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2년 9월, 수유역 핫트랙스. 나는 직접 만든 자주색 토끼인형과 딸기우유를 들고 자우림의 4집 앨범을 품은 채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살짝 삐친 쇼트커트를 한 자우림의 프론트맨, 김윤아가 사인을 하고 있는 모습이 멀리서 보였다. 미치게 매력적이었다. 한 발짝 앞으로 갈 때마다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팬걸’로서의 내가 미디어를 통해 사랑한 존재를 실물로 만나는 역사적인 첫 순간이었으므로.
“미안해, 널 미워해.” 담담하고도 뜨거운 이 목소리에 완전히 매혹된 것은 열세 살 때였다. 자우림은 ‘매직카펫라이드’나 ‘헤이 헤이 헤이’처럼 우리를 열정적인 쇼의 한가운데로 끌어오는 밴드인 동시에 ‘밀랍천사’처럼 치명적인 사랑의 굴레로 밀어 넣는 환각적인 뮤지션이었고, ‘미안해 널 미워해’처럼 오묘한 아이러니를 노래하는 멜랑콜리한 팀이었다. 음악 좀 듣는 중학생이라면 ‘너바나’며 ‘펄잼’, ‘오아시스’와 ‘블러’ 같은 물 건너온 밴드맨들에 심취해 있던 시기, ‘록’이라고 하면 남성의 전유물처럼 여겨지던 그때, 서울이라는 도시에서 록 밴드 프론트맨으로 현현한 김윤아는 그야말로 어린 내게 신이었던 것이다.
당시 김윤아는 또렷한 자의식과 예민한 기질을 가진, 어딘가 좀 이상한 사춘기 여자애들의 교주이자 교집합이었다.
(중략)
그러니까 어릴 때의 나는 꼭 김윤아처럼 되고 싶었다. 남들이 핑클의 이효리와 SES의 유진을 두고 실랑이를 하던 바로 그때, 드높은 자의식, 맹렬한 목소리, 뜨거운 창작욕, 빼어난 미감,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내 바보같고 비뚤어진 마음을 알아주고 어루만져주는 이상한 공감대까지 모두 가진 그 여자가 되고 싶었다.
안타깝게도 당시 내 주변에는 그런 센티멘털한 주파수를 공유하는 친구가 없었다. 그러나 대학생이 되어, 성인이 되어 만난 여전히 이상한 여자애들은, 하나같이 사춘기에 김윤아를 사랑했노라고, 그 시절 연말 콘서트장에서 우린 함께 소리를 지르고 있었노라고, 사인을 받기 위해 같은 줄에 서 있었노라고 서로에게 틀림없이 고백을 하게 되고 말았다. 그리고 나는 이 ‘좀 이상한 여자들의 여자’를 좋아했다는 사실이, 동족을 알아보는 하나의 증표로 기능한다고 믿게 된다.
그 중엔 김윤아가 변했다고 말한다든지, 애증을 드러낸다든지, 심지어는 그녀를 좋아하는 취향을 경멸하는 일이 마치 쿨하고 더 상급의 취향과 태도를 가진 줄로 착각하는 사람들 또한 꽤나 있었다. 그들이 왜 그녀를 싫어하는지에 대해 듣고 있자면, 오히려 그것은 솔직하지 못하고 자의식이 비대한 자들이 역으로 자신이 김윤아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고백하는 방증같다고 생각했다. 취향을 가진 이들 사이에서 그런 표지가 되는 것 역시 김윤아가 지닌 힘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김윤아를 사랑했고 중간중간 그녀를 잊기도 했지만 김윤아는 음악을, 자신이 서 있는 자리를 잊은 적이 없다. 긴 세월이 지났다. 강산이 세번 가까이 바뀌었다. 28년 차, 자우림과 김윤아는 굳건하다. 그들은 활발하게 새 앨범을 내고 쉬지 않고 투어를 돌며 당장 내일이 없는 사람들처럼 노래하고 또 노래한다. 그들의, 혹은 그녀의 공연에 가본 적 있는가? 그 폭발하는 에너지는 마치 질식할 것처럼 홀을 가득 메운다. 그들이 쌓아온 세월만큼 경이롭게, 어떤 젊음보다 뜨겁게, 바로 지금 말이다.
지난해 4월의 어느 날. 내가 김윤아를 사랑했던 시절 그녀의 나이보다 조금 더 먹은 나는 이른 새벽부터 꽃시장을 털어 차에 가득 생화를 싣고 촬영장으로 향했다. 13년 차 기자 생활을 하며 희한하게 그녀와는 연이 닿지 않았던 터, 일로서 마주하는 첫 만남이었다. 그것이 내게 얼마나 도파민에 잠길 만한 일이었는지는 이만 줄이겠다. 단지 그날 나는 24년 전 소녀로서, 그리고 지금의 30대 후반 성인 여성으로서 그녀에게 궁금했던 많은 것을 물었다. 그 중에서 가장 밑줄치고 싶은 답은 이것이었다.
―제 나이 또래의 여자들은 다 한번쯤 당신을 사랑해본 경험이 있을 겁니다. 왜 소녀들은 당신을 사랑하게 될까요?
“제가 딸들이 많아요.(웃음) 그건, 공감할 수 있기 때문 아닐까요? ‘내가 알 것 같은 이야기를 저 사람이 하고 있다’는 느낌. 저는 그런 이야기를 가능한 한 오래 하고 싶은데요, 사실 제 또래 여성분들 중 지금까지 활동하고 계신 분이 많지 않아요. 특히 기혼이고 아이가 있으신 분들은 정말 드물죠. 소녀들이 ‘저 사람처럼 나도 내 일을 저렇게 오래 하고 싶다’고 생각할 수 있는 ‘저 사람’이 되고 싶어요. 최대한 오랫동안, 여러분들께 부끄럽지 않게 일을 해나가고 싶습니다.”

십대, 이십대엔 롤모델로 찾을 수 있는 여성들이 많다. 그러나 삼십대, 사십대에 들어서며 조금씩 줄어든다. 그 많던 빛나던 여성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왜 우리는 백발에 안경을 낀 멋진 시니어 여성을 그러한 남성들의 수만큼 알지 못하는 것일까. 그렇기에 “저 사람이 저기에 있어서” 나도 힘을 낼 수 있는 존재는 우리 모두에게 귀하다. 28년 전에도 지금도 김윤아는 한결 같이 질투 나는, 나의 롤 모델이다.
3월 11일은 그녀의 오십번째 생일이다. 김윤아에게 딸기우유를 건넸던 열네 살은 자라서 그녀의 생일에 딸기 한 박스와 와인을 보낼 수 있는 서른일곱 살이 됐다. 그렇다. 소녀는 여자를 보며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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