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부(재판장 허경무)는 이날 정의용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서훈 전 국가정보원장 등에 대한 선고를 유예하며 “남북이 분단된 이래 법적 논리로는 미처 다 설명할 수 없는 ‘모순과 공백’이 도처에 산재해 있다”며 “이 사건과 같은 사안에 적용할 법률, 지침 등이 전혀 마련돼 있지 않았다”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 이와 관련해 “제도 개선책을 마련하는 등 사회적 공론화와 토론을 통해 대한민국의 법 질서가 처해 있는 ‘모순과 공백’을 메우는 대신, 수년간 수많은 수사·공소 유지 인력을 투입해 피고인들에게 실제적 불이익을 주는 것이 더 나은 해결책이 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의문”이라고도 했다. 남북 분단 장기화로 인한 입법 미비 상황 속에 발생한 이 사건은 본질적으로 형사 법정으로 끌고 와 유무죄를 다툴 일이 아니라 사회적 토론으로 상황을 해소했어야 할 문제라는 인식이 깔린 것이다.
재판부는 특히 “후임 대통령의 취임 등이 어느 정도 (수사 개시에) 개입된 것으로 의심할 수 있다”며 사실상 이 사건이 윤석열 정부가 전임 문재인 정부를 겨냥해 일으킨 ‘정치적 사건’으로 볼 여지가 있다는 뜻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 근거로 “이 사건 기소는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검사가 한 차례 수사 필요성이 없다는 이유를 들어 각하 결정을 한 사건”인데도 “대통령이 바뀌고, 국정원이 고발인이 돼 고발한 사건을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검사가 수사해 이뤄진 것”이라는 점을 들었다. 또 “검사가 고발인인 국정원이 주는 자료를 거의 그대로 받아 증거로 사용”했다며 “검사의 객관 의무가 준수된 수사와 기소였는지 의문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다”고 적시했다. 윤석열 정부의 대통령실과 검찰이 ‘2019년 11월25~26일 부산에서 열린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참석을 성사시키려고 두 북한 선원을 강제 추방했다’고 주장하나, 재판부는 행사 20일 전 이뤄진 이런 조처로 김 위원장의 참석이 “일어날 수 있을 것이란 가정 자체가 실무상 실현 가능성이 없다”고 봤다.
이번 판결에서 주목되는 건 재판부가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는 헌법 3조를 근거로 ‘북한 주민=대한민국 국민’이라고 판단했다는 점이다. 정 전 실장 등은 재판 과정에 ‘대한민국의 국민이 되는 요건은 법률로 정한다’는 헌법 2조와 국적법 등을 근거로 ‘잠재적 국민’인 북한 주민이 ‘현실적 국민’이 되려면 대한민국 정부의 승인이라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런 결정을 두고선 남과 북이 유엔(UN)에 동시·분리 가입(1991년 9월17일)해 국제법적으로는 별개의 주권국가라는 현실과, 2000년 첫 남북정상회담 이후 대법원이 북한을 ‘반국가 단체’이자 ‘대화와 협력의 동반자’라며 실체를 인정하는 쪽으로 헌법 해석을 조정해온 추세와도 어긋난다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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