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폭풍 속 서늘한 고요함으로 마지막 순간까지 힘 있게 끌고 가며 관객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는다. 영화 '승부'다.
상반기 최대 기대작으로 손꼽히는 영화 '승부'가 마침내 베일을 벗었다.
영화는 제작 단계부터 이병헌과 유아인이라는 두 연기파 배우가 의기투합해 처음으로 연기 호흡을 맞춘다는 사실로 화제를 모았다. 그러나 유아인의 마약 투약 사건으로 인해 개봉이 불투명해지며 빛을 보지 못하는 듯했으나 크랭크업 한 지 약 4년 만에 세상에 나오게 됐다.
유아인이 저지른 범죄와 사회에 일으킨 파장과 물의 등을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지만, 영화 '승부' 속에서 이창호를 구현한 그의 연기만큼은 더하거나 뺄 것 없이 훌륭하게 느껴진다.
바둑밖에 모르는 당돌한 소년이었지만, 엄격한 스승 앞에서 자신감을 잃고 의기소침하게 부유하며 길을 잃은 모습. 이후 본인 만의 바둑을 찾은 뒤 점차 자신감을 찾으며 변화하고 성장하는 모습을 유아인은 입체적으로 그려내는 데 성공했다.
특히 바둑은 물론 인생 자체를 알려준 스승을 이긴 뒤 기뻐하지도 슬퍼하지도 못하는 복합적이고 복잡한 감정선을 유아인은 특유의 공허한 눈빛과 도무지 속을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설득력 있게 그려냈다.
이처럼 그의 연기가 고요한 침묵과 서늘하고 차가운 냉정의 것이라면, 이병헌은 정확히 대척점에서 폭풍 같은 열정과 불같은 뜨거움을 선보인다.
바둑의 황제로 군림하며 물고, 뜯고, 덤비고, 싸우는 공격이 바둑의 본질이라고 생각하는 날카롭고 강인한 인물. 하지만 그저 방어가 최우선이라고 생각하는 제자에게 연속해서 패배하고 거대한 충격과 상실감과 마주하는 과정까지.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은 상황에 놓인 인물을 이병헌은 자신이 갖고 있는 독보적인 연기력을 통해 완벽하게 제 것으로 만드는 데 성공한다.
늘 놀라운 캐릭터 해석력을 보이는 이병헌의 실력은 이번 작품에서 한층 더 돋보인다. 이병헌은 조훈현 9단을 단순히 스크린에서 재연하는 것을 넘어서, 인물의 내면까지 파고들어 당시 그가 느꼈을 감정을 관객에게 온전히 전달한다.
두 배우의 연기로 작품이 날개를 달았다면, 감독의 흔들림 없는 연출력으로 든든하게 중심을 잡아낸다.
바둑판 위의 대국을 그린만큼 영화는 자칫 지나치게 잔잔하고 조용해질 수도 있었지만, 감독은 편집은 물론 음악과 카메라 구도 등 다양한 연출을 통해 휘몰아치는 속도감과 숨 막힐 듯 팽팽한 긴장감으로 이들의 대결을 전쟁처럼 그리는 데 성공했다.
덕분에 관객은 지루함을 느낄 틈 없이 마지막 순간까지 스크린에서 눈을 떼지 않고 작품을 즐길 수 있다.
영화 '승부'. 김형주 감독 연출. 배우 이병헌, 유아인, 고창석, 현봉식, 문정희, 김강훈, 조우진 출연. 러닝타임 115분. 12세 이상 관람가. 2025년 3월 26일 극장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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