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장 경찰이다, 바닥에 엎드려!"
아이들이 학교 갈 준비를 채 시작하기도 전인 아침 6시, 총구를 겨눈 채 무장한 경찰들이 집 문을 쳐부수고 들어와 소리친다. 테러 용의자라도 체포하려는 듯 맹렬하고 위압적으로 집을 뒤져대는 작전에 소스라치게 놀란 부모가 양손을 들고 벌벌 떨며 외친다. "위층에 애들이 있어요. 우리 뭐 한 거 없어요. 집을 잘못 찾으셨다고요!" 그러나 수색 영장을 내어 보이는 현장의 경위는 단단한 목소리로 묻는다. "당신 아들, 어디 있어요?"
이제 막 13살인 아들이 순식간에 체포됐다. 제 방 침대에 누워 있다가 들이닥친 경찰에 놀라 오줌을 지린 그 어린애의 혐의가, 살인이라니? 이 무슨 말 같지 않은 오해인가. 그러나 경찰서에 도착한 아버지는 가히 충격적인 사실과 마주한다. 지난밤 아들과 같은 학교에 다니던 여학생이 살해됐다. 사건 현장 CCTV 영상엔 말다툼 끝에 수차례 흉기를 휘두르는 끔찍한 짓을 저지르는 인물이 담겨 있다. 키도 차림새도 몸짓도, 부인할 수 없이 내 아들이다.
지난 13일 넷플릭스에서 공개돼 미국, 프랑스 등 북미와 유럽 대륙은 물론이고 중동, 아시아 국가에서도 1위에 오르며 전 세계적 돌풍을 일으킨 4부작 영국 드라마 '소년의 시간' 이야기다. 아버지 에디(스티븐 그레이엄)는 귀엽게 자라는 줄만 알았던 아들 제이미(오웬 쿠퍼)의 잔혹한 범행을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다. 관객 역시 못내 의아한 건 마찬가지다. 아직 앳된 티를 채 벗지도 못한 소년은 대체 왜, 또래 여자아이를 그토록 잔인하게 죽게 했는가.
작품은 살인의 동기를 추적하는 경찰의 끈질긴 수사를 시작으로 관객에게 몇 가지 단서를 던진다. 제이미는 죽은 여학생으로부터 '인셀'(비자발적 독신)이라고 조롱당해 화가 났다. 그런 제이미의 심리 상태를 좀 더 자세히 파악하려는 심리학자와의 대화 장면에 이르면 숨겨진 정보가 추가로 드러난다. 죽은 여학생은 사실 상반신 노출 사진이 유포되는 모욕을 겪었고, 제이미는 그 사진을 돌려보며 잔인하게 희롱했던 사람 중 하나였다. 비록 "가슴이 납작해서" 자기 스타일은 아니었지만, 노출 사진이 유포된 뒤 마음이 약해진 상황이라면 자신 같은 "못생긴 사람"도 받아줄 것 같아 데이트를 신청했다는 기괴한 증언도 털어놓는다.
'소년의 시간'이 호평받는 이유는 10대 남자아이의 왜곡된 여성관이 어디에서부터 시작됐는지 그 근원을 상세하게 해부해 나가는 데 있을 것이다. 접근은 단순하지 않다. 남자다워야 한다는 강박, 그리 잘나지 않은 외모에 대한 불만, 교육받지 못한 노동자 집안 출신이라는 사실 등 소년의 심리 기저에는 바꾸기 어려운 조건과 상황에 대한 인식이 복잡다단하게 작용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작품이 주목한 건 '아버지와의 관계'다. "아빠는 날 축구 경기에 내보냈어요. 응원해 주셨지만… 내가 실수하면 그냥 얼굴을 돌렸죠." '남자답지 못해 아버지를 실망시켰다'는 경험은 수치와 좌절의 기억으로 남았다.
작품은 그 감각이 청소년기(Adolescence, 원제)에 접어들면서 어떻게 부정적인 방향으로 확장하는지를 들여다본다. 기어코 '남자답지 못해 여자에게도 인기가 없다'는 콤플렉스까지 나아간다면, 소년은 이성의 작은 거절에도 '약점을 공격당했다'고 믿게 될 것이다. 사회과학적 접근을 곁들인 10대 소년 심리 분석 드라마라고 칭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다각적인 요인을 제시하는 작품 덕에, 관객은 상식을 뛰어넘은 제이미의 분노가 어떤 연유로 형성됐는지 어느정도 짐작할 수 있게 된다. 다만 그럴수록, 소년에게 깊게 뿌리내린 왜곡된 세계관이 손쉽게 해소될 수 없는 심리적 질병이라는 두려운 사실도 함께 받아들이게 된다.
한 소년의 뒤틀린 세계를 두터운 층위에서 조명하는 공력을 보여준 이 작품을 더욱 비범하게 만드는 요소가 있다면, 1시간 분량의 에피소드를 단 한 번의 분절 없이 원테이크로 촬영한 고난도 기술일 것이다. 철저히 계산된 동선을 제작진과 배우가 모두 숙지한 뒤 일말의 실수 없이 연속 촬영한 장면으로, 사건의 진위를 쫓는 관객의 집중력을 한순간도 흐트러트리지 않겠다는 결기마저 느껴지는 결과물이다. 그 흐름 안에서 등장인물의 절망, 공포, 회한까지 효과적으로 강조하는 카메라의 움직임을 발견하는 눈 밝은 관객이라면, 작품의 분위기를 세밀하게 매만지는 정교한 영상 기술에 경탄하는 놀라운 경험까지 얻어가게 될 듯싶다.
https://naver.me/FHlUDuH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