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기사/뉴스 가족주의 판타지를 넘지 못한 ‘폭싹 속았수다’
39,993 70
2025.03.29 12:36
39,993 70

요새 어딜 가도 ‘폭싹 속았수다’(넷플릭스) 이야기가 나온다. 그 이야기의 포인트는 저마다 다르다. 누군가는 제주의 아름다운 풍경을 말하고, 어떤 이는 엄마 생각이 나서 휴지 한 통을 다 썼다고 한다. 한국전쟁 등 대한민국 격변기를 경험한 ‘아버지 세대’를 그린 영화 ‘국제시장’의 여성 버전으로 보는 이도 있고, ‘응답하라’ 시리즈에 빗대기도 하며, 김원석 감독의 전작인 ‘나의 아저씨’를 떠올리는 이도 있다.

부모의 사랑이 주는 뻐근한 부채감

‘폭싹 속았수다’는 광례(염혜란)와 애순(아이유·문소리)과 금명(아이유)을 중심으로 인간의 일생을 봄·여름·가을·겨울에 빗대어 펼치며 그 일생을 가능하게 한 가족애를 그린 드라마다. 볼거리도 풍성하다. 그 시절을 직접 경험한 이들에게는 향수를, 경험하지 않은 이들에게는 ‘사극’을 보는 것 같은 오래된 새로움을 준다. 또한 시간과 공간의 한계를 넘어선 보편적 힘이 있다. 자식을 향한 부모의 지극한 헌신과 사랑, 그런 부모를 향한 자식의 애틋한 존경과 감사, 가족을 잃은 깊은 슬픔 등은 시대와 세대, 개인과 국가를 넘어선 보편적 정서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우리는 부모 이야기 같기도, 내 이야기 같기도 한 이 드라마에 검푸른 ‘바당’에 뛰어들 듯 속절없이 풍덩 빠져들게 된다.

저마다의 감상이 다르겠지만, 광례와 애순, 그리고 애순과 금명을 통해 부모의 ‘내리사랑’을 보여주는 중심 서사는 거친 파도에 바다가 헤집어지듯 내 안 깊숙한 곳에 묵혀둔 불편한 감정을 끄집어내기도 한다. 내 엄마는 자신을 ‘200점짜리 엄마’라 말하곤 했다. 장녀를 ‘살림 밑천’으로 여기던 시절에 첫째는 딸, 둘째는 아들을 낳으면 금메달 이상의 가치가 있다는 의미에서다. 나는 그 200점짜리 엄마의 딸로 사는 게 가끔 벅찼다. 엄마의 사랑을 무시해서가 아니다. 무거워서 그랬다. 그 사랑은 나를 살게 했지만, 살면서 두고두고 갚아야 하는 부채이기도 했다. 내 인생이 부모의 희생 값이라 생각하면 나는 온전히 ‘나’로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부모 사랑의 깊이와 자식 마음에 얹힌 부채감은 비례하는 법이다. 결국 자식의 인생 일부는 그 부채를 갚기 위한 담보가 될 수밖에 없다. ‘폭싹 속았수다’ 속 부모와 자식의 관계, 특히 모녀 관계를 보며 내내 감추고 있던 뻐근한 부채감이 되살아났다.

 

엄밀하게 말하면, 엄마의 사랑은 ‘딸’을 향한 것이기도 하지만, 엄마 자신을 위한 일이기도 했다. 광례는 애순이 살아보지 못한 인생이며, 금명은 애순이 이루지 못한 꿈이다. 엄마는 딸을 통해 자신의 사랑과 인생을 완성한다. 그런 엄마에게 딸은 ‘금메달’로 존재한다. 딸에게 이 금메달이라는 호명은 딜레마에 가깝다. 금메달은 누군가의 목에 걸렸을 때만 존재감을 가진다. 그래서일까? 드라마에서 금명은 애순과 관식(박보검·박해준)의 삶에 자랑스럽게 걸린 메달인 ‘딸’로서만 존재하고 기능한다. 부모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서울대에 진학하여 부모의 집을 팔아 교환학생으로 일본까지 다녀온 금명은 자기 삶을 적극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조건을 가진 인물이다.

