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왼쪽부터 고 구하라, 고 김새론, 고 설리(최진리). 사진=민중의소리, 김새론 인스타그램, SM 설리 추모 이미지.
언론은 고 김새론 씨가 배우로도, 일반인으로도 살 수 없도록 괴롭혔다.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논란으로 비화시키는 보도를 쏟아냈다. 한국언론진흥재단 뉴스분석시스템 빅카인즈에 따르면, 그가 음주운전으로 적발된 2022년 5월부터 기일인 지난 16일까지 2년10개월 간 전국 80개 신문·방송사에선 김씨 SNS 게시 당시 나온 기사량이 그의 사건에 형사배당·기소 소식이 전해진 달에 비해 1.5~3배에 달했다. 제목엔 '아르바이트 호소인', 'SNS병' 등 조롱을 경쟁적으로 담아서다. 언론은 커뮤니티 게시판과 댓글창, 유튜버의 사이버 괴롭힘을 받아쓰며 '알권리'란 포장을 씌웠다.
인격살인 보도로 여성 연예인이 죽음에 이르는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연예매체에 오래 몸담은 전·현직 기자들은 그 배경으로 극한에 다다른 연예기사 생산 구조를 꼽는다. 문제 보도를 작성한 기자 개인에 대한 비판도 마땅하지만, 내부 자정이 불가능해진 연예매체의 기사 생산방식을 바꾸지 않는 한 "기자가 바뀌어도 연예인의 죽음은 반복된다"는 지적이다. 그 뒤엔 문제 보도를 제재하지 못하고, 이로부터 수익을 거두는 포털의 책임도 자리하고 있다.

▲한국언론진흥재단 뉴스분석시스템 빅카인즈에 따르면, 고 김새론씨가 음주운전으로 적발된 2022년 5월부터 기일인 지난 16일까지 2년10개월 간 전국 80개 신문·방송사의 보도량 그래프. 김 씨의 형사배당과 불구속 기소가 이뤄진 2022년 6·12월 기사량보다 그가 SNS를 올린 2023년 4~5월 나온 기사량이 1.5~3배 많다.
기자들 설명에 따르면 연예매체에서 저연차 기자는 주로 유명 인사들의 인스타그램 게시물 받아쓰기와 '어젯밤 TV' 요약 기사를 쓴다. 중·고연차도 경쟁적 받아쓰기를 하는 한편 제작발표회와 인터뷰 취재를 한다. 그러나 현장에서도 조회수 일변도의 속보는 쏟아진다. C기자는 "내가 속한 매체는 그 정도의 압박을 주지 않았는데, 다른 매체의 경우 제작발표회나 배우 라운딩 인터뷰를 가도 행사 진행 와중에 기사가 나온다. 그 배우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의 스캔들을 다룬 발언이 분절돼 실시간 발송된다"며 "그런 상황에서 기자는 본인이 무슨 기사를 썼는지도 모르게 된다"고 했다.
사내에서 기자 성과를 가르는 인센티브 제도도 포털 조회수를 유일한 잣대로 한다. 한 스포츠 일간지는 한해 '[단독]' 붙인 기사 개수에 따라 기자 인센티브 규모를 정해 수여한 것으로 전해졌다. A기자는 "지난해 타사 동료 기자가 조회수 평가에 따른 인센티브로 1000만 원까지 받았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이렇게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 A기자는 "자극적 기사를 많이 써서 인센티브를 받는다고 하면, 그게 정도인 것처럼 문화로 자리잡는다"고 했다. D기자는 "타사 동료 기자가 연봉협상에서 휴가철 한 때 조회수가 낮아졌던 것을 이유로 슬럼프의 원인을 말하라는 추궁을 들었다고 한다"며 "그런 곳에 오래 머무는 기자는 '이 사안이 언론이 다뤄도 되는 사안인가'를 고민할 수 없도록 '가스라이팅' 된다. 취재 윤리를 말하는 것 자체를 이상하게 생각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B기자는 "회사는 그런 문제적 기사를 쓰지 '못하는' 기자들이 스스로 무능하다고 여기도록 만든다. 문제적 기사와 제목을 뽑아야 유능하다 대접 받는 곳에서 취재 윤리를 이야기하며 조회수를 뽑지 못한 기자는 쓸모 없는 기자 취급을 받아야 한다. 업계를 떠날 게 아니라면 회사가 원하는 인간으로 변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했다.

▲25세의 나이에 고인이 된 배우 김새론씨와 관련한 사망 전 보도와 사망 후 보도.위부터 김새론 배우 사망 전 파이낸셜뉴스, 조선일보, OSEN 기사 제목과 김새론 배후 사망 후 파이낸셜뉴스, 조선일보, OSEN 기사 제목. 정리=금준경 기자. 디자인=안혜나 기자.
연예매체의 사생활 침해는 법적으로도 문제가 된다. A기자는 고 신해철씨가 자신의 결혼임박설을 보도한 스포츠신문을 상대로 한 명예훼손 소송에서 이긴 사례를 들었다. 그러나 '법은 멀고 조회수는 가깝다.' 그는 "언론이 기사를 쓰면서 '국민 알권리'라고 내세우지만 보도를 문제라 보는 판례는 쌓이고 있다"며 "그럼에도 연예인들은 소송이 쉽지 않다"고 했다. 대다수 연예인은 이미지 타격을 우려해, 논란 와중 직접 법적 대응에 나서기 어려운 탓이다.
한 인터넷신문사 연예부 담당 D기자는 "하루 10건 넘게 기사를 쓰면 '이 기사가 적절한가'라는 판단할 시간도 갖지 않고 '이건 나도 써야 한다'고 받아들인다. 예를 들어 만약 타사 기사가 네이버 메인에 올랐는데 우리는 없다면, 급하게 따라쓰면서 더 자극적 제목을 다는 것"이라고 했다. 김새론 씨 생전 그를 'SNS병'이라고 비난하는 기사를 쓰고, 사후엔 게시글이 'SOS신호'라 추측하는 기사를 써 누리꾼 지탄을 받은 한 기자는 최근 한 달 600건의 기사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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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포츠뉴스, 스포츠조선, 일간스포츠, 오센 등 10여 개 연예매체가 속한 연예스포츠미디어협회 박준철 회장(스타뉴스 대표)은 김새론 씨 사망에 대한 언론 책임을 묻는 지적에 "그 부분에 동의할 수 없다. 구체적으로 얘기하고 싶지는 않다"고 말했다. 연예 스포츠매체 대표 간 자정작용을 위한 노력이 이뤄지는지를 묻는 질문에는 "협회 내 미디어들은 자체적으로 자정하라고 평소에 얘길 한다"며 "(이번 일을 계기로) 모여서 관련 논의를 한 적은 없다"고 했다.
김예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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