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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구조 개편, 개헌의 1차적 과제일까
우 의장의 개헌 제안은 뜬금없다. 국민은 이제 평온한 일상을 보내던 국민을 상대로 비상계엄을 선포하여 헌정질서를 파괴한 대통령을 파면시키고, 거기에 부역한 동조세력들에게 엄격한 책임을 묻고자 한다. 그런데 갑자기 개헌 논의를 시작하면 헌정질서 파괴세력에 대한 단죄는 순식간에 묻히고 말 것이다. 마치 해방 후 반민족행위자를 처벌하려는 국민적 염원이 물거품이 되었던 것처럼 말이다.
개헌 제안의 대전제부터 틀렸다. 우 의장은 공포스런 12.3비상계엄과 불안했던 탄핵심판 과정을 거치면서 개헌의 시급성에 국민적 공감대가 증폭되었다고 하는데 국민들은 이 정국에서 1차 탄핵소추표결이 불성립되고, 2차 탄핵소추표결이 성공했지만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결정이 지연되자 대통령의 임기를 단축하기 위한 개헌론이 잠시 고개를 들었을 뿐이다.
현행 5년 단임 대통령제에 대한 대안으로 우선 생각해볼 수 있는 개헌안은 4년 중임 대통령제다. 5년 단임제가 4년 중임제로 바뀐다고 정치구조가 바뀌고 제왕적 대통령의 출현을 막을 수 있다는 가정은 섣부르다. 오히려 8년짜리 제왕적 대통령을 가능하게 하는 정치구조를 만들어낼 수 있는 여지도 배제할 수 없다.
대통령중심의 정부형태인 대통령제가 아니라면 의회중심의 정부형태인 의원내각제(내각책임제)나 정부의 권력을 이원화하는 이원집정부제인데 우 의장의 권력구조 개편 개헌 주장을 이런 의미의 제안으로 선해하면 대통령의 헌정질서파괴행위를 막아내며 국회의 수장으로서 갖게 된 자신감의 표현으로 이해될 수도 있다. 하지만 국민은 비상계엄을 신속하게 막아낸 국회에 감사하면서도 여전히 국회에 대한 불신을 완전히 거둔 것은 아니다.
헌법을 개정한다면 우 의장의 주장대로 저출생, 고령화, 양극화와 같은 구조적 위기, 기후위기와 디지털전환 같은 새로운 도전에 마주하는 내용이 우선되어야 한다. 그런데도 개헌을 주장하면서 권력구조 개편을 대통령선거와 동시에 실시하는 1차 개헌의 과제로 제시한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권력구조 개편이 개헌을 제안한 본래의 의도일 뿐이고, 구조적 위기나 새로운 도전은 그저 구실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우 의장은 대통령선거와 함께 1차 개헌을 실시한 뒤 내년에 실시될 지방선거와 함께 2차 개헌을 추진하자고 한다. 이미 현행 헌법에 따라 대통령선거가 실시되어 새로운 대통령이 선출되었는데 새로운 대통령의 동의를 받아 1년만에 거듭된 개헌이 가능하다고 믿는 우 의장의 의도가 의심스럽다. 정작 중요한 개헌의제는 미끼로 던진 채 2차 개헌으로 미루면서 개헌의 주된 목표인 권력구조 개편만 1차 개헌으로 신속하게 해결하려는 의도는 속이 드러날 뿐이다.
우원식 의장, 의원내각제 마음에 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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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원식 국회의장이 6일 서울 여의도 국회 사랑재에서 개헌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 ⓒ 연합뉴스 |
비상계엄이 헌법의 잘못이 아니라면서도 비상계엄 사태를 막기 위하여 헌법을 개정하자는 주장은 무슨 의미인가? 대통령의 비상계엄선포권이 남용될 수 있다면 헌법을 개정하여 비상계엄선포의 요건을 지금보다 더욱 엄격하게 제한하면 될 일이지 권력구조개편은 생뚱맞다. 비상계엄 해제요구를 위한 절차에서 국회의장이 담장까지 넘으며 보여주었던 눈부신 활약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혹시나 국회의장은 다른 꿈을 꾸고 있는 것은 아닐까? 현행 헌법에 따른 대통령선거로 대통령 당선이 유력해 보이는 어떤 후보를 벌써부터 견제하는 것은 아닐까?
국회의장은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작동하는 "국민주권, 국민통합 개헌"을 제안했다. 국민주권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권력의 분산이 필요하고, 국민통합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협치와 협력의 실효적 제도화가 요구된다고 주장한다. 우 의장은 아무래도 의회중심의 의원내각제를 권력구조로 염두해 두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국회의장은 의원내각제에서 수상이나 총리의 지위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모르고 그런 주장을 할 리도 없으므로 의원내각제를 마음에 둔 국회의장의 권력구조 개편 개헌 주장은 신중할 필요가 있다.
우 의장의 주장대로 개헌논의는 모든 국가의제를 흡수해 버리는 블랙홀이 될 개연성이 높다. 그런데도 지금 당장 헌정질서 파괴세력을 단죄해야 하는 과제보다 그러한 과제마저 망각하게 만들 수 있는 개헌논의가 우선적 과제라고 주장하는 의도가 당연히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제 국민과 국회가 조금 더 힘을 모으면 헌정질서 파괴세력을 단죄하는 일이 완성될 수 있을텐데 이런 비상한 시점에 개헌을 제안하는 국회의장의 본심이 궁금해진다.
덧붙이는 글 | 필자는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에서 헌법학 교수로 재직중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