 가족적 이상의 점진적 후퇴와 또 정복전쟁에 따른 커다란 휴유증, 즉 광범위한 기존 윤리적 가치들의 붕괴현상 때문이었다. 혼인율의 하락과 마찬가지로 출생률의 감소 역시 로마제국이 안고 있는 커다란 사회문제 중 하나였다.
참고로 같은시대 우리나라 고조선 ~ 부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