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이슈 '성폭행 가해자'의 장례식 기사를, 대체 왜 써야 하는가?
4,055 19
2025.04.08 22:15
4,055 19
clHUfo


의아하고 의아해, 견디다 못해 혹시 누구라도 이유를 알면 좀 알려달라고, 집단 지성에 기대는 것이기도 하다. 질문은 이거다.

'성폭행 피의자'의 장례식 기사는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가.

내용은 이렇다. 최근 1967년생 장 모 씨가 자살했다. 2015년 11월에 피해자를 성폭행한 혐의로 수사받던 중이었다. 당시 피해자는 장 씨가 추행하는 장면이 담긴 영상을 찍었다. 서울해바라기센터서 성폭행 사실을 알렸고, 응급 키트 채취를 했다. 국립과학수사원 감정 결과, 피해자 특정 부위와 속옷 등에서 남성의 유전자형이 검출됐다.

피해자는 지난 1월 장 씨를 고소했다. 피의자인 장 씨는 모든 혐의를 부인했다. 그리고 지난 1일 밤 11시40분, 서울 강동구 한 오피스텔에서 자살했다.

피해자 시선으로 짐작한다. 그 눈으로 이를 바라본다. 피해자 주장대로 장 씨에게 성폭행당했고, 9년이나 흘렀다면. 장장 3285일이 넘는 시간 동안 어떤 괴로움이 있었을 거며, 그 시간이 흐른 뒤에야, 너무나 어렵게 고소할 수 있었다면 말이다. 이제야 죗값을 물으려 했는데 가해자가 돌연 자살했다면. 어떤 심경일까.

그러나 보도는 누구를 향했는가. 장 씨가 숨졌단 기사들이 쏟아졌다. 어떤 정치인이었으며 누구 아들이었고 어떤 삶을 살았는지에 대한 내용과 함께. 발인식은 어디서 열렸고 아들인 연예인 누가 참석해 추모했으며 울었단 식의 보도가 여과 없이 표출됐다.


수습기자 교육 때 이리 말했었다. 기사를 쓰기 전에, 그걸 왜 쓰는지 생각해달라고. 그게 한 글자라도 기록됨으로 인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뭔가 바꿀 여지가 있는지, 감동이 있는지, 잘 살고 싶게 만드는지, 뭘 예방할 수 있는지, 좋은 정보를 주는지, 하다못해 재미라도 주는 건지.

여기에 하나라도 해당이 안 되면 기사 쓰는 걸 다시 숙고하자고.

성폭행 가해자건 뭐건 추모할 수 있다. 지인이나 가족은 그럴 수 있다. 그러나 그걸 세상에 알리는 건 전혀 다른 문제다. 성폭행 가해자가 자살해 장례식을 치르는 것에 대한 기록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 함께 추모하자는 건가, 피해자가 보라는 건가, 국민이 알고 싶다고 했나, 심지어 관련 기사 댓글은 거의 다 이랬다.

'이게 뭐지. 무슨 성폭행 피의자 장례식 기사까지 쓰나. 마치 민주 열사 같다.'

5년 전, 2020년 7월. 성추행 혐의로 고소됐던 박 모 씨가 자살했을 때도 염려했었다. 그 역시 장례를 5일장으로 치른다는 둥, 그간 업적이 어떻다는 둥, 피해자를 헤아리지 않는 글들이 너무 나왔다. 서사를 다 배제하고, 딱 관련 사건 보도로만 담아 썼었다. 어떤 성폭력 사건 보도도, 피의자가 자살해 장례를 치른다는 것까지 알리지 않으므로.

그 기사가 나간 뒤 정치적인 의도가 깔린 게 아니냐는 둥, 박 씨 지지자들에게 공격당하기도 했다. 5년이 흐른 뒤 박 씨와 정치적으로 반대 진영에 있는, 피의자 장 씨에 대해 비판하는 이 글을 씀으로 그딴 의도는 전혀 없었음을 밝힐 수 있게 됐다. 지극히 평범한 상식 수준에서 생각할 뿐이다. 단 한 글자의 힘으로 뭔가 바뀌길 바라고, 반복해 좌절할 뿐이다.

실은 이 기사 제목에 대한 이유를 알기에 괴롭다. 써야만 하는 기사였을 거다. 이슈니까, 사람들이 많이 보니까, 조회수가 나오니까, 조회수가 나와야 수익이 되니까, 

그런 기사를 필자 역시 똥같이 많이 써왔음을 고백한다. 나만 깨끗한 척 쓴 글이 아니란 거다. 그보다는 자조(自嘲)에 가깝다. 내가 던진 물음이 내 발등과 몸통을 찍으며 한숨을 쉬는 거다.

그렇다면, 이 글은 또 왜 썼는가. '써야 하는 기사'라며 더는 반복하고 싶지 않아서 썼다. 같이 반성하자고 쓰는 거다. 비슷한 일이 또 생겼을 때, 기사가 나가기 전까지 '작은 방지턱' 하나라도 생겼으면 해서 쓰는 거다. 함께 묻자는 거다. 이걸 씀으로 인해 대체 어떤 의미가 있는 걸까, 그렇게 말이다.