하지만 금명은 부모의 사랑에 둘러싸여 주체적이며 사회적인 존재로 성장하지 않는다. 오직 누군가의 연인이거나 애순과 관식의 딸일 뿐이다. 파혼을 선언하며 금명은 이렇게 말한다. “이런 결혼 어떻게 해. 우리 엄마, 아빠 울어.” 또한 금명에게는 친구 등의 인간‘관계’나 사회‘생활’의 흔적이 명확하게 보이지 않는다. 즉, 드라마에서 금명은 단 한 순간도 ‘개인’인 적이 없다. 그렇게 보일 뿐이지.

 

https://h21.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57088.html

목록 스크랩 (0)
댓글 70
댓글 더 보기
새 댓글 확인하기

번호 카테고리 제목 날짜 조회
이벤트 공지 [흐름출판] 와디즈 펀딩 7,000% 달성✨45만 역사 유튜버 《로빈의 다시 쓰는 세계사》 도서 증정 이벤트📗 362 02.24 23,129
공지 [공지] 언금 공지 해제 24.12.06 4,840,671
공지 📢📢【매우중요】 비밀번호 변경 권장 (현재 팝업 알림중) 24.04.09 11,754,847
공지 공지가 길다면 한번씩 눌러서 읽어주시면 됩니다. 23.11.01 12,828,837
공지 ◤더쿠 이용 규칙◢ [스퀘어 정치글은 정치 카테고리에] 20.04.29 35,071,002
공지 정치 [스퀘어게시판 정치 카테고리 추가 및 정치 제외 기능 추가] 25.07.22 1,059,988
공지 정보 더쿠 모바일에서 유튜브 링크 올릴때 주의할 점 782 21.08.23 8,502,260
공지 정보 나는 더쿠에서 움짤을 한 번이라도 올려본 적이 있다 🙋‍♀️ 268 20.09.29 7,419,824
공지 팁/유용/추천 더쿠에 쉽게 동영상을 올려보자 ! 3600 20.05.17 8,626,576
공지 팁/유용/추천 슬기로운 더쿠생활 : 더쿠 이용팁 4016 20.04.30 8,515,564
공지 팁/유용/추천 ◤스퀘어 공지◢ [9. 스퀘어 저격판 사용 금지(무통보 차단임)] 1236 18.08.31 14,387,344
모든 공지 확인하기()
3003225 이슈 11살이 도전하는 최악의 난이도 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 03:44 504
3003224 이슈 회사에서 일진이 사나웠는데 난 비흡연자일때.🫧 3 03:16 958
3003223 이슈 기대수명 ‘단 3일’. 마지막 수술에서 일어난 기적 🐶 8 03:06 955
3003222 이슈 조각을 사랑한 피그말리온이 이해가 되는 순간 4 03:02 1,103
3003221 이슈 어도어 연습생 출신이라는 4월에 데뷔하는 김재중 신인 남돌 16 03:02 1,655
3003220 이슈 오늘자 어딘가 이상한 오렌지 게임으로 알티탄 아이돌 2 02:46 922
3003219 이슈 여초집단의 퀄리티는 남미새 비율이 결정함.jpg 54 02:44 2,982
3003218 이슈 세달째 소통앱 금지중인거 같다는 여자아이돌 19 02:41 3,804
3003217 유머 댓글 난리난 영상.jpg 4 02:41 1,847
3003216 유머 왕이 미는 남자 2 02:40 839
3003215 이슈 내 나라 제일로 좋아! 02:38 348
3003214 정보 조선 역사상 최연소 임신 출산 사건 27 02:37 2,947
3003213 이슈 영국 여행 왔는데 풍경이 생각한거보단 걍 익숙하네 13 02:29 2,648
3003212 유머 방콕 정식명칭아는거 상식이다 vs 아니다 14 02:22 1,291
3003211 유머 사악한 사탄이 중세시절 저질렀던 행동 11 02:19 1,726
3003210 이슈 락한남이 너 로저 테일러 얼굴 보고 좋아하는 거냐고 물어보면... 9 02:15 1,303
3003209 팁/유용/추천 남자 외모 가꾸는 팁.blind 23 02:15 2,894
3003208 정보 스타벅스 신메뉴 18 02:14 2,660
3003207 이슈 11년 전 오늘 발매된_ "표적" 11 02:14 321
3003206 이슈 트럼펫 3년 다 부질없읍니다 왜냐면 11 02:12 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