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사건의 평의가 과거 대통령 탄핵심판에 비해 길어진 배경엔 ‘형사소송법상 전문법칙 적용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비상계엄 선포의 위법성에 대해선 이견을 한 줄도 내지 않은 재판관들이 이 문제에 대해선 4명이 보충의견을 낸 것이 이런 관측을 뒷받침한다.
윤 전 대통령 측은 수사기관이 작성한 조서와 국회가 작성한 회의록 등을 탄핵심판의 증거로 채택하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에 헌재는 재판과정에서 ‘형사소송과 탄핵심판은 다르다’며 형사소송법 조항을 완화해 적용할 수 있다는 입장을 일관되게 유지했다.
그런데 김복형·조한창 재판관은 결정문에 “앞으로는 전문법칙을 보다 엄격하게 적용할 필요가 있다”는 보충의견을 적었다. “탄핵심판 절차에 요청되는 신속성과 공정성, 두 가지 충돌되는 가치를 보다 조화시킬 방안을 모색할 시점”이라고도 했다. 반면 이미선·김형두 재판관은 상반되는 보충의견을 남겼다. 이들은 “전문법칙을 엄격하게 적용하면 헌재가 다수의 증인을 채택해 증인신문을 진행해야 하므로 절차의 장기화가 불가피하다”며 탄핵심판에선 법 조항을 보다 유연하게 적용해야 한다고 했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형사소송법 적용 문제를 놓고 김·조 재판관과 나머지 6명 사이에 논란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이·김 재판관의 의견은 기존의 헌재 입장과 크게 다르지 않은데도 보충의견 형태로 남긴 건 김·조 재판관 의견에 대한 반박을 결정문에 담으려는 의지가 반영된 것”이라고 해석했다.
헌재는 ‘윤석열을 대통령직에서 파면한다’는 내용이 담긴 결론 작성에도 공을 들인 것으로 보인다. 박 전 대통령 때는 결정문에서 결론이 2쪽 분량, 노 전 대통령 사건에선 3단락 남짓이었다. 윤 대통령 탄핵 사건에선 5쪽에 달했다.
헌재는 ‘국회도 탄핵소추안을 연달아 발의하는 등 정치적 대립을 키우는 잘못을 했다’는 취지의 쓴소리를 남겼다. “(윤 전 대통령이) 국회의 권한행사를 ‘국정 마비를 초래하는 행위’라고 판단한 게 실제 현실과 다를지라도, 정치적으로는 존중돼야 한다”는 내용도 적었다. 하지만 곧바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근거로 한 계엄을 선포한 건 용납되지 않는다”고 못 박았다.
이 대목이 찬반 양측을 모두 설득해 불복 가능성을 줄였다는 긍정적 평가가 있다. 반면 “윤 전 대통령의 입장을 무리하게 끼워넣었다”는 비판도 나온다. 김선택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윤 전 대통령의 입장을 헤아리는 내용도 들어가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한 재판관이 있었고, 이걸 두고 싸움을 벌이다가 결국 일종의 타협을 한 걸로 보인다”며 “처음부터 ‘탄핵을 인용해야 한다’는 결론은 어느 정도 나온 상태에서 표현의 수위를 두고 대립이 있었을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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