그럼, 방향을 좀 더 나은 쪽으로 돌릴 수 있지 않을까. 이를테면 장 씨는 유서로 추정되는 글에서 이리 남겼다고 했다. '저로 인해 조금이라도 상처받았던 분들이 계신다면 진심으로 용서를 구한다'고.

상처받았던 '분들'이라. 정확히 누굴 지칭하는 건가. 용서는 그리 모호하게 구하는 게 아니지 않을까.

성폭력 사건에서 가해자가 죽으면, 공소권 없음으로 자꾸 종결하면, 그런 식으로 가해자는 계속 피하게 되지 않을까. 가해자 없이도 수사는 계속할 수 있지 않을까. 또한 피해자의 이후 삶은 어떻게 지킬 건가.

아마도 그렇게, 조금 더 중요한 물음을 던질 수 있을 것 같다.

남형도 머니투데이 기자



https://naver.me/xLWw6lpf

목록 스크랩 (1)
댓글 19
댓글 더 보기
새 댓글 확인하기

번호 카테고리 제목 날짜 조회
이벤트 공지 💗라카 X 더쿠💗 립밤+틴트+립글로스가 하나로?! 컬러 장인 라카의 프루티 립 글로셔너 체험단 모집! 878 12.19 64,656
공지 [공지] 언금 공지 해제 24.12.06 4,363,268
공지 📢📢【매우중요】 비밀번호❗❗❗❗ 변경❗❗❗ 권장 (현재 팝업 알림중) 24.04.09 11,072,818
공지 공지가 길다면 한번씩 눌러서 읽어주시면 됩니다. 23.11.01 12,404,105
공지 ◤더쿠 이용 규칙◢ [스퀘어 정치글은 정치 카테고리에] 20.04.29 34,387,234
공지 정치 [스퀘어게시판 정치 카테고리 추가 및 정치 제외 기능 추가] 07.22 1,013,081
공지 정보 더쿠 모바일에서 유튜브 링크 올릴때 주의할 점 781 21.08.23 8,454,380
공지 정보 나는 더쿠에서 움짤을 한 번이라도 올려본 적이 있다 🙋‍♀️ 266 20.09.29 7,382,360
공지 팁/유용/추천 더쿠에 쉽게 동영상을 올려보자 ! 3590 20.05.17 8,579,020
공지 팁/유용/추천 슬기로운 더쿠생활 : 더쿠 이용팁 4012 20.04.30 8,469,417
공지 팁/유용/추천 ◤스퀘어 공지◢ [9. 스퀘어 저격판 사용 금지(무통보 차단임)] 1236 18.08.31 14,287,610
모든 공지 확인하기()
2942626 유머 [유퀴즈] Q: 그리스 로마 12신 중 하나로 긴 금발에 눈부신 외모로 최고의 미남으로 알려진 신은? 23:26 38
2942625 정보 산타추적기 산타 제주도 도착 직전!!!!!!! 5 23:24 313
2942624 유머 🎄🎁팬들에게 반응 좋은 올데프 B+급감성 앨범 메들리 23:22 155
2942623 이슈 6년전 오늘 개봉한, 영화 “캣츠” 2 23:22 69
2942622 이슈 한국 아이돌판 역사상 가장 유명한 팬송 중 하나 10 23:21 822
2942621 이슈 주식만 수천억 금수저 급증 30세 이하 '영앤리치' 누구? 올해 30세 이하 상장사 주식부호 상위 10인 23:20 472
2942620 이슈 어떤 유튜버가 최강록 식당 갔는데 21 23:19 2,739
2942619 이슈 최근까지 언니가 잘할게 밈 제대로 몰라서 극딜당한 여돌 1 23:18 244
2942618 이슈 자컨팀에 무슨일이 있었는지 궁금한 스테이씨 크리스마스 기념 영상 2 23:17 466
2942617 기사/뉴스 박나래·키·입짧은햇님은 왜 '주사이모'를 고소하지 않을까…법적 속내는 4 23:13 905
2942616 이슈 엔시티 위시 We 𝓦𝓲𝓼𝓱 You a Merry Christmas 𐂂 。 *・↟ 3 23:12 159
2942615 유머 경주마 가족사진(경주마) 23:12 146
2942614 이슈 못보던 스타일에 사이버 소녀로 변신한 아이돌 츄 컨포 2 23:11 566
2942613 이슈 지드래곤이 문신하고 엄마한테 듣는 소리....jpg 12 23:11 2,535
2942612 이슈 17년전 오늘 개봉한, 영화 “지구가 멈추는 날” 1 23:11 138
2942611 이슈 아주 작은 크리스마스 요리 23:09 423
2942610 유머 조혜련 금연하고나서 들은 말 7 23:08 2,099
2942609 기사/뉴스 尹 휘하에 있던 김용현, 여인형 근황은? 8 23:08 510
2942608 이슈 영화관 팝콘 근본은 오리지널 vs 카라멜 18 23:08 355
2942607 이슈 11년전 오늘 개봉한, 영화 “숲속으로” 23:08 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